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수수색 ‘발끈’…검찰과도 신경전
고의파손 혐의 점입가경…깊어지는 갈등
가전업계 1, 2위를 다투는 양사의 싸움을 두고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란 의혹이 나오고 있다. 자존심 싸움을 넘어선 다른 속내가 있다는 지적이다.
양사 모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세계가전전시회) 2015’에 참여하며 ‘2015년 세계 가전 시장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심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경쟁사 간의 갈등으로 홍보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특허 소송을 통해 애플의 경쟁사라는 이미지가 세계 시장에 각인시켜진 바 있다.
현재 해외 시장에서 양사는 부문별로 1위를 차지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잡지 컨슈머리포트가 공개한 지난해 생활가전 우수 제품 명단에 따르면 세탁기는 LG전자 제품이, 냉장고는 삼성전자 제품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양사가 가전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으로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가전업계에서 우위를 점해온 LG전자가 이번 사건으로 신인도에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압수수색을 받은 LG전자의 정상적인 기업 활동과 대외 신인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조성진 LG전자 사장의 출국금지에 따라 ‘CES 2015’ 참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 가장 큰 타격으로 지목된다. 당초 조 사장은 오는 7일 CES에서 기자간담회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출국금지 조치를 받으면서 현지 법인장들로부터 보고일정도 자칫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앞서 조 사장은 “프리미엄 주방가전 패키지인 ‘스튜디오’ 브랜드를 적극 확대해 2015년 세계 가전시장 1등을 달성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반복된 싸움 ‘눈살’
양사의 싸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3D TV 기술방식 논쟁을 비롯해 냉장고 용량 비교 광고, 디스플레이 특허 침해 여부를 둘러싼 소송전 등 2011년 이후에만 4건이 넘는다.
특히 이번 세탁기 고의 파손 논란의 경우 이전처럼 소송 취하 등 화해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어 브랜드와 품질 모두에서 치명타를 입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양사의 싸움이 지나친 집안싸움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세계시장에서 1위를 노리는 두 기업의 싸움은 사실 국가적 망신인 셈이다”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처만 남는 집안싸움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LG전자가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사태를 키웠다는 시선도 있다. 형사소송법 상 ‘고소 수리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동안 검찰이 조 사장의 출석을 요구했으나 이에 불응하다 해당 문제를 압수수색 진행으로까지 키웠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통상 1월 중순경 법조계 인사이동이 단행된다는 점도 검찰이 수사를 서두르게 된 배경으로 거론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싸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양측 모두 조심스러운 입장을 비치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며 “검찰 고유의 판단이며 모든 사태가 원칙대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유럽가전전시회) 기간 중에 LG전자가 삼성전자의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LG전자가 독일 현지 가전매장에서 자사의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시켰다고 주장한다. 유럽 최대 양판점인 자툰(Saturn)사의 유로파센터(Europacenter) 및 슈티글리츠(Steglitz) 등을 돌면서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처럼 일부러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해당 혐의의 주범으로 조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을 지목하고 있다.
단순 손괴로만 보였던 이 사건은 3개월가량이 지나는 동안 LG전자와 삼성전자, 그리고 LG전자와 검찰과의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삼성전자가 검찰에 수사를 맡기자 지난달 12일 LG전자도 증거위조와 명예훼손 혐의로 삼성전자에 맞고소를 했다. LG전자 측은 “통상적인 품질테스트다”며 “제품 테스트 차원에서 문을 조작하다 파손돼 당시 세탁기의 두 배 값을 변상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와중에 LG전자는 검찰과의 신경전까지 벌이게 됐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LG전자 서울 여의도 본사와 경남 창원 공장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조성진 사장의 집무실과 홍보팀 사무실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사건의 발단이 된 유럽 가전 박람회 IFA 관련 자료와 임직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 피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조성진 사장에게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LG전자 측은 “경쟁사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주장으로 이뤄진 압수수색이다”며 검찰이 과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검찰 측은 이례적으로 수사의 당위성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 LG전자는 검찰과도 신경전을 벌이게 됐다.
재계는 검찰의 초강수로 사건이 확대된 이유를 조 사장으로 보고 있다. 검찰 조사 불응이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앞서 조 사장은 검찰의 출석 요구에 “‘CES 2015’에 참석한 뒤 조사를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자 조 사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조 사장은 앞으로 한두 차례 추가로 소환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