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비서실장 출석 지시하자 김영한 ‘사의 표명’
청와대 공직기강 해이 ‘생중계’…인적쇄신 탄력받나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지난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단연 핫한 인물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영한 수석이 사의를 표했다’고 하더라”며 “김 수석이 ‘나는 사퇴할 거니 출석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김 수석의 발언은 모두를 당황시켰다. 김 비서실장은 ‘사퇴를 건의하겠다’고 했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항명사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통’으로 불렸던 김 수석 개인적으로도 흠집이 났다.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힌 김 수석을 집중 탐구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9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시작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사유서를 제출했다. 여야간의 불출석 공방이 벌어져 여야는 간사 간 합의를 통해 출석을 요구했고, 김 실장도 출석 지시를 내렸으나 ‘사의 표명’을 해버렸다.
이에 김 실장은 “출석하도록 지시했는데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는 취지의 행동을 지금 취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출석을 요구하고, 비서실장이 지시한 데 대해 공직자가 응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응분의 책임 물어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김 전 수석에 대한 사표를 수리했다.
‘김영한 항명사태’ 전말
일련의 과정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항명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급작스러운 사의 표명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 김 전 수석이 항명을 선택한 것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는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야당의 압박에 밀려 출석하면 현안이 터질 때마다 ‘민정수석 출석’이라는 관례를 만들 수 있어, 비서실장 지시를 거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이 지배적이다. ‘상명하복’ 문화가 뚜렷한 검찰 조직에서 30년 이상 공직생활을 해왔던 김 수석이고 직속상관인 법조계 대선배가 김 실장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문건 유출자 중 한 명인 한모 경위를 ‘회유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문건 유출자로 지목돼 자살한 최모 경위가 유서에서 한 경위에게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한 유서가 공개된 적이 있다. 야당의 집요한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의라는 강수를 던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역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김기춘 VS 김영한 갈등 등 청와대 내 권력 갈등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김 전 수석의 ‘항명 사태’가 청와대의 현재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생중계한 것이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사회 기강 확립을 강조했지만 정작 청와대 내에서부터 이러한 ‘항명 사태’가 불거지면서 내부 단속에 실패했다. 더 나아가 지난해 9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셀프 퇴진 이후 전례를 찾기 힘든 형태다. 김 실장과 비서진들의 공직기강과 명령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김 전 수석의 항명사태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선의혹에 대한 야당의 특검도입 압박과 청와대를 향한 안팎의 쇄신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상당히 유감”이라고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항명사태’를 꼬집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기강의 문란함이 생방송으로 전국민에게 중계된 초유의 사태”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너무 황당한 상황”이라며 “청와대 기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힘을 받고 있다. 이 역시 김 전 수석의 사퇴가 물꼬를 튼 격이다. 김 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진 등이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만큼 청와대 내 기강부터 확립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인적쇄신이 더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호불호 갈려
인적쇄신론까지 불을 붙이게 한 김 수석은 어떤 인물일까. 1957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대구 경북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 법학과를 수료한 뒤 사법고시 24회로 법조계에 입성했다. 광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대구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1부장, 청주지검장, 대구지검장, 수원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등을 역임했다. 검사 생활을 마무리한 후 그는 2012년 변호사로 개업하고, 지난해 6월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
검사 시절 정치적 사건을 수사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운동을 주도했던 문성근 전 대표를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김상곤 당시 경기교육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당시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전 수석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상황 판단력과 조직 장악력이 우수하다는 것. 또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신 있게 할 말을 할 뿐 아니라 주관과 개성이 강해 선후배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린다는 평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 전 수석이 1990대 초 검사 시절에 술자리를 함께한 검찰 출입기자 한 명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 전력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동료 검사 및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강제로 술을 권하는데 항의한 일간지 기자의 머리를 맥주병이 깨질 정도로 강하게 내려쳤다는 게 주된 골자다.
한편, 김 전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적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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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