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버린 슈틸리케호, 아시안컵에서 완생으로 거듭날까
과거 버린 슈틸리케호, 아시안컵에서 완생으로 거듭날까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5-01-05 15:56
  • 승인 2015.01.05 15:56
  • 호수 1079
  • 5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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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원톱 부재 불구 박주영 카드 과감히 버려…팔색조 전술
 55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으로 러시아 월드컵에 시동 건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을미년 새해를 대한민국 축구가 문을 열게 된다. 오는 9일 4년 만에 열리는 아시안컵이 호주에서 개막하면서 대표팀은 지난해 월드컵 충격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대표팀의 수장으로 부임한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 역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명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더욱이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과거를 도려내고 미래 자원에 집중하면서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표팀이 미생에서 완생으로 거듭날지를 놓고 축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27일 호주에서 개막하는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출정을 위해 출국에 앞서 “아시아 맹주의 전통을 이어가겠다. 우승하겠다”며 “우리는 호주에 놀러가는 게 아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대회에) 임한다”고 굳은 결의를 다졌다.

아시안컵을 놓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향한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전술과 전략에서 변신을 꾀할 작정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말처럼 축구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조차 성과를 내기에는 녹록치 않아 보인다. 한국축구의 주축이었던 박지성도 “목표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냉정한 입장을 전했을 정도로 추락해 있다.

특히 한국축구는 아시아의 맹주로서 자리매김했지만 아시아의 최고 무대에서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마지막 우승은 1960년 제 2회 대회에서였고 2000년대 이후 4차례 대회에서 3번의 3위와 1번의 8강 진출이 전부였다. 우승트로피는 먼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그만큼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이 한국축구의 변화와 체질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더욱이 그간 4차례의 A매치에서의 실험 결과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간고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안한 전력
우승보다 최선

그러나 박지성의 지적처럼 한국축구의 전력은 불안하다. 공격도 수비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골결정력을 이끌 마땅한 공격자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선 공격진으로 이근호(엘 자이시), 조영철(카타를SC)와 슈틸리케호 신데렐라로 평가받는 이정협(상주상무) 등 3명을 배치했지만 원톱 자원으로서는 여전히 의문점을 낳고 있다.

여기에는 유력한 원톱 자원인 이동국(전북현대)과 김신욱(울산현대)이 나란히 부상으로 제외되면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다.

또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논란 속에서도 주요 대회의 원톱으로 나섰던 박주영(알 샤밥) 카드를 버림으로써 박주영바라기에 대해 선을 그어 과거를 추억하기보다 새로운 대안을 찾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만 손흥민(레버쿠젠), 이청용(볼턴) 등이 버티고 있는 공격 2선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전방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멤버를 찾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비진 역시 브라질 월드컵 참패 이후 후유증에서 말끔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9월 이후 6차례의 A매치 중 무실점은 단 2회에 불과하고 주전 골키퍼도, 중앙 수비수도 여전히 2% 부족한 실정이다. 호흡도 잘 맞지 않아 단단한 뒷문을 위한 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우승보다 더 높은 가치로 ‘최선’을 내세우며 아시안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하는 ‘온사이드’ 신년호를 통해 “우리 코칭스태프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은 약속할 수 있다. 4차례 평가전을 통해 선수들은 모두 국가대표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열심히 뛴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면서 “다만 아시안컵에서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다. 노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대회 우승 여부는 여러 외부적 요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에 대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상 아시아 3위다. 아시아 1, 2위는 이란과 일본이다. 당연히 랭킹에 앞선 일본과 이란이 좀 더 우승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들어올 때는 지금보다 랭킹을 끌어올리고 환영받으며 귀국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잇달아 지적하면서 이번 아시안컵으로 변신에 성공할지 관심사로 떠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달 29일 호주 시드니 매쿼리 대학 훈련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생각, 접근법,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누구를 원톱 공격수로 쓰느냐, 득점을 어떻게 이루느냐 등의 전술적 문제를 논하기 전에 반드시 미리 해결해야 할 원론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주로 K리그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축구는 볼을 점유하려 하지 않고 수비하는 데 신경을 더 많이 쓴다”며 “최대한 볼을 많이 점유하고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욕적인 자세를 선수 개개인에게 주입하는 게 현 시점에서 내가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K리그가 ‘공격 축구’를 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공격 축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슈틸리케 감독의 평가다. 더욱이 세계 축구의 최신 트렌드인 새로운 개념의 토털 사커가 한국 축구에는 이식되지 못했다는 것.

