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나라를 세우는 데 왕을 도와 공이 많았던 사람을 개국공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 속에도 많은 개국공신이 있었다. 그중 유명한 개국공신 중 하나가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1383년 이성계를 만나 혁명을 모의했고 결국 조선을 건국하는 데 일조했다. 개국공신은 오늘날도 존재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권을 창출하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 현대판 개국공신들이다. 하지만 개국공신들이라 해서 끝까지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뜻이 맞아 손을 맞잡았지만 언제든 헤어지고 버려질 수 있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다.
지난 2년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여론도
“함께 일하자고 자리 줘도 다시는 안 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로 집권 3년차를 맞았다. 임기의 반을 넘어선 시점인 만큼 성공적인 임기 마무리를 위해서는 중요한 시점이다. 지난 한해 박근혜 정부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세월호 사건과 식물국회 등으로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연말에 터진 정윤회문건 사건은 온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지난 23일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내각 개편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무력했던 지난해 실정을 만회하기 위한 쇄신책이었지만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입각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여론도 많다. 그러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국공신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등 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으로는 김종인, 이상돈, 김광두, 이준석 등을 꼽을 수 있다. 2011년 12월 27일 여의도에 있는 새누리당 당사에서는 박근혜 정권 창출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렸다. 당시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과 함께 자리해 박 대통령의 집권을 위한 정책을 논의했다.
‘비대위 3인방’
‘박근혜 키즈’는 누구 편?
‘비대위 3인방’이라 불렸던 이들은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청년 등을 상징하며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이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약점이라고 지적 받았던 앞선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스터키 역할을 맡았다.
이들 중 이준석 전비상대책위원은 손수조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키즈’라고 불리며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 노회한 이미지의 새누리당에 뜨거운 청춘인 이준석과 손수조의합류는 박 대통령을 향한 젊은 세대의 지지와 관심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집권 중반을 돌아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박근혜 정권 개국공신은 대부분 등을 돌린 상태다. 자의반 타의반 박 대통령의 지근에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지근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들조차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짐이 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
“문제를 문제로 인식 못해”
제일 먼저 박 대통령과 등을 돌린 인사는 김종인·이상돈 전 비대위원이다. 이들이 박 대통령과 갈라선 이유는 경제민주화·복지 공약이 깨진 게 원인이다. 이들은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도 아무런 직책과 역할을 맡지 못했다.
결국 김 전 비대위원은 2013년 12월 새누리당을 탈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김 전 비대위원은 “경제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밝히며 “초이노믹스처럼 억지로 돈을 뿌리면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김 전 비대위원의 박 대통령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3일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공약이 선거에 도움이 되니까 얘기했던 것이지 경제민주화가 국가 발전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대한 깊은 철학이나 확신은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당시 박 대통령에 대해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자기 입으로 경제민주화를 약속해 놓고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고 말하며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 전 비대위원은 박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도 평가 절하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 기자회견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경제에 올인 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그는 “말은 많이 했지만 내용은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론에 대해서도 “당선 후 인수위원회에서 국정과제를 정리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빼고 대신 창조경제를 집어넣었다. 창조경제는 대선 캠프 때 거론조차 안 됐던 개념이다. 경제민주화를 대표공약으로 떠들어놓고 그냥 빼기가 민망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김 전 비대위원은 박 대통령 리더십의 가장 큰 문제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미 둘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박 대통령과 결별한 이상돈 전 비대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영입 직전까지 갔다. 아끼던 장수가 적이 될 뻔했다. 하지만 이제 이 전 비대위원도 박 대통령을 떠났다. 최근엔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대통령은 국민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나만 보고 가겠다’는 모습 같다”고 비판했다.
또 이 전 비대위원은 지난 1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까지 하락하고 특히 핵심 지지기반인 50대와 대구·경북에서 부정평가가 더 높아진 것에 대해 “여론조사 말고 피부로 느껴도 이미 대구지역에 좀 배웠다는 사람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상당히 환멸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돈 전 비대위원
“인사 트라우마 있는 듯”
내각 교체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며 “특히 개각을 거의 못하는 것도 지금 장관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혹시 딴 사람으로 갈았다가 인사 청문회에서 난리나고 이런 두려움이 있나 싶다”고 밝혔다.
