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대권의 꿈 … DJ를 모방하라
끝나지 않은 대권의 꿈 … DJ를 모방하라
  • 홍성철 
  • 입력 2004-10-19 09:00
  • 승인 2004.10.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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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이 전총재는 그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 전총재는 최근 서울 남대문에 개인사무실을 개소하는 등 활동재개를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또 지난달 21일 옥인동 자택을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히는 등 정국 현안문제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전총재의 이러한 일련의 행보에 대해 정치권은 이 전총재가 정계복귀를 위한 수순밟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총재측이 과거 DJ(김대중 전대통령)의 행보를 교본 삼아 이른바 ‘뉴 DJ플랜’을 물밑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이회창 복귀설’이 나돌았던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현정부 출범이후 재신임, 불법대선자금 수사, 탄핵정국 등 정국불안이 심화될 때마다 이 전총재의 팬클럽인 ‘창사랑’을 중심으로 ‘이회창 복귀론’이 제기됐던 것. 또 이러한 복귀론은 대선 패배 이후 줄곧 미국에 머물고 있었던 이 전총재가 개인적인 사유로 일시 귀국할 때마다 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하곤 했다.하지만 이 전총재는 이러한 복귀론을 강력하게 부인해 왔다. 실례로 지난해 10월30일 SK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사과 기자회견을 위해 정계은퇴후 10개월여 만에 당사를 찾은 이 전총재는 정계복귀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선 직후 국민에게 말씀드린 심경에 전혀 변화가 없다”며 ‘복귀론’을 일축한 바 있다.

이후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측근들이 줄구속됐지만 그는 함구로 일관했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만큼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게 이 전총재측의 입장이었다.이 전총재측의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복귀론’은 여전히 정치권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다. 특히 현 정국이 국보법 개폐, 과거사 문제 등 치열한 보-혁 대결구도로 치달으면서 당 일각에서는 ‘이회창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지난달 21일 박근혜 대표가 옥인동 자택으로 이 전총재를 방문한 것도 이러한 역할론과 무관치 않다. 현재 한나라당의 최대 지상과제는 ‘정권창출’이다. 잇단 대선 패배로 “더 이상 야당 못하겠다”는 볼멘소리가 당 내부에 만연해 있다. ‘정권창출’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고정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대권주자로 내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박 대표의 옥인동 방문 배경에는 이러한 당내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보수층 결집’과 ‘이회창 끌어안기’라는 나름의 대권 포석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두 사람이 회동을 통해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전총재는 비록 정계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나라당 대주주로서 영향력이 남아 있고, 박 대표 역시 당권을 장악한 유력한 차기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정치적 셈법을 달리하더라도 표면적으로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지지층 결집을 극대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전총재의 최근 일련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시너지 효과와 무관치 않다.

이 전총재는 박 대표와의 회동때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21명이 의원직 사퇴를 각오하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국보법 폐지 반대 뜻을 밝히는 등 정국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또 최근에는 서울 남대문로 한 빌딩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총재는 이 사무실에서 집필 활동을 하는 동시에 지인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 이 전총재의 한 측근은 “지난 연말 귀국한 뒤 너무 집에만 칩거해 주변에서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사무실을 내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해 이뤄진 일”이라며 정치활동 재개 등 확대해석을 경계했다.하지만 이 전총재의 이러한 행보가 정계복귀를 위한 수순밟기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이 전총재가 충남 예산에 있는 선친의 묘를 지난 4월말 이장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 전총재의 정계복귀를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

이장된 장소는 한때 ‘왕기 서린 명당’으로 화제가 됐던 김종필 전자민련총재의 부모 이장 묘가 있는 신양면 하천리에서 3㎞ 떨어진 곳이다. 이 전총재측은 “지난 대선 직전 쓴 묘가 나중에 신고하고 보니 집단거주지 500m이내에 있어 불법 묘지가 되는 바람에 옮기게 됐다”며 이장 배경을 설명했다.하지만 92년 대선 패배후 정계를 은퇴했다 95년 정계에 복귀한 DJ가 경기도 용인군으로 부모 묘를 이장한 후 97년 대선때 당선된 사례에 비춰볼 때 이 전총재의 선친 묘 이장 배경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대권플랜’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정치권 관계자들도 이 전총재가 정계복귀를 시도할 경우 그 기본 모델은 DJ의 복귀 플랜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선거 다음날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했던 DJ는 이듬해(93년) 1월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6개월 후 귀국했을때 ‘DJ 정계복귀론’이 무성히 나돌았지만 DJ는 이를 전면 부인했었다.이후 95년 6월 지방선거 때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에 나선 DJ는 지방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그해 7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또 풍수에 따라 부모 묘를 이장했고, 97년 대선때 정권창출에 성공했다.이처럼 DJ의 복귀 플랜과 정권창출 모델은 이 전총재에게는 더 없는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고령의 나이가 정계복귀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DJ식 모델은 희석시켜주고 있다.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때(92년)는 67세였고, 정계복귀를 선언한 때(95년)는 70세, 그리고 97년 대선에 승리했을 당시 나이는 72세였다.

이 전총재의 현 나이는 69세다. 정계은퇴는 DJ와 똑같은 67세에 했다. 2007년 대선까지는 아직 3년 세월이 남아있고, 그때 그의 나이는 72세가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전총재가 DJ의 플랜을 업그레이드 한 ‘뉴 DJ플랜’을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는 것은 이 전총재와 DJ의 유사한 정치행보에서 기인한다. 또 DJ의 정계복귀 플랜에 비춰볼 때 이 전총재의 정계복귀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명분과 시기, 국민적 공감대만 충족되면 언제든 복귀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관측.개인사무실 개소 등 본격적인 활동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 전총재가 DJ의 정계복귀 플랜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그의 향후 정치행보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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