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위조 10만 원권 수표 중국서 수입해 오기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위조수표 제작 전문가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관악경찰서는 지난 3월 19일 수표를 다량 위조해 유통시킨 혐의로 중국동포 이모(30) 씨를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공범 1명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위조범들은 잡혔지만 이들이 유통시킨 다량의 위조수표가 여전히 시중에 나돌고 있어 추가 피해자는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일당들이 만든 위조수표는 전문가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할 뿐 아니라 수표의 일련번호까지 정밀하게 위조돼 번호조회를 해도 정상수표로 나타날 정도다.
지난 1∼2월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일대에서 10만원짜리 위조수표 20여장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는 약국과 마트 등에서 2만∼3만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한 뒤 위조수표를 제시,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거슬러 받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씨가 사용한 수표는 모두 20여장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더 많은 수표가 이씨를 통해 유통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사용한 수표는 일련번호가 정상이어서 조회를 해도 도난이나 분실수표로 확인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제작됐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수표가 중국 등지에서 조직적 위조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가정에서 만들어진 수표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 1월 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가정집에서 컴퓨터 스캐너, 특수 복사지, 홀로그램 인장 등을 이용해 10만 원권 수표 수백 매를 위조했다. 경찰은 이씨가 고난도의 수표위조 기술을 가진 전문가라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중국에서도 위조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국내에 들어온 이후에는 위조조직과 연계해 수표를 만들어 왔다. 수표는 일반 지폐처럼 홀로그램, 돌출은화 등 정교한 위조방지 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런 수표를 어떻게 가정에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경찰은 기술과 장비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위조수표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 기술은 위폐감정가들 조차 혀를 내두르게 한다.
수표의 돌출은화(SPAS)는 용지 제조시 특정문양을 더욱 얇게 제조하는 기술로 앞·뒷면 분리 방지에 효과가 있다. 또 용지 제조시 문양(무궁화) 두께를 얇거나 두껍게 차이를 두어 제조하는 기술로 밝은 빛에 비추어 보면 문양이 선명히 나타나는 정위치은화(무궁화)도 있다. 이외에도 수표는 화공약품을 사용해 위조를 하면 용지 색상이 변하는 변색용지를 써서 제작하고, 용지 제조 과정에서 투입된 특수 섬유로서 육안으로는 실별이 되지 않고 특수한 파장에서만 볼 수 있는 비가시 형광 색사(녹색, 청색)를 쓴다.
이 처럼 철저하게 위조를 방지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위조수표 제작기술자들은 이 모든 기술을 그대로 모방한다. 심지어 수표에 쓰이는 특수용지까지 똑같은 것을 쓴다.
경찰에 따르면 국내에는 위조지폐나 수표의 수요가 많지 않아 전문 기술자들 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위조화폐 시장의 메카라고 할 만큼 위조화폐 수요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의 위조화폐제작 기술이나 장비가 한국보다 훨씬 발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지폐나 수표에 사용되는 특수종이도 또 중국에서 생산된 것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서 위조기술자 수입
중국의 위조기술자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로 흘러들어가 위조화폐를 생산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위조 기술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위조화폐를 만들어 국내로 반입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엔 아예 기술자들을 수입해 국내에서 제작하고 있는 추세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2004년 2월경 50대 남성이 위조수표를 중국에서 위조해 국내로 반입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적발된 노모씨는 중국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면서 100만원권 100장과 10만원권 천 2백여장 등 액면가로 2억 2천여 만원에 이르는 위조 자기앞수표를 여행가방 속에 숨겨 들여오려다 덜미를 잡혔다. 세관 조사결과 노씨는 중국에서 컬러복사기와 컴퓨터 스캐너를 이용해 수표를 위조했으며, 진짜 수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서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위조화폐를 제작하는 이들은 전문적인 조직을 형성하고 있으며 단속에 대비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의 위조화폐 전문가들은 한국행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위조에 대한 방지와 단속이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은 위조조직의 수와 전문가들의 족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위조지폐나 수표가 발견되면 출처를 파악하기 위해 역학 추적하는 게 거의 전부다. 이 조차 쉽지않아 위조는 은밀하게 이뤄지는데다 조직들이 대부분 점조직이어서 추적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편 위조가 만연해지면서 위조기술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2007년 9월엔 60대 노인인 김모씨가 포토샵을 이용해 정교한 위조수표를 만들어 경찰을 놀라게 했다. 김씨는 자택 골방에 컴퓨터와 스캐너, 인쇄기, 그리고 수표용지(펄프 100%)와 재질이 비슷한 중국산 면종이를 비치해두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인 `포토샵'으로 혼자 수표를 위조했다. 환갑 나이에도 포토샵을 다루는 기술이 웬만한 디자이너를 뺨치는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압수한 위조수표가 색상과 질감이 진본과 거의 같고 불빛에 비추면 진본에서 나타나는 무궁화 숨은 그림까지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돼 일반인이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김씨는 잉크 수정액(화이트)과 지방질 기름을 혼합한 액체로 위조수표 뒷면에 무궁화 도장을 찍어 얼룩이 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수법으로 무궁화 숨은 그림을 넣어 진본과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