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살할까요?” 자살 모의 체험기
“우리 자살할까요?” 자살 모의 체험기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4-29 09:27
  • 승인 2009.04.29 09:27
  • 호수 106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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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피우면 안 아프데요. 고통 없이 가고 싶어요”
기자가 받은 자살공모 관련 인터넷 쪽지들.

“집이든 학교든 내가 속할 곳이 사라진 기분이에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기자의 이메일 보관함에 날아든 메시지다. 최근 인터넷 공간을 타고 일종의 ‘집단자살 증후군’이 창궐한 가운데 자살을 암시하는 듯 가장한 기자의 글에 한 소녀가 진지한 회신을 보내온 것이다. ‘나에게도 죽을 기회를 달라’는 소녀의 속내는 기자와 함께 동반자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18살, 고등학교 2학년생이라고 밝힌 A양. 기자는 며칠에 걸쳐 A양과 이메일, 블로그 쪽지 등을 통해 대화를 나눈 끝에 소녀의 극단적인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A양과의 대화는 단순히 우울감에 시달리는 미성년자의 푸념을 듣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기자가 주목한 것은 A양의 경우처럼 인터넷을 통한 자살공모가 마치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만큼이나 손쉽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최근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불과 2주일 만에 무려 15명이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은 모두 인터넷을 통해 ‘동반자’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사망자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자살 계획과 맞닥뜨린 것이다.


쓰레기 지식 쓸어 담는 ‘지식검색 서비스’

“너무 힘들어 자살을 꿈꿉니다.”

실제 인터넷을 통한 자살공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평소 사용하는 아이디로 포탈 사이트에 접속해 지식검색 서비스에 글을 올렸다. 최근 포탈사이트의 지식검색 서비스와 블로그 등이 자살 공모자들의 새로운 집결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살을 주제로 만들어지는 이른바 ‘자살 사이트’는 관련 도매인과 키워드 판매가 금지되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글을 올린 첫 날, 기자의 게시물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대부분 ‘죽을 각오로 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 보라’ 등 자살을 만류하는 내용이었다.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 요즘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누리꾼들의 판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메일 보관함을 확인한 기자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도착한 이메일의 제목은 ‘내게도 죽음의 기회를 주세요’였다. 메일을 열자 역시 같은 한 문장이 짤막하게 적혀있었다.


18살 소녀의 ‘자살기도문’

A양과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자살을 계획했고 함께 ‘거사’를 치를 동지를 찾고 있었다. 기자가 더욱 놀란 것은 A양이 다양한 자살방법을 운운하며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꽤나 자세하게 분석했다는 점이었다.

마치 실제 자살기도를 해본 적 있는 듯 박식한 A양에게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느냐’고 묻자 ‘인터넷 지식 검색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자살을 결심하고 나서 틈나는 대로 알아봤다’는 답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다.

2년 전 암 투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A양. 그는 인터넷 쪽지를 통해 어머니, 여동생 등과 함께 살고 있다고 전했다. 소녀가 자살을 꿈꾸게 된 이유는 아빠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생활고 때문인 것으로 짐작됐다.

A양은 쪽지를 통해 “매일같이 돈타령만 하는 엄마와 너무 어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여동생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학교든, 집이든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죽은 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자살을 계획하는 이들이 흔히 착각하듯 A양 역시 죽음 자체를 마치 ‘컴퓨터를 리셋(껐다 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연탄불을 피워 자살하면 안 아프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이 방법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A양은 금방이라도 기자가 자살여행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취재진 신분을 밝힌 기자가 A양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한창 설득하고 있을 때, 또 한 통의 쪽지창이 불쑥 튀어 올랐다.

‘동반하실 분 구합니다. 운전가능하고 당장이라도 떠나실 수 있는 분 답장주세요.’


손만 뻗으면 잡히는 ‘자살 광고’

현재 네이버, 다음을 비롯한 포탈사이트에 ‘자살’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보건복지부와 자살예방협회에서 개설한 자살예방 상담사이트가 가장 먼저 뜬다. ‘자살’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유해 정보로 분류돼 검색이 어렵게 된 것.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카페 등은 사정이 다르다. 자살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교묘하게 짜깁기 하면 관련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열람할 수 있다.

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최근 동반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는 인터넷을 통한 공모가 쉽기 때문”이라며 “최근 들어 모 연예인의 자살 방법이 그대로 모방되는 등 이를 여과하지 않고 보도하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강원지역에서 벌어진 잇단 집단자살로 모두 11명이 사망한 가운데 강원도 양구에서 또다시 동반자살 기도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태다. 강원도에서만 벌써 다섯 번째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 30분께 강원 양구군 양구읍 웅진터널 인근 46번 국도 교차로에 주차된 싼타모 승용차에서 이모(40·서울 중랑구)씨와 박모(19·춘천시)양 등 남녀 각각 2명씩 4명이 동반자살을 기도해 쓰러져 있는 것을 산불감시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박양은 이미 숨져 있었고, 이씨 등 살아남은 3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이나 위독한 상태다.

경찰은 이들이 타고 있던 승용차 창문에 청 테이프가 부착돼 있었고, 승용차 안에는 타다 남은 연탄과 화덕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강원도 내에서 발생한 동반자살은 지난달 8일 정선 민박집(4명 사망), 15일 횡성 펜션(4명 사망), 17일 인제 승용차(3명 사망) 등 열흘 사이 3건의 동반자살로 11명이 숨졌다. 이어 지난 22일 홍천의 펜션에서 벌어진 네 번째 동반자살 기도는 펜션 주인의 빠른 신고로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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