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재계의 이슈는 롯데그룹 후계구도 변화다. 부자지간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정황만 있을 뿐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해임 이유는 여전히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다. 때문에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한국 롯데 등기 이사직의 행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향후 행방에 따라 미궁에 빠진 롯데그룹 후계구도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신동빈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위한 시간벌기, 롯데가 여자들의 입지 변화 신호로 보는 시나리오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임 진짜 이유 놓고 추측 무성
롯데家 여자들 입지 변화 예고
일본롯데 주요직에서 잇따라 해임된 신동주 전 부회장의 거취를 놓고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에서는 해임됐지만 한국 롯데에서는 등기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22일 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회원과 주한 외교인사들의 신년 모임에서 “일본 롯데는 당분간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이 맡을 것”이라면서 “일본 롯데 경영 참여 여부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재계는 롯데그룹 후계구도가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으며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한국 및 일본 롯데에서의 거취도 명확히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노여움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신 전 부회장이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과 경영 방침을 두고 대립하다 해임됐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과 재산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는 것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는 지난 13일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이 “형의 해임은 아버지가 한 일이다”고 대답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롯데家 내부 대립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지난 19일 “신동주 전 부회장과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며 “신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소홀히 대하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노여움을 사고 후계자 구도에서 제외됐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은 유교 문화가 강해 기업의 수장은 창업주의 장남이 잇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롯데 창업가 내부의 가족 갈등으로 이런 관례가 깨진다면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현대그룹 ‘왕자의 난’을 비롯해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벌인 소송처럼 롯데의 집안싸움으로 재계가 시끄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 등기 이사직도 박탈당할지 아니면 유지할지를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이 등기 이사직을 보유하고 있는 한 계속 그룹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거론된 것처럼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으로의 그룹 승계가 결정됐다면, 신격호 총괄회장이 두 형제의 지분 구조도 정리시킬 가능성이 크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등기이사를 비롯해 롯데건설, 부산롯데호텔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임기는 내년 3월 혹은 6월까지다.
이와 관련해 한국 롯데그룹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룹 내부에서도 신동주 전 부회장 해임 이유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면서 “일본 롯데와 분리돼 운영되다보니 그쪽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없고,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이 한국 롯데그룹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그룹 후계에 대해서도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들었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고 전했다.
단순 시간끌기다?
롯데가를 둘러싼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이 단순한 시간끌기용이란 지적도 있다. 신 전 부회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배구조 개편 작업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잠시 동안만 경영일선에서 배제시켰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한·일 롯데그룹이 얽혀있는 지배구조 특성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순환출자 고리만 417개에 달한다. 어떤 지분을 사들이냐에 따라서 후계 경쟁 구도가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셈이다.
앞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순환출자 핵심부문이자 그룹의 지주사 격인 롯데제과, 롯데쇼핑 등의 지분을 꾸준히 사 모으며 한국롯데 경영권 영향력을 키워온 바 있어 ‘시간끌기용 해임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신 전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잠시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한국 롯데그룹은 2012년부터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시작했지만 일감 몰아주기, 제2롯데월드 안전성 논란 등으로 속도가 떨어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여자들의 입지 변화 신호로 보는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3명의 부인 사이에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고인이 된 첫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일본인인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형제 그리고 셋째 부인인 전직 탤런트 서미경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다.
그동안 신 총괄회장은 딸들에게 상징적인 차원에서 그룹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물려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장남이 요직에서 해임된 만큼 장녀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과 막내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후계구도에 들어왔다는 전망도 있다.
또 최근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이 광고계열사 대홍기획이 대형 M&A 진행으로 그룹 내 역할이 커지고 있어 이 같은 변화에 시선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만 그쳤던 활동을 벗어나 본격적인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씨도 후계구도에서 적잖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서씨와 그의 딸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보유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지분은 신영자 이사장보다는 낮다. 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6.1%의 주식 자산을 승계 받을 경우 그룹 내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롯데가 여자들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해도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형제의 지분율과는 격차가 많이 나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으로 앞으로의 지분 구조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데다가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과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모두 그룹의 상장 및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고루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