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인천서 할머니가 숨진 채 여행가방 안에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할머니는 70대의 A씨였으며 가해자는 평소 A씨와 친하게 지내던 50대 남성 정형근이었다. 경찰은 정형근을 공개수배했으며 A씨가 발견된 지 7일 만에 서울에서 검거했다. 정 씨는 평소 A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매우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정 씨의 범행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 씨가 평소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A씨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 상인 “평소 엄마처럼 지내던 착한 사람” 증언
술김에 성폭행 시도?…돈 문제가 원인일 수도
지난달 22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어느 빌라 앞 길가에 버려진 여행용 가방에서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길을 지나가던 고등학생들이 우연히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진 사건이었다. 학생들은 경찰에서 “여행용 가방이 조금 열려 있고 사람 엉덩이 같은 것이 보여서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발견된 시신은 흉기로 여러 차례 찔리고 머리에는 둔기로 맞은 흔적이 발견됐다. 이에 경찰은 주변 CCTV화면을 확보하고 수사에 나섰다.
시신 발견된 후
걸어서 서울까지 이동
숨진 할머니는 A씨로 밝혀졌다. A씨는 지난달 20일 오후 4시께 잔칫집에 간다며 집을 나선 뒤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이에 가족들은 22일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이날은 A씨의 시신이 발견된 날이다.
경찰은 A씨의 신원을 확인하고 CCTV를 분석한 결과 평소 A씨와 알고 지내던 정형근(55)을 용의자로 발표했다. 정 씨가 사용한 가방 손잡이와 장갑 등에서 A씨의 혈흔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정 씨는 이미 잠적한 뒤였다. 이에 경찰은 25일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정 씨의 수배전단을 배포했다. 결국 정 씨는 사건 발생 9일 만에 서울 을지로5가의 공원에서 검거됐다. 경찰 조사결과 정 씨는 시신이 발견된 후 걸어서 서울까지 이동했으며 노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 실종신고 후에
딸과 교회 가기도
A씨는 인천 부평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정 씨는 평소에 A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 씨의 범행사실이 알려졌을 때 인근 상인들은 정 씨의 얼굴을 보고 “많이 본 사람”이라며 “A씨와 친하게 지냈는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A씨도 정 씨를 ‘아들’이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평소 정 씨를 집까지 데려가 밥을 먹이기도 했다는 것.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하던 정 씨는 날씨가 추워져 일거리가 떨어지자 A씨의 가게에 자주 찾아왔으며 인근 A씨의 딸이 운영하는 포장마차도 자주 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A씨의 가족뿐만 아니라 인근 상인과도 잘 어울렸다. 주변 상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정 씨는 A씨를 20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살해했다. 그러고도 정 씨는 다음날인 21일 A씨의 딸과 함께 인근 교회에 간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가족과 어울리는 대범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22일 A씨의 가족이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이 포장마차를 방문했을 때에도 정 씨는 옆에서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A씨의 실종신고 사실은 물론 경찰의 조사과정까지 다 듣고 일어선 것이다. 그렇게 포장마차에서 나온 정 씨가 발걸음을 돌린 곳은 바로 A씨의 시신이 담긴 여행가방 주변이었다. 그곳에서 가방을 발견한 학생들이 신고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
술 마시다 욕정 생겨
이성 잃고 둔기로 내리쳤다
경찰에 검거된 정 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술에 취해 홧김에 A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씨는 2일 만에 A씨를 성폭행하려 했다고 자백했다.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욕정이 생겨 성폭행을 시도했는데 A씨가 강하게 반항하자 순간 이성을 잃고 집안에 있던 사기로 된 물 컵으로 A씨의 얼굴을 여러 차례 내려쳤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A씨가 숨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정 씨는 쓰러진 A씨를 흉기로 찌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 씨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존재한다. 바로 A씨와 정 씨의 관계다. 사건 당일 A씨는 가족에게 “잔칫집에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가 향한 곳은 잔칫집이 아닌 정 씨의 집이었다. 애당초 A씨가 참석해야 하는 잔치는 없었다.
그렇다면 A씨는 왜 가족에게 정 씨와의 만남을 비밀로 한 것일까. A씨가 가족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사건의 진상은 진작 드러났을 것이다. 가족에게 숨겨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소 굉장히 친밀한 사이였다. A씨를 ‘엄마’라고 불렀던 정 씨가 술김에라도 욕정을 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예전부터 정 씨가 A씨를 엄마가 아닌 이성으로 여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A씨가 정 씨와의 만남을 가족에게 숨긴 것이 이해가 된다.
또는 A씨가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아들’로 여기던 정 씨에게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일거리가 없어진 정 씨가 매일 A씨를 찾아왔다는 주변 상인들의 증언이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A씨가 정 씨에게 돈을 빌려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면 반대할까봐 혼자만 알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 사건 당일 술을 마시던 중 돈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시비가 붙어 다툼 끝에 정 씨가 A씨를 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정 씨의 범행 동기는 아직 명확치 않다. 또 풀리지 않은 의문점도 많다. 왜 A씨가 잔칫집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을까. 정 씨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