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취재-사설탐정 양성소 ‘한국민간조사협회’를 가다

2001년 일본 동경에서 유학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 피살됐다. 경찰은 피살자의 남자친구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그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A씨는 풀려났다. 피해자의 죽음이 미궁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순간, 홀연히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명탐정.
일본으로 건너간 명탐정은 소속 요원들과 함께 곧장 시신이 발견된 현장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셔츠 단추 한 개를 찾아냈다. A씨가 사건 당일 입고 있던 옷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A씨는 떨어진 단추를 새로 달고 경찰을 속였지만 명탐정의 예리한 수사 본능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다. 명탐정은 증거물로 입수한 단추의 제조날짜를 분석해 문제의 단추가 사건 당일 A씨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떨어트린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 같은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한 명탐정은 다름 아닌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이다. 국내 최초 국제 공인 민간조사전문가인 유 회장은 한국 사설탐정업계의 대부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판 셜록 홈즈’ 양성소인 한국민간조사협회를 찾아가 대한민국 사설탐정업계의 생생한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봤다.
지난해 9월 부산 경성대 평생교육원에 국내 최초로 사설탐정 양성 과정이 개설됐다. 한국민간조사협회(회장 유우종)와 산학 협력을 통해 개설된 ‘민간조사 최고전문가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민간조사전문가(Private Investigator·이하 PI)는 국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각종 사건·사고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증거 수집 등 조사업무를 수행하는 이른바 ‘사립탐정'을 말한다. 국내 최초 국제 공인 PI인 유 회장이 직접 강단에 서는 이곳에는 유능한 명탐정을 꿈꾸는 수강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분당에 위치한 한국민간조사협회 본원에서 만난 유 회장은 “경찰이나 법원이 풀어주지 못하는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PI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삼촌의 억울한 죽음 밝히지 못해 한…”
유 회장이 사설탐정업계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30여년.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가 ‘국내 1호 사설탐정’으로 변신한 데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막내삼촌이 서울 모 호텔 테라스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유 회장은 “당시 경찰은 삼촌이 추락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주변 정황이나 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전혀 얼토당토않은 수사결과였다”고 말했다. 불과 2층 높이밖에 안 되는 곳에서 난간에 기댔다 실수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 와중에 ‘어머니!’라는 삼촌의 다급한 비명을 들었다는 목격자도 나왔었다는 얘기다.
그는 “난 아직도 삼촌이 누군가에게 살해됐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삼촌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게 여전히 한이 된다”고 토로했다.
삼촌의 죽음 이후 대학과 군복무를 마친 유 회장은 1990년대 초 본격적으로 해외를 돌며 사설탐정이 되기 위한 수련을 시작했다. 독일과 일본, 미국 등을 돌며 공인 기관 시험을 통과한 끝에, 꼬박 10년 만에 그는 ‘한국 최초의 사립탐정’이 돼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유 회장이 국내 최초의 사설탐정 협회인 ‘한국민간조사협회’를 설립한 것은 지난 2000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와 협회 요원들이 해결한 사건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2001년 일본 교포 사회를 들쑤신 여대생 피살사건부터 시작해 유력 공무원 자녀의 결혼 사기 사건도 유 회장의 손에서 마무리됐다.
유 회장은 “기업 내 산업스파이 색출이나 각종 보험사기 범죄, 실종자 수색과 해외 도피사범 추적 등 협회 요원들이 담당하는 사건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며 “일부 요원들은 아예 대기업 법무팀이나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일선 경찰서 소속으로 활약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조폭 협박 받던 유명 방송인 경호까지 맡아”
한국민간조사협회에 사건을 의뢰한 고객의 명단도 상당히 화려하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 굴지의 회사인 S기업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연예인과 정치인도 민간조사원들의 힘을 빌린다.
유 회장은 “의뢰인에 대한 비밀유지 조약 때문에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유명인사들의 의뢰를 받아왔다”며 “예를 들어 모 댄스가수는 자신의 허락 없이 나이트클럽 출연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한 업주를 수소문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한 유명 방송인은 채무관계에 있는 조직폭력배의 협박을 받아 협회에서 직접 경호까지 담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정식 PI로 활동하고 있는 정예멤버는 약 500여명. 이 가운데 20여명은 실제 국가정보원(국정원) 요원 출신이다. 또 전직 경찰관과 검찰 수사관들도 속속 전문 PI로 변신하는 추세다.
지난해 9월 PI자격증을 취득한 이영철(58·부산)씨도 30년 경찰 생활을 접고 사설탐정으로 전향한 경우다. 일선 경찰서와 부산지방경찰청을 거쳐 지난해 퇴직한 이씨는 30년 동안 대공수사와 보안과 요원을 경험한 베테랑 수사관이다.
전직 수사관들 줄줄이 PI로 변신
이씨는 “작년에 퇴직한 뒤 우연히 부산 경성대 사회교육원에 민간조사원 과정이 설립됐다는 소식을 듣고 과정을 이수했다. 30년 동안 수사팀에 몸담고 있었지만 PI라는 직업은 그 자체만으로 매력이 넘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선 경찰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통에 사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PI는 철저히 의뢰인의 사건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요원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순수한 민간인 보다 수사 경험자들이 PI에 진출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국내에서 PI의 활동과 관련된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인 출신 초짜 PI가 의욕만 앞서 수사를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수사 경험이 있는 전직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 국정원 직원 등은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수사 과정을 능수능란하게 주무를 수 있다”며 “불법 흥신소와 심부름센터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공인된 PI의 활동 영역이 넓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문의 : 한국민간조사협회
(전화 0502-707-7007)
#대한변호사협회 밥그릇 챙기기 ‘도 넘었다’
매년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들과 경제 위기로 법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변호사단체가 위기 탈출을 위해 공인중개사와 변리사, 사설탐정의 업무영역까지 넘봐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관련 이익단체들은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해 직종 간 ‘밥그릇 싸움’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근 변호사업계에서는 부동산 매매계약 시 변호사가 인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부동산 거래를 알선만 하고 계약업무는 변호사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통적으로 변리사들이 맡아 온 특허·지식재산권 분야는 물론이고 민간 조사원 업무인 사설탐정과 신용조사 업무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오는 23일 후보 등록을 마감하는 대한변협회장 선거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현재 김평우(63·사시 8회) 변호사와 이준범(50·사시 22회) 변호사가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에 돌입했는데, 두 후보 모두 부동산 거래 시 변호사가 관여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인중개사들은 법에서 규정하는 고유 업무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이종렬 회장은 “관련법에 거래계약서 작성 의무조항이 있어 변협의 주장은 공인중개사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2000년에 이어 다시 변호사가 공인중개사 업무에 발을 담그려 한다니 기가 차다”고 말했다.
변호사단체의 구상이 현실화하면 소비자들만 이중부담을 진다는 우려도 있다. 변호사 업무에 사설탐정과 신용조사 업무를 추가하는 방안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민간조사협회 유우종 회장은 “변호사들이 탐정업무에 직접 나서겠다고 하는 걸 보면 힘들긴 힘든가 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양반이 하인 얼굴에 붙은 밥풀을 떼먹어서야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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