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지난해 12월 사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성인물을 반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21명을 살해한 살인범이 구치소에서 원하는 성인물을 보며 지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조사결과 유영철은 교도관을 통해 성인물을 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 충격적은 사실은 교도관이 수감자에게 뇌물을 받고 성인물을 반입하는 것이 교도소 내부에서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구매 금액 송금하면 성인 만화책·화보집 받을 수 있어
작업장에서 나오면 교도관 양손에 간식·담배 등 가득
지난 2003년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일대에서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 유영철. 그는 지난해 12월 교도관에게 부탁해 구치소 반입이 금지된 성인화보와 소설 등을 반입한 사실이 적발됐다.
당시 서울구치소에 따르면 유영철은 구치소 물품 구매 대행업체에 돈을 송금한 뒤 교도관을 통해 물건을 전달받았다. 유영철은 대행업체에 “송금은 계좌로 47만 원 했으니 확인하시고 화보, 망가(일본만화), 야설(성인소설)… 양보단 질을 선호합니다. 일본 주간지 사이사이에 표 안 나게 잘 좀 부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또 유영철은 “주의하실 점은 서울 구치소 OOO주임님 앞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교도소가 타인 송금 후
성인물 반입해주는 것”
유영철의 성인물 반입을 도운 교도관은 유 씨의 부탁으로 구매 대행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품 주문 상황을 대신 확인해 주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교도관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지난달 18일 [일요서울]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자신이 충남 모 교도소에 수용중이라고 밝힌 제보자 A씨는 “교도소 측에서 타인에게 송금을 해주고 성인물 반입을 해준다”고 밝혔다.
A씨는 편지에서 “교도소에서 송금을 하려면 가족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송금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교도소 측은 수감자를 대신 해 타인(구매 대행업체)에게 송금을 해주고 성인만화, 사진 등을 검토한 뒤 반입을 허락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또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법무부에 부조리 신고를 했으나 법무부 조사관은 A씨에게 “본인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각하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편지에서 “법무부 측은 교도소에 가혹행위, 인권침해, 부조리 등을 신고하면 포상을 한다고 홍보한다”면서 “그러나 부조리 신고를 했으나 직원들의 잘못에 대해 각하 처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행위는 근절돼야 하기 때문에 제보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편지와 함께 증거품으로 성인화보를 함께 동봉했다.
작업장에서 교도관에게
담배·돈 받고 성인물 배달
위 제보 사례에서 보듯이 교도소 내에서 교도관들이 수감자 대신 성인물을 반입해 주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성인물이 교도소 내 반입 금지 물품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의 행동을 눈 감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앞장 서서 그들의 물품을 대리 구매해 주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행동이 교도관들에게 손해는 아니다. 이미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는 만큼 들켰을 때 부담이 크지도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도관에게 부탁해야 하는 입장인 수감자들은 교도관들의 명령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다루기 어려운 수감자들이 교도관과 친해지면 통제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사고도 줄어드니 교도관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감자들은 교도관에게 뇌물도 건네준다.
수년 전 경북의 모 교도소에서 경비교도관으로 근무했던 B(32)씨는 “작업 나가는 수감자들은 경비교도관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B씨는 지난 6일 [일요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당시는 스파크라는 성인 잡지가 나왔다”며 “수감자들은 교도관이나 경비교도관을 통해 성인잡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작업에 참여하는 수감자들은 금지물품 반입을 위해 경비교도관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경비교도관에게 담배, 돈 등을 건네주며 친분을 쌓는다. B씨는 “근무 당시 고참 경비교도관이 작업장에서 나올 때마다 양 손 가득 간식, 담배 등 수감자에게 받은 뇌물을 들고 나왔다”며 “후임 앞에서는 아닌 척 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고참은 휴가 복귀 때마다 수감자에게 원하는 물건을 전달해 줬다”고 말했다.
제과·김치·음료수 등
물품 구입 가능
한편, 교도소 내 구매대행 업체와 관련해 법무부에 질문했으나 법무부 관계자는 “관련부서에서 검토 후 답변이 가능해 시일이 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매 대행업체를 통해 물품을 구매하는 것 외에 수감자 들이 교도소 안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법무부에 따르면 교도소 총무과의 ‘구매’라는 부서는 100여종의 일상용품을 판매해 수감자들에게 ‘슈퍼’ 역할을 하고 있다. 구매부서에서 판매하는 물품은 바로 음식과 의류, 일상용품과 문구류 등이다.
음식은 제과, 김치, 과일, 식품, 계란, 음료수 등이다.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자와 땅콩, 고추장과 건조오징어, 닭고기 훈제, 컵라면 등 일반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물품들이 교도소 내부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음료 또한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이온음료 과일음료 우유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한다. 커피와 녹차, 호박죽, 생강차 등 차도 판매도 수감자들이 기호에 맞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또 수감자들을 위한 옷도 판매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버티도록 도와주는 내의와 덧버선, 장갑, 귀마개, 침낭, 담요뿐만 아니라 반팔 티, 양말, 속옷 등 필요한 의류는 모두 마련돼 있다.
생활용품으로는 세숫비누와 세탁비누, 목욕수건, 거품 타올, 고무장갑, 면도기, 빨래집게, 면봉, 생리대 등이 구비돼있다. 치약 칫솔 등 세안도구는 물론이고 교도소 내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장기와 바둑 세트도 판매하고 있다. 손목·발목 보호대와 피부 타입에 맞게 스킨·로션도 구매가 가능하다.
그밖에도 볼펜, 지우개, 형광펜, 앨범, 문구용 풀, 편지지, 편지봉투 등도 판매한다.
이러한 물품들은 모든 물건에 부가되는 10% 가량의 부가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시중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대신 교도소 특성상 사회에서 판매하는 물품과 용기가 다른 물품이 있다. 병에 담겨 있는 스킨, 로션의 경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판매하는 것이다.
이 밖에 판매하지 않는 물품 중 의약품, 책 등은 구매 대행업체를 통해 구매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