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범죄 저지르는 ‘나쁜 씨’ 가리는 방법
패륜범죄 저지르는 ‘나쁜 씨’ 가리는 방법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3-03 16:44
  • 승인 2009.03.03 16:44
  • 호수 775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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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은 머릿속부터 다르다
지난달 23일 광주 광산구 모 아파트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집에 살고 있던 허모(30)여인과 두 아들(5살·2살)이 불에 탄 참혹한 시신을 발견된 것. 잔혹한 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이 집의 가장 최모(29)씨로 드러나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더욱 엽기적인 사실은 최씨가 아내와 친아들을 살해하고도 태연히 사건현장에 나타나 ‘누가 내 가족을 죽였느냐’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는 점이다. 부검결과에 따르면 숨진 허 여인은 날카로운 흉기로 목과 가슴 등을 10여 차례나 찔렸고 5살 난 큰 아들은 7번이나 난자당한 뒤 시신이 불태워졌다. 사건 당시 잠들어있던 막내아들은 산 채로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엔 사람 한, 두 명 죽어나가는 사건·사고는 평범한 뉴스에 속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법정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패륜범죄의 ‘나쁜 씨’들이 특유의 뇌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태연히 거짓 진술을 일삼고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들’은 머릿속부터 다르다는 얘기다.


“공주 다방레지 살해범, 강호순 보다 독한X”

8명의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마 ‘강호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국에서 ‘강호순 닮은꼴’이 출몰하고 있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20대 보일러공이 고객인 50대 여교수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고, 올해 1월 충남 공주에서는 다방종업원 6명을 유인해 성폭행하고 이 중 2명을 살해한 김모(56·무직)씨가 검거되기도 했다.

특히 충남 공주경찰서 관계자들 사이에서 김씨는 “강호순 보다 독한X”이라는 악명이 자자하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여종업원들을 유인하고 성폭행하는 과정을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놨다”며 “마치 자신이 강호순보다 한수 위라는 자부심까지 느끼는 듯 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강호순처럼 유치장 안에서 여유 만만한 태도로 수사관들을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절도 용의자로 경찰에 잡힌 뒤 살인 사건 피의자로 지목되자 기다렸다는 듯 본인의 ‘전적’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는 얘기다.

경기지방경찰청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세간을 놀라게 한 잔혹범죄 피의자들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 경우와 강호순이나 김씨처럼 범행자체를 하나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포장하는 부류다.

지난주 검거된 광주 일가족 살해사건의 범인 최씨는 전자에 속한다. 사건이 벌어진 지 7시간 만인 다음날 아침 9시경 최씨는 멀쩡한 얼굴로 나타나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을 해 경찰의 눈을 속였다.

그러나 수사 결과 최씨의 잔혹한 본성은 금세 드러나고 말았다. 부인과 숨진 큰 아들의 핏자국이 낭자한 최씨의 옷가지가 발견된 것. 뿐만 아니라 최씨는 범행 당시 마지막 저항을 하던 아내에 의해 손목을 크게 다쳤고 이를 추궁하는 수사팀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돈 또는 여자. 최씨가 노린 것?

최씨는 한 살 연상인 허 여인을 혼전 임신시켜 결혼했지만 식을 올린 뒤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다. 그는 경찰에서 “아내가 시댁 험담을 자주해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최씨는 아내 뿐 아니라 살해 현장을 목격한 큰 아들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난자했다. 이는 피해자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 위해 확인사살을 했다는 뜻이다.

더욱이 경찰은 최씨가 자신과 아내, 두 아들의 명의로 무려 9개의 보험 상품에 가입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보험금의 규모는 수억원대로 알려졌다. 만약 최씨 역시 가족의 목숨 값으로 나올 목돈을 노렸다면 약 4억원의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부인과 장모를 살해한 강호순과 완벽하게 닮은꼴인 셈이다.

최씨의 범행 동기는 보험금만이 아닐 수도 있다. 집 근처인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에서 소규모 편의점을 운영하던 최씨는 평소 복잡한 여자관계로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지난 2007년에도 그는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최씨가 내연녀와의 새 출발을 위해 아내와 아들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특히 일가족을 살해한 뒤 안방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화재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도 이 같은 추리를 가능케 한다. 단순히 보험금을 원한 것치고는 범행 수법 자체가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없다.


“패륜살인마, 정신적 불구자들”

연쇄살인이나 패륜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히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들의 뇌구조는 과연 일반인과 어떻게 다를까. 일부 법정신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범죄자들을 죄책감이나 연민 같은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자’라고 부른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팀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의 뇌를 비교했을 때 사이코패스들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뇌 기관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연구진은 도덕적인 판단을 요하는 질문을 실험대상자들에게 했다. 이때 사이코패스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반응하는 감성중추인 편도 활성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감성중추의 활성도가 떨어질수록 죄책감 없이 상대방을 속이고 이용하며, 충동적·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인식하지 못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타인과의 정상적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립법무병원 최상섭 원장은 “편도 등의 뇌 기관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나 자신의 감정과 관련된 곳이다”며 “사이코패스들이 이 부분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상당부분 신뢰할 수 있는 얘기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무조건 뇌 기능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사이코패스와 같은 극단적인 인격 장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패륜살인자의 뇌구조와 범죄이력 사이의 연관성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셈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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