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조선총독부 철거를 싸고 갑론을박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조선총독부 철거를 싸고 갑론을박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5-01-05 10:36
  • 승인 2015.01.05 10:36
  • 호수 1079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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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일본의 무자비한 침략행위

일본은 총독부를 지으면서 총독부의 방향을 경복궁의 남북축에 맞추지 않고 동쪽으로 3。 틀어서 남산을 향하게 지었다. 일부러 경복궁의 남북 축(軸)과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광화문 앞 동서도로를 총독부와 같은 방향으로 만들고 이 도로와 직각이 되게 광화문 앞 도로를 만들어 지금 광화문 앞 도로는 옛날 경복궁 남북의 축과는 크게 달라졌다. 일본은 가장 중요한 서울의 남북 기본 축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해방 직후 이를 바로 잡아야 하지만 총독부 청사는 상당기간 철거되지 못했다. 정부청사를 새로 짓기에는 우리나라 재정 상태가 미약하다는 것과 그 집이 돌집이고 매우 잘 지은 역사적인 유물이니 그대로 두고 쓰자는 논의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른스럽게 총독부 건물을 보며 우리 과거를 반성하고, 왜인들의 만행에 시달린 과거를 가슴에 새겨 이들을 경계하는 마음을 다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대만에서는 일제가 세운 대만 총독부와 영국 식민 통치 시 총독부들도 그대로 있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국가 간에 침략기에 세운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고 했다. 이교도가 세운 유적위에 또 타 종교가 큰 건물을 세우고 거기에 증축하기도 한다고도 말했다. 그렇기에 꼭 조선 총독부를 허물어야 하겠는가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교도와 침략자가 세웠어도, 타국침략자가 세웠어도 역사적 현실이었고 역사적 유적이 아니겠는가’라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는 다르다. 일본은 지금도 극우 세력이 혐한시위를 날마다 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남아, 서남아의 수없는 나라를 침략하고 괴롭혀 수없는 사상자를 냈다. 이런 전쟁주범들의 위패가 있는 신사를 위정자들이 솔선해 죽어라 하고 참배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자기 국민과 자기 나라의 이익에 대해서만 철두철미하게 단결해 보호했다. 이외의 나라에 대해서는 모두 침략과 말살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특히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는 행동이 더욱 심했다. 삼국시대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진 해안가의 부락은 물론 내륙 깊숙이까지 쳐 들어온 왜구의 무자비한 약탈과 살육이 있었다. 계속된 임진왜란과 일제침략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국에 그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땅을 뺏어 확보하려고 인류와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어떤 야비하고 무자비한 정책과 행동을 할지 모른다.
 
세계 어느 나라도 문화재는 타국의 것일지라도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서로 존중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유네스코 헌장과 협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침략자라 하더라도 남의 나라의 왕궁을 무자비하게 허물어버린 침략자는 매우 드물 것이다.
 
반면 일본은 자기네가 약탈해 가서 자기네 재산이 된 문화재는 잘 보존한다. 수천 년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는 잘 보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날조되지 않고 진정한 역사를 밝힐 자료는 감추고 있다. 또한 저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침략해 갖은 만행을 저지른 증거와 약탈해간 자료는 깊이 숨겨뒀다. 특히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연구해 밝힐 수 있는 자료는 꼭 꼭 숨기고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러한 귀중한 자료가 일본 국내성 자료 등 도처에 있지만 우리는 볼 수가 없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우리에 대한 일본의 침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지 모른다. 그 중 두드러진 큰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 우리의 수많은 꽃다운 젊은 여성을 강제로 잡아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은 정신대(위안부)로 삼았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은 “강제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무 책임도 없고 잘못도 없다”고 하고 있다. 
 
또 징병 제도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수많은 젊은 청년을 강제로 잡아다가 전선에 투입해 수없는 희생자가 생겼다. 하지만 일본은 “아무 잘못도 없다”하고 있다. 또 노소를 막론하고 우리의 청·장년을 잡아다가 전선의 노역병으로 각지의 탄광에서, 비행장 건설 등 토목건설현장 등에서 갖은 핍박과 학대로 수없는 목숨이 초개같이 희생됐지만 일본은 역시 “아무 잘못이 없다”고만 하고 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조선황국을 거의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국권을 마음대로 농단하고, 우리 영토 독도를 시마네현 속도로 등재해 놓고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어느 교과서에서도 저들이 저지른 침략과 잔학행위는 이제 언급조차하지 않고 있다. 역사를 뒤바꾸어 놓는 나라가 일본이다.
 
좀 장황하게 언급했지만 전 세계에서 침략자들이 많은 총독부를 세웠지만 조선총독부와는 그 역사와 내력이 이와 같이 다르다. 이제 다시 조선총독부 철거문제로 돌아가기로 한다.
 
▲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
 
겸재 정선
간송미술관소장
 
겸재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명승지는 물론 범연한 산수까지를 두루 다니며 과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해야 바로 그려내야 하나 하고 고심했을 것이다. 소위 남종화법과 북종화법을 두루 섭렵하고 남·북종화법을 모두 적용해 보면서 그려보고 또 그려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그려보고 하면서 독창적이고 독특한 자신의 화법을 개발 완성해갔으며 점차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바위산과 수많은 토산과 물결과 소나무, 버드나무 등 나무들과 풀과 우리나라 사람들과 나귀와 당나귀 등 우리나라의 천지만물을 독창적이고 독특한 필법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진경산수」라고 일찍부터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산수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천지만물을 모두 우리식으로 그려내 「我邦天地萬物眞像(아방천지만물진상)」 이라고 하는 문구를 하나 더 겸재선생에게 헌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은 전경으로 멀리 보이는 금강산을 감싸 안은 듯 단발령 고개가 있는 크고 작은 봉우리를 갖춘 토산을 미점으로 풍성하게 그렸다. 그리고 고갯마루에까지 허위허위 올라간 갓 쓴 탁승객 등을 깨알만큼 그리고 화면 왼쪽 저 멀리 구름넘어 금강산의 비로봉 및 만이천봉을 자그마한 토산들 위에 떠있는 듯 아련하게 그렸다.
 
몇 십 년 전 최순우 선생과 같이 화백 고희동 선생 댁에 가서 여러 가지 옛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춘곡께서 “나도 단발령에 올라 그 아름다운 금강산을 아득히 바라보면 얼마나 황홀할까하고 허위허위 올라가 바라보았더니 금강산은 보이지 아니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겸재의 위대함이다. 저기 만이천봉에 사자암도 보이고 금강대도 보이고 정양사도 보인다.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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