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한테 자꾸 만나달라니… 창피해 죽겠어!”
“유부녀한테 자꾸 만나달라니… 창피해 죽겠어!”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5-06 15:28
  • 승인 2009.05.06 15:28
  • 호수 107
  • 4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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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권총살인사건 ‘계획범죄’ 가능성
사건이 벌어진 미용실 내부 도면

내성적인 중년의 경찰관이 하루아침에 권총살해범으로 돌변했다. 성실한 초보 간부였던 그를 나락으로 추락시킨 것은 다름 아닌 ‘연정’. 잔혹한 치정극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른 그는 여인을 살해한 자신의 권총으로 스스로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현직 경찰의 민간인 총기살해라는 초유의 사건에 군산경찰서장과 지휘과장, 지구대장이 줄줄이 옷을 벗어야 했을 정도로 사태의 충격파는 상당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제 어떻게 경찰을 믿을 수 있느냐’는 핀잔과 ‘도대체 무슨 사이였기에 총질까지 하게 된거냐’는 호기심이 어지럽게 얽혀있다. 이런 가운데 ‘짝사랑에 괴로워하던 남자의 충동적 범행’이라는 경찰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찮은 정황이 적지 않다. 군산 권총살해사건의 새로운 이면을 추적했다.


1분 간격으로 들린 4발의 총성 ‘망설였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전북 군산시 경암동 C미용실. 지난달 29일 아침 10시 20분 경 이곳으로부터 날카로운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군산경찰서 나운지구대 소속 조모(46)경위가 미용실 여주인 이모(37)여인을 향해 공포탄과 실탄 두 발을 발사하고 나머지 한발은 자신의 머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조 경위 손에 들린 총은 38구경 회전식 리볼버로 공포탄 한 발과 실탄 세 발이 들어 있었다. 조 경위는 권총 안에 들어있던 실탄을 모조리 쓴 상태였다. 그가 쏜 총알 가운데 한 발은 창틀에서 발견 됐고, 나머지 두 발은 각각 이 여인의 머리와 조 경위의 관자놀이에 정확히 명중했다. 이 여인과 조 경위는 현장에서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나란히 동군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2년 간 끌어왔던 질긴 연정의 끈이 잔혹한 치정극으로 끊어져버린 순간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을 처음 발견한 것은 머리 손질을 위해 미용실 문을 연 손님 한모(30·여)씨. 빠끔히 열린 쪽방 문틈으로 피에 젖은 조 경위를 발견한 한씨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서둘러 112를 눌렀다.

그 뒤 총소리를 들은 이웃주민 문모(59·여)씨가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 목격자들은 쓰러진 사람이 조 경위 말고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씨는 경찰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탕’하는 소리가 1분여 간격으로 여러 번 들렸다”고 진술했다.

조 경위가 세 발의 실탄을 한꺼번에 쏜 것이 아니라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발사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 경위가 이 여인을 살해하기 직전 적잖이 망설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충동적으로 총격을 가했다”는 경찰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첫 번째 정황이다.


순찰 자청하고 무기 챙겨…‘계획살인’ 가능성

뿐만 아니라 사건 당일 조 경위의 행적 역시 이번 사건이 계획된 범죄였을 가능성을 높인다. 경찰에 따르면 지구대 팀장인 조 경위는 사건 당일 순찰 요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 경위는 당일 오전 군산 야미도에서 열린 집회에 직원들이 지원을 나가자 순찰을 자청했다. 아침 8시 20분 경 출근한 조 경위는 곧장 실탄 세 발과 공포탄 한 발이 든 문제의 권총을 무기고에서 수령했고 한 시간 뒤 순찰차가 아닌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지구대를 떠났다. 부하직원에게는 ‘순찰차에 기름을 넣어오라’며 심부름을 보내 따돌린 뒤였다. 조 경위가 지구대를 나선 뒤 곧장 이 여인의 미용실로 향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지구대에서 이 여인의 미용실은 직선거리로 8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다. 그러나 두 사람이 미용실 쪽방에서 언쟁을 벌였다는 경찰의 발표에 비춰볼 때 조 경위가 곧장 이 여인의 미용실로 찾아가 조용한 쪽방에서 긴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높다. 숨진 이 여인의 몸에 특별한 외상이 없고 이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은 목격자도 없다는 점도 이 같은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남은 의문은 조 경위가 어째서 이 여인을 살해했느냐는 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숨진 상황에서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유부녀인 이 여인이 역시 유부남인 조 경위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주변인의 진술이 가장 유력한 범행 동기로 꼽힌다.

이 여인의 지인은 경찰 조사에서 “조 경위가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며 이 여인을 괴롭혀왔고 사건이 발생하기 사흘 전인 지난달 25일 전화로 ‘창피해 못 살겠다’며 호소했다”고 진술했다. 조 경위가 생전 이 여인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녔다는 유력한 증언이 나온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조 경위는 지난 2007년 5월 서울 경찰청에서 고향인 전북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꼭 한 달 만인 같은 해 6월 절도사건 수사를 담당한 조 경위는 범행 현장 근처 미용실에 이발을 하러 갔다 이 여인을 만났다.

그 한 번의 만남 뒤 조 경위는 이 여인의 미용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잦은 만남을 요구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동료들과 업무 이외의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는 조 경위. 그의 참혹한 선택이 우발적이었는지, 계획적이었는지는 미궁 속에 빠졌지만 잘못된 만남에 발을 들인 그의 최후는 씁쓸한 살인극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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