[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과거에도 새누리당에선 총선을 앞두고 지도부를 겨냥한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있다. 가장 성공적이고 드라마틱했던 사례는 한나라당 시절인 2011년 홍준표 대표 체제를 붕괴시킨 일이다. 그 해 7월 전당대회에서 홍 대표는 안상수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당권을 잡았다. 그러나 당내 파워게임 결과 불과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악재가 겹쳤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 처리에 따른 역풍,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 등이 잇따랐다. 그러자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당내에선 이듬해 4월 19대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지도부 개편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홍 대표는 버텼다. 결국 유승민 최고위원이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존망의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며 선도사퇴했다. 그때만 해도 친박계 핵심이던 유 최고위원이 선수를 치자 남경필·원희룡 최고위원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홍 대표는 2011년 12월 두 손을 들었다.
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운영됐다. 19대 총선 공천도 박 위원장이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유승민 최고위원의 선도퇴진이 지금의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고 볼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친박계는 이 때의 경험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계파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선도사퇴하면서 김무성 대표 체제를 붕괴시킨 뒤 친박 핵심들로 비대위를 꾸려 차기 정권재창출을 도모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당 대표가 외압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는 또 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은 데다, 대선자금 비리 의혹까지 겹쳤을 때다. 당시 한나라당은 의석 50석 확보도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이 당을 뒤덮었다.
여론을 돌리기 위해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결국 탄핵을 주도했던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전격 퇴진했다. 그 때도 구원투수로 나선 박근혜 대표가 당의 지휘봉을 잡아 공천권을 행사하고 총선을 치러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