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정보 흘린 ‘뇌물경찰’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환락장소다.
지난 20일 밤, 서울 장한평역에서 장안사거리까지 거리는 안마시술소, 이발소, 오락실, 술집 등 업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경찰의 ‘성매매 업소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대부분에 업소들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몇몇 업소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포구처럼 장안동의 밤은 환락구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조용하다 못해 적막만이 감돌았다.
이 때 한 대의 승용차가 대로변에 섰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났는지 젊은 남자가 승용차로 다가갔다. 차 안에는 술에 취한 서너 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젊은 남자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몇 마디 나눈 뒤, 남자들은 차를 인도위에 주차했다. 그리고 남자를 쫓아 골목길로 들어갔다.
취재진도 이들이 사라진 곳을 향해 급히 쫓아갔다. 이들은 대로변 뒷골목은 조용한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허름한 건물 앞에 선 젊은 남자는 누군가와 핸드폰을 통화를 했다. 그리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찾고자 했던 ‘비밀 안마시술소’였다. 경찰의 집중 단속을 피해 주택가로 옮겨 성매매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
안마시술소가 버젓이 경찰의 집중단속에도 불구하고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업계 관계자들은 장안동에 위치한 약 40여개 업소 가운데 15곳 정도가 이중출입문, 밀실 등을 이용해 은밀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집중단속 아니라 집중단속 할애비를 한대도 업소들의 비밀영업을 100% 차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눈에 보이는 간판은 꺼져있지만 이미 상당수 업소들이 비밀영업으로 모자란 매상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집중 단속에도 불구하고 비밀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비리 경찰들이 보내준 단속 정보와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속정보 알고 비밀영업
지난 1월 18일 검찰이 장안동 일대의 성매매 업소와 불법 게임장 관계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준 혐의로 동대문 경찰서 소속 김모 경사를 구속하면서 성매매 업소와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동대문경찰서 산하 모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지난 2006년 단속을 나가기 앞서 성매매 업소 직원 배모(40)씨에게 휴대전화로 단속 사실을 귀띔해주고 30만원을 받는 등 같은 방법으로 세 차례에 걸쳐 배씨에게서 1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업주들은 미리 받은 단속 정보를 이용해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 손님들이 미리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장안동에서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는 이모(45)씨에게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준 대가로 네 차례에 걸쳐 총 400만원을 받고, 정상 작동하는 게임기 70여 대 대신 낡아서 망가진 게임기 50여 대만 압수한 대가로 1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장안동 성매매업소 업주 A씨는 “그 사람(김 경사)은 지구대에서 3팀 근무를 했다. 1, 2팀이 근무하는 날에도 업소들은 영업을 했다. 그렇다면 1, 2팀 안에도 살림꾼이 있다는 이야기다. 김 경사가 총대를 멘 것 같다”고 말했다.
업주가 말한 살림꾼은 업소로부터 돈을 받아가는 경찰관을 지칭하는 은어이다. 영화 <투캅스>에서 돈을 받아 챙기는 배우 안성기의 역할이 이른바 살림꾼인 셈이다.
업주 B씨는 “거의 모든 업소가 경찰에게 단속 무마 대가로 수백만 원씩의 돈을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수시로 회식비를 제공했다”면서 “경찰 명단은 업소마다 적게는 10명 남짓,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 영입해 로비활동
유흥업소에서 관할 경찰 지구대나 소방서 등을 관리하는 것을 이른바 ‘관작업’이라고 한다.
관작업은 대부분 업주가 직접 나서기보다 이를 담당하는 실무자를 통해 이뤄진다. 보통 업소에서 ‘실장’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이들이 관작업을 담당한다. 이들이 관리하는 곳은 단속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관할 경찰 지구대와 소방서, 구청 등이다.
주목할 것은 업소 실무자 가운데 전직 경찰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비리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옷을 벗은 전직 경찰 가운데 상당수가 유흥업소 실장급으로 스카우트된다. 유흥업소에 흡수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바로 관작업이다.
이 관계자는 “업소에 스카우트되는 전직 경찰들은 나이도 젊은 편이다. 대게 30대 중반인 경찰출신 ‘실장’들은 한때 한솥밥 식구였던 현직 경찰들을 상대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인재다”고 전했다.
이들이 경찰과 공무원을 관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단순히 회식비나 용돈을 상납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 함께 포커나 화투 등을 즐기며 일부러 돈을 잃어 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기도 한다. 때에 따라 성 상납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업소가 나서는 것은 아니다.
또 실장들이 모든 담당 공무원을 1:1로 상대하는 일도 드물다. 소속 공무원 중 일부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뒤 목돈을 건네면 이를 받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동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업주들의 이 같은 로비가 경찰 고위층까지 이어졌을까. 또 다른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업주들이 권력실세에 버금가는 고위층과 줄이 닿아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 관계자는 “관작업을 할 때 상대하는 경찰과 공무원의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일부 인사가 승진 등으로 직위가 높아졌다 해도 경찰 조직 자체를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안동 성매매 업주들은 김 경사 말고도 돈을 받아간 경찰관이 더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금품을 받은 경찰관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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