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세금폭탄 논란을 부른 연말정산과 관련해 민심이 들끓고 있다. 세법개정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며, 한국납세자연맹은 근로자 증세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정부는 세법을 개정하고 소급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뿔난 민심은 여전하다. “조삼모사식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난과 함께 정부 세금정책에 대한 불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연말정산 파문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요서울]은 연말정산과 관련해 어떤 문제들이 남았는지 살펴봤다.
“유리지갑 털어가나” 분노 폭발 화들짝
소득세 늘었는데 법인세 인상은 미지수
‘13월의 월급’으로 불리는 연말정산이 지난 15일 시작과 동시에 민심 분노의 장으로 변했다. 바뀐 세법으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돼 환급액이 줄어들거나 돈을 토해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또한 연말정산을 위해 자료를 뽑고 일일이 입력을 하는 과정에서 “지난해보다 항목이 더 복잡해졌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 당시 총 급여 5500만 원 이하는 세부담이 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번 연말정산까지는 더 낸 세금을 돌려받았던 이들 대다수가 ‘세금폭탄’을 맞는 사례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지출액만큼 전체 소득을 그만큼 줄여 계산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과세표준을 낮추는 데에 유리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연봉에서 가장 먼저 빼주던 근로소득공제가 줄어들어 부양가족 공제 혜택 등을 적용받지 않는 미혼 직장인들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많다. 거론된 것만으로도 논란을 일으켰던 ‘싱글세’가 사실상 이미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연봉 2360만 원~3800만 원 미혼 직장인의 올해 납세액을 산출했을 때 근로소득공제는 24만7500원이 줄었다. 반면 근로소득세액공제 증가는 7만4250원에 그쳤다. 연봉이 3000만 원인 미혼자일 경우 총 90만7500원을 근로소득세로 내야 한다. 이는 2013년 73만4250원보다 17만3250원이 늘어난 액수다.
지난해 자녀를 낳은 경우도 혜택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번 연말정산의 경우 2013년에 태어난 자녀에 대한 출생공제 200만 원과 6세 이하 양육비 공제 100만 원 등 총 300만 원의 소득공제를 통해 16.5%의 절세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출생공제와 6세 이하 공제가 사라지고, 자녀세액공제 16만5000원만 적용받게 됐다.
만약 연봉 4000만 원의 직장인일 경우 2014년에 아이를 낳았다면 2013년에 낳았을 때보다 세금 부담이 19만3800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무차별적 세금 폭탄을 맞게 되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직장인 A씨는 “쓰는 돈은 비슷한데 지난번 연말정산과 비교해 절반 이상 환급액이 줄었다”며 “복잡해진 연말정산으로 불편함은 커지고 돌려받는 돈은커녕 나가야 할 돈을 걱정해야 하는 이 상황이 어이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올해 연말정산은 지난해 아이를 낳은 집들만 바보로 만들었다”며 “정부에서 애들 많이 낳아서 키우라고 아무리 말해도 이런 식으로 힘들게 만들면 누가 애를 낳고 싶어 하겠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긴급진화 불구
반대서명운동 시작
여론의 뭇매가 계속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개선 정책을 발표했다. 공제항목 및 공제수준 조정, 자녀수와 노후대비 등을 감안한 근로소득세 세제개편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주로 총급여 7000만 원을 초과하는 상위 10% 근로자의 세부담이 약 1조3000억 원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 “총급여 5500만 원 이하자 중 일부는 개인 사정에 따라 부양가족공제, 자녀의 교육비·의료비 공제 등을 적용받지 못해 세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책 발표와 동시에 정부의 보완 대책이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근로자 입장에선 간이세액표 조정을 하더라도 돌려받는 금액에 차이가 없고, 세금 부담도 그대로란 지적이다. 최 부총리의 기자회견이 오히려 연말정산 정책에 대한 비난만 더 키운 셈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비난의 여론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당초 “증세는 없다”는 정부의 공약과는 달리 실질적인 증세라는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담뱃값 인상으로 증세 논란이 불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우회 증세’에 대한 날 선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야 할 것 없이 정부의 연말정산 정책을 지적하는 이들 대다수가 세법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찬성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단 사실이 밝혀져 망신을 사고 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등을 비롯해 야당 의원들의 이름도 상당수 올라있다.
또한 세수 부족에 대한 대책도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 여부까지 화두에 올랐다.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 인상이 없었던 만큼 형평성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반대의 목소리가 맞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이 부족분을 메우고 근로소득자와 대기업의 조세 형평성도 맞출 것을 주장한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법인세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차원에서 봐야 될 문제다”며 법인세 인상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납세자연맹은 연말정산에 대한 반대서명운동에 나섰다. 서명운동은 시작 첫날인 지난 21일 서명자가 1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정부가 발표한 연말정산 보완책은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땜질 처방이다”며 “세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엉터리 세수추계를 근거 자료로 삼은 기재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뢰성이 제대로 담보되지 않은 정부의 세수추계를 진실로 믿고 법을 통과시킨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또 그는 “이를 무효화하는 근로소득자 증세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할 것이다”고 밝혔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