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SK텔레콤(부회장 임형규)과 KT(회장 황창규)의 갈등이 곳곳에서 계속돼 소비자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양사의 갈등은 SK텔레콤의 ‘세계 최초 4배 빠른 3밴드 LTE-A 상용화’ 광고가 발단이 됐다. 사전 체험용으로 수령한 단말기를 근거로 ‘세계 최초 상용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싸움은 법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졌고, 재판부 형성 과정에 대한 잡음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고액 리베이트로 시장과열 주범 시비가 붙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재판장 매제 변호인 내세워 시간끌기 의혹
SK텔레콤은 지난 9일부터 세계 최초로 4배 빠른 3밴드 LTE-A를 상용화했다는 내용의 TV 광고를 시작했다. 3밴드 LTE-A는 스마트폰으로 90분(800MB)짜리 영화 한 편을 22초 만에 내려 받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자 KT는 “SK텔레콤이 편법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 측은 “고객 사전 체험용으로 받은 단말기는 판매용이 아니기 때문에 상용화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실질적인 상용 서비스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판매용 단말기기가 아닌데다가, 유통망인 대리점에서 고객이 구입할 수 있어야 ‘상용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로부터 단말기를 제공받을 때 ‘이건 체험용이기 때문에 AS 등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체험용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조차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용화를 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SK텔레콤은 “돈을 받고 판매했기 때문에 상용화가 맞다”고 맞섰다. 또 “GSA(세계통신장비사업자연합회) 협회의 월간 보고서에도 SK텔레콤이 지난해 12월 29일 3밴드 LTE-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KT는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 SK텔레콤의 ‘세계 최초 4배 빠른 3밴드 LTE-A 상용화’ 광고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여기에 LG유플러스(부회장 이상철)도 가세해 “SK텔레콤의 광고 금지 가처분 신청할 계획”임을 밝혔다.
SK텔레콤과 KT의 갈등은 본격적인 법정공방을 시작으로 더욱 깊어졌다. 법정공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판장과 SK텔레콤 변호사가 처남 매제 사이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초 이 사건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의 민사수석부인 민사50부에 배당됐다. 재판장은 조영철 부장판사다. 이후 15일 SK텔레콤은 조영철 부장판사 여동생의 남편, 즉 매제 사이인 남영찬 변호사를 내세운 변호인 위임장을 제출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 16일 법원장에게 재배당을 요청했고, 사건은 민사51부로 넘겨졌다. 첫 심문도 16일에서 19일로 미뤄졌다.
현재 민사소송법상 변호인에 대한 제척 규정은 따로 없어 2013년 9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판사의 친족인 변호사나 친족이 소속된 법무법인이 사건을 수임하면 그 사건을 재배당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든 바 있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SK텔레콤이 시간 끌기 작전을 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쟁사들이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까지 광고를 계속 내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란 것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SKT가 고객 체험용인지 판매용인지를 두고 벌어진 논란이 커지니까 재배당을 유도해 시간을 끌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만약 재판부에서 이 같은 사실을 놓치고 그대로 심문을 진행했다면 SKT가 승소할 수도 있을 만큼 유리한 상황이 됐을 텐데 의도적으로 판사와 인척 관계인 소송 대리인을 선임한 게 아닌지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진행된 1차 법정공방은 사실상 SK텔레콤의 승리로 끝났다. 기각되지는 않았지만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로 인해 SK텔레콤은 지난 23일 광고금지 결정이 나기전까지 광고를 계속 내보낼수 있었다.
시장과열 주범 논란도
SK텔레콤과 KT의 갈등이 점입가경에 이르는 가운데 KT는 SK텔레콤이 지난 주말 우회 보조금을 지급해 시장을 과열시켰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LTE-A 세계 최초 상용화로 시작된 싸움이 고액 리베이트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KT 측은 “SK텔레콤은 지난 16일 오후부터 자사의 대리점과 판매점을 통해 일부 단말기에 45만 원 이상의 고액 리베이트를 지급하며 시장 과열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또 “17일부터 적용되는 공시지원금을 온라인에서 16일부터 미리 적용해 판매하며 단통법을 위반했다”며 “이를 통해 SK텔레콤은 5000여 명의 타사 가입자를 빼앗았다”고 말한다.
이에 SK텔레콤 측은 “근거 없는 비방”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KT측에서 주장하는 기간의 번호이동 규모는 평상시와 다르지 않아 시장과열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쓰기 위해 저렇게까지 경쟁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또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실시에 불만이 큰 상태에서 ‘시장 혼란’을 일으켰을 지라도 고액의 지원금을 주는 행동을 ‘눈 감아주자’는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 A씨는 “LTE가 처음 도입될 때도 이동통신사들이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지만 왜 싸우는지 잘 와 닿지 않았다”며 “저런 신기술을 발표할 때마다 ‘아 또 요금을 올리겠구나’하는 걱정이 더 앞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 B씨는 “이동통신사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마케팅에 나서는 건 그들의 생존 방식이니 비난할 마음은 없다”면서도 “소비자 입장에선 누가 최초인가보다 단말기 가격이나 통신요금 인하 등을 더 원하는데 저런 진흙탕 싸움이 나는 걸 보면 이동통신사들은 소비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다수 소비자들이 단통법 시행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더 보조금을 많이 줬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그들만의 싸움으로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6~18일 기준 고액 리베이트 지급으로 문제가 제기된 대리점을 중심으로 보조금이 얼마나 투입됐는지 여부와 관련된 실태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