슈틸리케 감독은 과거 특정 선수에게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그라운드에 선 그 누구도 플레이메이커로서 팀 플레이를 풀어내고 득점 기회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뉴시스>
명성보다 필요성
즐기는 축구가 화두

이에 따라 슈틸리케 감독은 기존의 명성보다는 팀에 필요한 선수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담에 최종엔트리 23명을 선발했다.

특히 이번 최종엔트리에 브라질월드컵 때의 절반 정도인 11명이 새롭게 가세했다. 수비수 8명 중 4명, 미드필더 9명 중 4명 등 전 포지션에 걸쳐 월드컵 출전 선수와 비 출전 선수간의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물론 브라질월드컵 예비엔트리 7명 중 무려 6명이 아시안컵 최종엔트리에 승선해 완전하게 새판을 짰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A매치 경험이 전무한 이정협을 내세우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또 호주 시드니에서 담금질에서 들어가면서 ‘킵 더 볼(Keep the ball)’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는 “내 말은 수비 축구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며 “과감한 공격 축구를 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킵 더 볼’이다. 우리가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 상대는 절대로 득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단순하게 공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공격적이면서도 유의미한 점유율을 놓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볼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횡패스나 백패스를 남발하는 건 곤란하다”면서 “끊임없이 전진하면서 공격 기회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0-0에서 지지 않는 축구를 추구해 승점 1점을 따는 것보다 점수를 뽑아내서 승점 3점을 획득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은 다양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고 있다. 코칭스태프가 10초, 30초 등 주어진 시간을 외치면 그 시간 동안 공을 최대한 오랫동안 소유하면서 효율적인 패스로 상대 수비를 뚫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슈틸리케 감독의 2015년 화두는 즐거운 축구다. 그는 “즐거움이 없는 삶은 따분할 뿐”이라며 “우리 대표팀이 즐거움을 주도록 노력하겠다. 즐거움을 주는 축구를 하려는 우리 대표팀의 노력이 새해에는 반드시 현실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듯 슈틸리케 감독은 ‘놀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전술을 이식하고 있다. 두 팀으로 나눠 중원에서 마구 뒤섞여 공을 주고받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재빨리 정해진 포메이션을 형성하는 게임이다. 정해진 자리는 없다. 자신의 포지션에 관계없이 4-4-1, 3-3-3, 4-3-2, 4-5, 3-2-4 등 무작위로 주어지는 전열을 빨리 형성하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를 통해 전술의 유연성을 극대화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공격 시 잦은 포지션 이동이 일어나고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이 때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빈 공간을 채우면서 공격에 가담하면 파괴력을 높일 수 있다.

더욱이 이는 원톱자원들의 합류 불발로 생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공격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비 전환 때도 빠르게 조직력을 정비하면 상대 역습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4-3-3, 4-2-4 등 자유자재 전술을 바꾸는 팔색조 전술을 예고한 바 있다.

이제 축구대표팀은 아시안컵을 필두로 올해부터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을 시작한다. 또 8월에는 동아시안컵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슈틸리케 감독의 각오와 염려도 남다르다. 하지만 아직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지 얼마 안 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그의 전술이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여전히 빈약한 공격자원들 속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원톱을 발굴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한다. 결국 이번 아시안컵은 축구팬들에게 승리보다 인내를 경험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 전 감독의 경질 외에는 바뀐 것 하나 없었던 한국 축구가 그 아픔을 딛고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축구가 제 2의 도약을 모색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슈틸리케 감독의 말처럼 즐기는 축구 문화가 축구계에 확산된다면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뿐만 아니라 한국축구의 대들보인 K-리그가 유럽의 명문 축구 리그처럼 급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의 숨어 있는 발톱이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

한편 축구대표팀은 오는 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다움에서 오만과 A조 1차전을 치른 뒤 13일에는 쿠에이트, 17일에는 호주와 상대로 경기를 갖는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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