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반대’, 김무성 ‘찬성’, 일부선 ‘자진사퇴론’ 대두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거취가 여권의 역학구도를 좌우할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임명 여부에 대한 결정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친박계에서는 ‘박세일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라며 강행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을 둘러싸고 당내 계파갈등으로 번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갖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친박에서는 ‘박세일을 배신자’라고 지칭하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과거 악연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을 놓고 새누리당 계파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박 이사장이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
1948년 서울에서 출생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서울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또한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넬,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탓에 ‘박세일 사단’도 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윤건영 전 여의도연구소장 등이 모두 ‘박세일 사단’으로 불렸던 것.
친박에서 비박으로
그가 정치권에 입문한 계기는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정책기획, 사회복지수석을 지내면서부터다. 특히 사법·교육 개혁, 노동법 개정 같은 굵직한 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학자 박세일’이 개혁이란 화두를 던지면서 변화를 시도했다. 국가전략으로 ‘세계화’라는 화두를 제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개혁성향의 학자들을 규합, 경제정의실현시민연합이란 시민단체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박 이사장은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17대 국회 때 박근혜 대통령의 제의를 받았던 것이다. 17대 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 겸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을 때는 공천의 전권을 박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았다. 박 대통령과 박 이사장이 ‘투톱체제’로 17대 총선을 치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 대통령은 그를 신뢰했다. 박 대통령이 박 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 정책위의장으로 중용한 전례가 있다. 이로 인해 박 이사장은 박근혜 사람, 이른바 친박으로 분류됐다.
그는 박 대통령과 함께 가는 듯 보였지만 결국 갈라서고 말았다. 세종시특별법을 두고 이견을 보였던 것이다.
실제 박 이사장은 지난 2005년 세종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반발, 국회의원직을 던졌다.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권 분할법’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 더 이상 의원의 책무를 수행 할 수 없다”는 게 주된 골자다.
그 당시 박 이사장은 “세종시가 행정도시가 아니라 기업도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박 대통령은 2007년 출간한 자서전을 통해 이렇게 표현했다. “2004년 총선 직전, 내가 대표가 되자마자 내 손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모셔왔던 박 의원의 사퇴에는 정말 가슴이 무너져내릴 만큼 아팠다.”
이후 두 사람은 갈수록 멀어졌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친이계와 친박계가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박세일 사단으로 분류됐던 이들이 대거 친이계 캠프로 합류했다.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하면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반면, 박 이사장은 2011년 선진통일연합을 출범시켰다. 정치성을 부정하며 보수진영의 시민단체를 표방했다. 이는 국민생각의 전신이 되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생각을 창당, 박 대통령 비판에 앞장섰던 전여옥 전 의원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친박 내에서는 박 이사장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다. 친박계 내에서 그의 입지도 친박핵심→배신자→비박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이후 그의 정치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국민생각은 19대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해 등록이 되지 않았다.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영양가’가 없었다는 평이다. 단순한 보수 진영의 지지선언에 불과했던 것이다.
각종 시나리오까지 나돌아
친박계와의 악연이 지속된 탓일까. 최근 김무성 대표가 박 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친박계에서 들고 일어섰다.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허니문’ 관계를 유지해왔던 친박계가 김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릴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22일 비공개 당 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박세일 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우려하는 의원들이 많다. 재고(再考)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하자 김 대표는 “박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고, 청와대도 반대하지 않는 걸로 안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서 최고위원은 “가까운 사람들만 임명하려 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고, 김 대표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서 최고위원은 서류를 집어 던지며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친박계가 여의도연구원장 자리에 박 이사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등 계파별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에서는 여의도연구원을 장악, 정보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특히 여의도연구원을 장악해 20대 총선에서 친박계 인사들 대거 색출해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김 대표의 의중이 깔린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여론조사의 틀을 만드는 것이 여론조사 자체보다 더 중요한데 여의도원장과 당 대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김 대표와 박 이사장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고민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박 이사장의 임명을 놓고 계파갈등까지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친박계가 김무성 체제를 흔들기 위해 서청원, 이정현, 김을동 등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탈당해 김 대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계파갈등이 촉발되면서 박 이사장의 임명 안건은 잠정 유보됐다. 다만 언제든지 이 문제로 인해 당내 계파갈등이 극에 달할 가능성은 있다. 과연 여의도연구원장에 박 이사장 임명을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서로 타협점을 찾을지, 아니면 김 대표가 박 이사장 임명을 강행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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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