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한국가스공사가 새해 초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석효 사장(사진)의 뇌물수수 의혹이 불거지더니 오랜기간 준비했던 인천LNG생산기지 증설과 관련해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특히 사측이 멋대로 작성한 서류를 인천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파장이 예고된다. 이미 인천시의회와 시민단체, 시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고,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인천시 연수구 국회의원)이 정부 고위층 인사로는 처음으로 기지 증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증설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도 주목된다.
가짜 여론으로 LNG시설 증설 허가 받으려다 들통
황우여 부총리 “진실 밝혀라” vs 사 측 “사실 아냐”
가스공사의 인천LNG생산기지 4지구 건설 사업은 연수구 송도동 소재 25만5353㎡ 면적 부지에 20만 킬로리터 규모의 LNG저장탱크 3기, 기화송출설비, 변전소 등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저장탱크 20기 288만 킬로리터 대비 21%의 저장용량 증설에 해당한다.
도시계획위원회는 기존 안전성 평가 용역 결과보다 강화된 안전 기준 적용,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LNG기지 주변지역에 대한 충분한 보상 지원, 지역주민 의견 적극 수렴 등을 허가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통과시켰다.
인천시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도 중요하지만, 대규모 가스시설의 입지에 따른 주민불안이 없도록 안전대책이 최우선으로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 조건부 승인과정에서 가스공사 측이 서류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된다. 사측이 LNG 생산기지 안전감시 자문 역할에 불과한 ‘안전협의체'를 ‘주민 협의기구’로 속여 도시계획위원회에 보고했고, 이를 근거로 조건부 승인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내용 일부 삭제?
사실이면 승인취소?
안전협의체 관계자는 “안전협의체는 가스공사 시설에 대한 안전감시를 논의하는 기구일 뿐"이라며 “주민을 대표하는 곳이 아닌 만큼 안전협의체와 협의를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는 가스공사의 주장은 허위"라고 폭로했다. 그는 이어 “허위 서류로 승인이 떨어진 만큼 허위 사실이 밝혀지면 승인 취소부터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가스공사 측은 인천도시계획위 심의에 “안전협의체와 회의를 진행하는 등 주민 협의 과정을 거쳤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스공사가 탱크증설에 불리한 회의 내용 일부를 삭제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회의에 참석한 협의체 위원들이 신규 시설의 안전성 검토 용역을 반대하는 대화가 수차례 기록돼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빠져 있었다는 것.
여기에‘안전협의체’는 2005년 가스 누출 사고 이후 주민대표와 시·구의원 및 가스공사 관계자 등으로 구성돼 증설이 아닌 기존 LNG 기지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만 점검·확인하는 것으로 업무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현행 안전협의체 운영규정에도 ‘공사가 운영하는 인천 LNG 생산기지 가스시설’로 정해져 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가스공사가 주민 협의기구로 이용한 것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폭로가 지속되고 지역민들의 불신이 팽배해지자 연수구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황우여 장관과 공병건·정창일 시의원, 이진환 연수구의회 의장 역시 즉각적인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인 공병건 의원은 “안전협의체를 주민 협의기구로 속이고 심의가 통과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기망행위”라며 “관련 기관과 논의해 사실관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윤 부총리는 시의원들과 별도 자리를 갖고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생산기지를)증설하지 못하도록 전화해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발언은 현직 사회부총리로서 가스공사의 관리·감독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압박해 증설 추진을 정치적으로 막아보려는 시도로 풀이돼 주목된다.
황 부총리는 “과거에 가스공사가 20기 이상 추가증설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계속 증설하려 한다"며 “주민안전에 심각한 저해가 돼 증설에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밟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인천지검은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근무하며 예인선 업체 통영예선(주)으로부터 2억8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장석효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장 사장은 한국가스공사 사장에 취임 전 몸 담았던 회사에서 가족 해외여행 경비를 법인카드로 쓰는 등 회사에 30억3000만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혐의도 함께 불거졌다.
현재 장 사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직권으로 해임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장석효 사장은 “지난 1년여 동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현 상황에서 사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가스공사의 조직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편 가스공사 측은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안전협의체가 제기하는 조작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 내용 일부 삭제와 관련해선 “회의록 일부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국가기밀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며 서류를 조작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주민 협의와 공사 착공 등의 후속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강조해 증설 반대에 나선 송도주민과의 마찰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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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