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방송인 강병규에게 ‘도박꾼’ 오명을 씌운 바카라 게임에 가정주부들 까지 뛰어들었다. 최근 40~50대 주부들만은 고객으로 한 무허가 카지노 도박장 업주가 3개월 만에 28억원에 달하는 수입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평범한 주부들을 상대로 280억원이 넘는 판돈을 굴린 인물은 폭력조직 J파 행동대장 윤모(41)씨다. 윤씨가 속한 J파는 서울 동대문을 무대로 활동하는 중견 조직으로 그는 동료 조직원 양모(38)씨 등과 함께 문제의 사설 도박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여기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이 J파의 활동 자금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사설 도박장은 과거부터 흔했다. 그러나 오직 가정주부들만을 고객으로 한 경우는 이번 사건이 유일하다. 윤씨 등은 왜 100만원 정도의 ‘푼돈’을 쥐고 도박장을 찾은 주부들을 VIP고객으로 맞았을까.
‘롤링’은 전문 주부도박꾼
문제의 도박장은 철저히 ‘아는 사람’만 들여보내는 일종의 멤버십 클럽이었다. 업주인 윤씨를 중심으로 도박장엔 20여명의 직원들이 상주하며 손님들을 관리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은 속칭 ‘롤링’이라 불리는 알선책이었다.
업장에 단골로 출입할 만한 예비 ‘꾼’들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은 100% 전문 주부도박꾼들로 이뤄져 있었다. 롤링은 또래 주부들이 자주 찾는 미용실과 찜질방 등을 돌며 환심을 사는 수법으로 주부들을 도박장에 소개했다. 이들은 손님을 끌어오는 대가로 손님들이 건 판돈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아 챙겼다.
또 업주 윤씨는 도박장 운영을 위해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을 자랑하는 인물로 유명했다. 윤씨는 전문 고리대금업자 (속칭 ‘꽁지’)와 외부감시원 (속칭 ‘문방’) 등을 고용하고 특급 호텔 딜러 출신 고모(31·여)씨를 스카우트 해오기도 했다.
고씨는 경력 1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 딜러로 어리숙한 주부들의 판돈을 쓸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도박장이 대박을 터트리자 윤씨는 아예 전문 딜러들을 2명 더 고용해 3교대로 24시간 하우스를 돌렸다.
지난해 10월 초 문을 연 윤씨의 하우스는 하루 평균 150여명의 손님이 드나들었고 이들은 한 사람 앞에 200~300만원씩을 도박판에 쏟아 부었다. 이들이 적발되기까지 약 3개월 동안 판돈은 무려 280억원대로 불어나 있었다.
업주 윤씨 등은 덤과 공짜에 약한 주부들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 100만원의 입회비를 내야함에도 도박을 즐기는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윤씨가 제공한 ‘사은권’과 ‘무한리필’의 함정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주부들만 노렸나
일당들은 주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100만원어치 칩을 교환할 때마다 사은권 1장씩을 나눠줬다. 사은권은 매주 월·수·금요일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인 밤 11시 쯤 카지노 안에서 당첨번호를 추첨하는데 쓰였다. 1등에 당첨된 손님은 20만원, 2등에 당첨된 손님 2명에게는 각각 10만원의 현금이 상품으로 돌아갔다.
또 일종의 ‘조조할인’ 서비스도 도입했다. 평일 아침 손님이 뜸한 시간에 업장을 찾는 주부들에게 100만원 당 5만원의 ‘보너스’ 칩을 주는 식이었다. 실제 주부들에게 주어진 상금은 고객들이 건 판돈 중 일부에 불과했다. 일당은 칩을 현금으로 바꿀 때 수수료로 금액의 7%를 떼고 판이 끝나면 승자에게 ‘딜러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판돈의 10%를 떼어갔다. 5%내외의 커미션을 떼는 바카라 게임보다 훨씬 비싼 수수료를 받아 챙긴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경찰에 의해 공개된 업장 내부도 중년의 주부들이 끌릴 만큼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카지노 바 한구석에는 잠자리로 쓸 수 있는 안락한 침구가 마련돼 있었다.
갖가지 음료와 차를 갖춘 다용도실에서는 손님들에게 음료수를 무제한 제공하기도 했다.
개인이 라면이나 즉석 식품 등을 챙겨오면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도록 간이 주방도 갖춰져 있었다. 한가한 주부들에게 윤씨 일당의 도박장이 일종의 ‘사랑방’ 같은 존재였다는 추측도 가능한 대목이다. 또 바카라라는 게임의 단순한 룰이 주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석 달 만에 28억원이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기록하는데 주효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갑오잡기’나 ‘홀짝게임’처럼 카드 두장의 끝수를 세기만 하면 된다.
적발된 주부들도 “복잡하지 않아 잠깐만 배워도 금방 잘 할 수 있다”고 진술했다. 최근 물의를 빚은 프로야구선수들 역시 바카라 특유의 ‘단순함’에 빠진 경우였다.
특히 롤링들은 “게임이 쉬운 만큼 돈도 금방 딸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또래 주부들을 끌어 모았다.
한편 윤씨 일당이 운영한 불법 도박장은 겉보기에 평범한 사무실처럼 위장돼 있었다.
‘S기획’이라는 간판을 건 2층 사무실은 CCTV 2대와 탈출 통로까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폭력조직의 단순한 ‘부업’이라고 치부하기엔 적잖은 의혹이 남는 대목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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