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기순손실 나도 배당금은 계속 된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지난해 대한민국 10대그룹 총수들이 받아간 현금배당 총액은 2445억 원이다. 최저시급 5210원 받는 아르바이트생이 일일 24시간씩 1년 365일 내내 일만 했을 때, 5431년 뒤에나 모을 수 있는 돈이다. 단, 월급을 한 푼이라도 쓰거나 잠을 한 시간이라도 잔다면 시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이러한 현실에 혹자는 “기업들은 부익부만을 지향하고 있는 가운데 소득재분배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일요서울]은 ‘자기 배만 불린 재벌들’ 이라는 기획연재를 통해 ‘부익부빈익빈’의 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KPX그룹(회장 양규모·사진 왼쪽)을 살펴본다.
경영 승계 위한 과정이라는 분석 높아
실제 삼부자 사이 지분 매매 끊임없어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은 대체적으로 형평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많았다. 10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규제대상에서 벗어난 하위 그룹들의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가능성이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등 상위 그룹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규제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자산규모를 일부러 늘리지 않고 규제 적용 기준인 5조 원 이하로 유지한 뒤, 증식과 대물림을 한 뒤 다시 덩치를 키우는 기업들도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대기업 평가 사이트 시이오스코어는 자산 총액기준 국내 100대 그룹 상장사와 비상장사 2332곳의 대주주일가 지분율을 전수 조사했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대상 계열사 비중이 상위 43개 기업집단(13%)보다 하위 49개 그룹이 17%로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일감 몰아주기로 막대한 자본이득을 챙기는 재벌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법이 제정됐는데 정작 감시 대상 계열사 비중이 더 높은 하위 그룹들은 면죄부를 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 중 한 곳이 바로 이번에 들여다 볼 KPX그룹이었다.
아울러 통상적으로 총수 일가의 부의 증식을 논할 때는 배당금과 시세차익, 그리고 일감몰아주기 등의 방법이 등장한다. 이 중 KPX그룹 역시 배당금이 빠지지 않는다. KPX그룹은 지난해 280억 원가량을 배당금으로 지출하면서 계열사 수익이 총수 일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KPX홀딩스는 지난해 상반기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배당을 실시해 의문을 남기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살펴보면 KPX홀딩스, KPX케미칼, 진양AMC 등 5개 계열사는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총 285억 원의 배당금을 기록했다.
진양홀딩스의 경우에는 49억2306만 원을 내놔 총수일가 및 계열사가 가장 많은 배당금을 챙겨갔다. 그 뒤를 KPX홀딩스(45억591만 원), KPX케미칼(38억5147만 원), 진양AMC(19억9971만 원), KPX그린케미칼(19억6470만 원)이었다.
배당성향으로 따지면 상장사들의 평균 배당 성향인 10~20%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특히 KPX홀딩스는 중간배당을 실시한 2분기 말 기준 당기순손실이 154억 원이었는데 현금 24억 원을 배당했다. KPX홀딩스, KPX케미칼, KPX그린케미칼, 진양홀딩스 등 주요 4곳의 계열사 총 현금배당성향(지난해 6월 기준)은 70%를 넘어섰다.
더군다나 양규모 KPX홀딩스 회장과 장남인 양준영 KPX홀딩스 부회장, 차남 양준화 KPX그린케미칼 사장 등 오너일가 및 계열사에 배당된 금액은 총 172억 2449만 원으로 전체의 60.4% 수준을 차지했다.
개인별로는 양규모 회장이 21억6819만 원을 차지했고 차남인 양준화 사장이 7억4898만 원, 양준영 부회장이 6억2016만 원씩을 각각 주머니에 넣었다.
물론 양규모 회장, 양준영 부회장, 양준화 사장 삼부자가 직접 챙겨간 배당금은 35억 원이라지만 건덕상사나 삼락상사, 티지인베스트먼트, 관악상사 등 배당을 받아간 계열사들의 지분 대부분을 총수 일가가 쥐고 있어 훨씬 많은 배당금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속셈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처럼 과감한 배당 정책을 내놨을까. 그 이유 역시 경영승계나 지분 매입 자금 확보 등을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도 KPX그룹은 지난달 활발한 지분 매매 움직임을 보여 이러한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실제 양준영 부회장은 지난해 자사주 2만1303주를 시간외매매로 사들여 보유 지분을 6.86%에서 7.32%로 늘렸다. 같은 기간 양규모 회장은 2만5477주를 시간외매매로 팔았다. 양규모 회장의 지분은 대부분 계열사인 삼락상사가 시간외매매로 넘겨받았다.
삼락상사는 양준영 부회장 외 특수관계인이 지분 83%를 보유한 회사다. 양규모 회장이 지분승계를 염두해 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양준영 부회장의 부사장 취임(2009년 3월) 이후 꾸준히 이어져온 지분 매매라는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양준영 부회장의 지분 보유량은 655%나 증가했다. 지분 승계 과정 가운데 장남 양준영 부회장(7.32%)과 차남 양준화 사장(6.61%)의 지분보유량이 역전되는 등 후계 구도도 분명해지는 분위기다. 차남의 지분은 2009년 3월 9.01%에서 6.61%로 정리됐다.
결국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승계를 하자니 자금이 필요하고, 자금을 확보하자니 배당금이 절실했다는 의견이 팽배해진 것인데, 이와 관련해 KPX그룹은 확대해석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KPX홀딩스 관계자는 “우리는 지주자로서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을 다시 주주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다”면서 “주주들의 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일 뿐, 총수 일가과 연관지을 부분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KPX홀딩스가 당기순손실을 입었음에도 높은 배당금을 내놓은 것은 “올 상반기 화인케미칼의 매각 가액과 장부상 가액이 차이가 있어 이것이 당기순손실로 처리된 것”이라며 “실질적인 영업현금은 줄지 않았고, 회계상으로만 나타난 손실이라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경영 승계와 지분 거래를 묻는 질문엔 “지금은 단순하게 지분을 팔았고, 지분을 사들였다는 사실만 바라볼 시기”라면서 “일부분을 가지고 지나친 확대 해석은 좋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KPX그룹은 1985년 공중분해된 국제그룹이 모태가 돼 만들어졌다. 고(故)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동생 양규모 KPX홀딩스 회장이 1974년 국제그룹에서 독립해 진양화학을 기반삼아 사세를 확장했다.
현재는 지주회사인 KPX홀딩스·진양홀딩스를 중심으로 우레탄·바이오·자동차재료·부동산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매출 규모는 한 해 총 매출이 1조 원을 넘어섰고, 자산 총액도 1조 원을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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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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