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방위, 방위사업 관련 2대 의혹 진상조사 착수

우리나라의 국방을 책임질 대규모 방위사업이 현대와 대우라는 두 대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적잖은 사회적 파문이 예상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양대 조선업체가 7000톤 급 한국형 구축함 수주 계약을 놓고 담합 행위를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두 회사가 수주한 구축함과 잠수함 사업비용은 4조9000억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은 담합을 통해 구축함 수주 가격을 5년 동안 200억원 가까이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파문이 일자 국회 국방위원회(위원장 김학송)가 칼을 빼들었다. 국방위는 이번 달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계획이다. 해당 기업들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만약 두 업체의 ‘부적절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국방위는 지난달 24일 7000톤 급 한국형 구축함(KDX-II, KDX-III)과 잠수함 획득사업(장보고사업), 차기전차(흑표)사업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국방사업 관련 의혹의 핵심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구축함, 잠수함 계약 담합 여부다.
1년에 40억씩 가격 올라
국방위는 관련 의혹에 대해 2008년도 국정감사와 2009년도 예산안심사, 업무보고 등을 통해 수차례 방위사업청에 질의를 보냈지만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자 본격적인 진상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형 구축함 획득사업과 관련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번갈아 계약을 수주하는 수법으로 입찰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려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두 회사의 ‘이상한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11월 대우조선해양이 KDX-II 건조 계약을 수주한 것부터 시작해 다음해 6월에는 현대중공업이 같은 구축함의 건조 계약을 따냈다.
또 불과 4개월 뒤인 2000년 10월에는 다시 대우조선해양이 세 번째 KDX-II 건조를 맡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2004년까지 5년 동안 총 6대의 구축함이 건조됐고 우연찮게도 두 회사는 각각 3건씩의 계약을 보기 좋게 나눠먹었다.
이러는 사이 구축함 수주 가격은 1999년 1139억원이었던 것이 2004년 1335억원으로 약 200억원 가까이 뛰어올랐다.
같은 기종의 구축함이 회사가 바뀔때마다 40억원씩 비싸졌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KDX-II의 후속기종인 KDX-III의 건조 계약도 두 회사가 모조리 독식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3번의 계약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 순으로 따냈다. 두 회사가 수주해 건조한 한국형 구축함은 모두 9대로 총사업비만 4조9000억원에 이른다.
장보고함사업으로 불리는 잠수함 사업에도 ‘기묘한 우연’은 이어졌다. 2000년 초 현대중공업이 최초로 잠수함 3대를 수주한 것에 이어 지난해 대우가 4번째 잠수함을 건조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국방위는 특히 두 기업이 계약을 번갈아 따내면서 입찰 가격을 계속 올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방위 관계자는 “처음 구축함을 만든 다음에는 개발비 등 초기투자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가격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며 “그런데 입찰 방식을 통해 오히려 가격이 계속 비싸졌다.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고 말했다.
해당업체, ‘억울한 누명’ 발끈
반면 의혹에 휘말린 업체들은 모두 ‘억울하다’며 항변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방위사업 입찰 과정은 개별 업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위사업청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식”이라고 귀띔했다.
의혹과 관련된 모든 진실은 해당 기업이 아닌 방위사업청 차원에서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회사의 공식 입장이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신문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아직 국회 국방위나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조사와 관련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구축함 계약을 주고받은 정황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두 기업에 따르면 이는 회사 간 부적절한 담합이 아닌 입찰과정에서 적격심사를 거친 당연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방사업의 경우 최소 발주 기간이 1~2년이 넘어가는 장기 공사가 대부분”이라며 “만약 두 업체 가운데 한쪽이 직전 계약을 수주했으면 해당 기업의 적격심사 점수가 낮은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즉 한 업체가 구축함 한 대의 건조 계약을 체결하면 다음번 수주는 다른 업체에게 교대로 맡기는 게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특히 해당 기업들은 ‘국방사업 자체가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런데 밑지는 장사를 하려고 담합까지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관련 계약을 따내도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는 조항 자체가 없는데다 기업 입장에서는 엄청난 시설투자와 R&D(연구개발)을 하면서 사실상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수조원에 달하는 국방사업 의혹을 놓고 국회가 칼을 빼든 가운데 대기업과 방위사업청이 얽힌 진실게임이 베일을 벗게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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