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 완구업체 명맥 잃나…시선집중
산업계 해외 자본 잠식…국부 유출 우려도
투자업계에 따르면 영실업의 최대주주 ‘헤드랜드 캐피탈 파트너스(Headland Capital Partners)’는 영실업을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매각 주관사는 골드만삭스로 선임됐다. 매각은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오는 2월 중 혹은 3월 초께 본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앞서 영실업은 2012년 해외 사모펀드인 헤드랜드 캐피탈 파트너스가 영실업의 지분 96.5%를 6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완구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한 최초 사례다. 국내에서 시작해 국내 사업에 역점을 둔 토종 완구업체지만, 현재는 간판만 국내기업인 셈이다.
헤드랜드캐피털은 HSBC에서 독립한 PEF 운용사로 SK해운 지분 16.91%를 보유한 2대주주다. 또 LG실트론에도 투자했다.
영실업은 변신로봇 완구와 애니메이션을 만든 회사다. 이 외에도 쥬쥬, 콩순이 등의 캐릭터를 판매하고 있으며 업계 최초로 직접 캐릭터를 개발하고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했다.
영실업의 자체 개발로 만들어진 또봇은 기아자동차를 모델로 만들어진 변신로봇 캐릭터다. 2009년 완구로 먼저 출시됐고, 2011년 영실업의 또봇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에 영실업은 매출 기준 국내 완구업계 2위에 올랐고 창립 이후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영실업의 2013년 매출은 761억 원, 영업이익은 149억 원이다. 이는 전년대비 매출 40.4%, 영업이익 16.8% 증가한 수치다. 또 헤드랜드 캐피탈 파트너스에 인수될 때 실적보다 매출 기준으로 40%, EBITDA(세전·이자지급전이익) 기준으로 26% 상승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2014년에도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이 같은 영실업의 변신은 완구 유통 회사에서 콘텐츠를 개발하는 ‘크리에이터’로의 성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순히 장난감을 만들고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영실업은 ‘글로벌 키즈 콘텐츠 크리에이터(Global Kids Contents Creator)’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선포하고, 콘텐츠 역량과 마케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이에 헤드랜드 캐피탈 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영실업 재매각에 나섰다고 전해진다. 또봇의 인기로 실적이 개선되자 투자금 회수에 나선 것이다.
헤드랜드 캐피탈 파트너스는 영실업의 인수가격으로 2000억~3000억 원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수 대상자들은 국내외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를 아울러 40~50 곳이 될 전망이다.
시장 현실상 어려워
하지만 이만큼 덩치를 키워온 영실업을 인수할 국내 인수 후보의 확보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아 우려를 사고 있다. 재매각에서도 해외업체에 인수될 경우 국부가 유출되고, 영실업의 토종기업 색깔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다.
현재 영실업의 인수후보로는 중국의 유아용품 관련 기업과 미국의 영화제작사, 대형 완구 유통사들이 거론된다. 업계는 특히 중국 기업 인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 완화, 육아 및 아동용품 산업의 관심이 늘면서 완구업체에도 손을 뻗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최초 유아복 업체인 ‘아가방앤컴퍼니’가 중국 의류기업 ‘랑시그룹’에 매각된 바 있다. 유아복 브랜드 블루독과 밍크뮤를 운영하는 ‘서양네트웍스’도 지난해 초 홍콩 소비재유통기업 ‘리앤펑’에 매각됐다.
뿐만 아니라 영실업이 지난해 8월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에 완구와 애니메이션을 동시 수출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어 중국기업 인수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또봇이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며 “동아시아 아동 관련 시장에 관심이 많은 중국기업이 이번 매각에서 영실업의 인수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 산업 전반이 중국 자본에 잠식되고 있다”며 “제주도 땅도 중국인들이 절반 이상을 사들였다고 들었는데 국내 기업들도 중국 자본에 잠식돼 토종 기업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까 무섭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완구시장의 상황으로는 영실업 입찰에 참여할 업체는 없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완구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국내 완구업체들 중에 영실업을 인수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며 “대부분 해외 브랜드 장난감을 유통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어 영실업처럼 직접 캐릭터를 개발하고, 제품으로 만들어 팔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또 “미미월드, 손오공 등 인수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곳도 있긴 하지만 영실업까지 떠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대기업에서 인수에 참여하면 모를까 현재 시장 구조로는 국내 인수 후보자가 나타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완구의 경우 대형마트에서도 매출이 가장 안 나오는 매장에 속하는데다가 끊임없이 개발해야하는 것에 비해 거두는 수익이 적어 국내 대기업들이 완구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영실업의 성공적인 성장 상태가 매각 시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사실상 현재 실적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어서 국내에서 전략적 투자자가 사들이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출은 유지할 수 있지만 성장 폭이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토종 완구업체 영실업의 행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토종기업이라는 명맥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