또 이 전 비대위원은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 이유로는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에 개성공단 문제, 우리가 대북 굉장히 강경책을 취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아직까지 지지하는 사람들은 5·24조치 해제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객관적으로 대통령 못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라고 불린다. 김 전 비대위원이 경제민주화라는 큰 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면 김 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다양한 경제 지식을 가르쳤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경제민주화 포기 선언 이후 이들을 각자의 길을 찾아 헤어졌다.
김 원장은 지난해 1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 이상돈 비대위원이 대통령의 공약 파기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한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며 “객관적으로 다들 대통령이 못한다고 하고, 내가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함께 일하자고 자리를 제안하면 받아들이겠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난 안한다.”고 답했다. 그는 “학자가 정치인을 도울 때는 ‘자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어렵다. 일부에선 내가 비판적인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 자리를 안 주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건 아니다. 연구원 설립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공직은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인터뷰에서 국내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그렇다. 변화를 하려면 기득권의 저항이 발생한다. 기득권을 조정하려면 정치권이 국민을 향해서 고통을 함께 나누고, 거품을 없애고, 센 사람이 더 많이 양보하자고 말해야 한다. 대통령은 가장 앞장서서 그런 능력이나 역할을 보여줘야 한다.”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총리는 1980년대에 이를 해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2년간 한 것이 없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말에 뼈가 있는 대답이다.
김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처음부터 얘기를 잘못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새 아이디어다. 새 아이디어가 사업화되어 경제적 가치가 생기려면 짧아도 3년, 길면 10년이 걸린다. 또 그 과정에서 전문인력, 금융, 대기업 문화 같은 인프라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것들이 부족하다.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창조경제를 위한 인프라를 깔겠으니 다음 정부가 꽃피워달라고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비대위원
“초가삼간 다 태울 뻔”
이준석 전비대위원은 앞선 세 사람과 상황이 달랐다. 세 사람은 박 대통령과 완전히 등을 졌지만 이전비대위원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 정권에 들어서며 정치적으로도 나름 승승장구해 왔다. 하지만 기존 새누리당 의원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비록 새누리당에 들어오긴 했어도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성향이 기존 정치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전비대위원은 큰 사고를 쳤다. 바로 ‘김무성 수첩’ 사건이다. 지난 1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수첩 속 메모를 보고 있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수첩에는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 전 비대위원이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술집에서 음종환 전 행정관으로부터 문건 파동 배후에 대해 김무성, 유승민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하면서 사건이 커졌다. 음 전 행정관은 곧장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배후로 지목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으나 당청 갈등을 유발하게 돼 청와대가 곤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이 전 비대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여러 가지 일로 많은 분들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김무성 대표에게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을 전달한 이유에 대해 “당·청간 갈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음해성 소문이 도는 것 자체를 지양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서 “당·청간의 공식 소통라인대로 당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면, 발언자와 증언자 간의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청와대 측에서 있고, 해당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재발방지성 경고 정도의 조치 정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비대위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당에서는 폭탄이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더군다나 이전비대위원의 발언은 이 비대위원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었다.
게다가 ‘김무성 수첩’ 사건으로 가만히 있던 손수조 당협위원장까지 불똥이 튀어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갔다.
음 전 행정관은 사퇴서를 제출한 후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심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한 매체에 “2년 전에 손수조 씨와 사귀면 어떠냐고 농담조로 이야기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발언이 언론 등에 전달되면서 ‘여자 문제와 관련된 협박’으로 와전된 것이다. 최근 한 종편에 따르면 이전비대위원이 음 전 행정관으로부터 협박성 발언을 들은 것으로 보도가 나왔었다.
음 전 행정관이 이전비대위원에게 “방송 출연을 못하게 하겠다” “요즘 여자 누구누구 만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음 전 행정관 측은 이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키즈’로 불리며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해 개국공신으로까지 입지를 다지고 있던 이전비대위원에게는 이번 사태로 박 대통령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됐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고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상황이 올 뻔했다는 말이다.
임기의 절반이 지나간 시점에서 박 대통령은 개국공신들이 잇달아 등을 돌리게 된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피를 나눈 형제도 대의 명문을 앞세운 동지도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갈라설 수 있는 게 현실이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인적 인프라를 가진 박 대통령에게 개국공신들이 하나둘 떠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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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