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서남부 연쇄 실종 살인사건 발생… 여성들 “대낮 외출도 무섭다”

지난해 12월 19일 연기처럼 사라진 군포 여대생 A씨(21). 실종 20여일을 넘기고 경찰의 대대적인 공개수사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그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사팀 일각에서는 A씨가 지난 2006년부터 발생한 4건의 부녀자 연쇄 실종·살인사건 (이하 ‘경기서남부 연쇄 실종사건’)의 다섯 번째 희생자가 아니냐는 말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경기도 소재 모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실종 당일 오후 3시 7분 쯤(CCTV 녹화내역) 언니의 심부름으로 군포 보건소에 다녀오던 중 자취를 감췄다. A씨의 휴대전화는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 30여분 뒤인 오후 3시 37분경 신호가 끊어졌다.
4시간 여 뒤인 오후 7시 30분께 안산시 성포동 농협 현금인출기에서 흰색 마스크를 쓴 남성이 A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70만원을 인출하는 모습이 CCTV 카메라에 촬영됐다. 경찰은 이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용의자의 윤곽은커녕 A씨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이 공개한 용의자에 대한 실마리는 현금인출기 CCTV에 찍힌 정지 영상이 유일하다.
어색한 더벅머리 가발을 눌러쓴 용의자는 170cm 정도의 키에 보통 체격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20~30대인 것으로 추측된다.
가증성 1. 범인은 2인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
CCTV 화면에는 용의자가 현금인출기로 향하는 도중 한 여성이 유심히 용의자의 차림새를 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어설픈 가발에 마스크를 쓴 모습은 주변인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행색이다. 더구나 용의자는 A씨의 카드를 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꺼내 카드 출입구에 한번에 넣지 못하고 잠시 헤매기도 한다.
현금인출기를 자주 사용해 본적이 없거나 상당히 긴장된 상태였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짙은 갈색 가발을 착용한 것은 용의자가 본래 머리색깔이나 모양을 감추기 위해서인 것일 수 있다.
모자가 아닌 가발을 준비했다는 것으로 보아 용의자는 대머리거나 국내인이 갖기 힘든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A씨를 납치하고 신용카드를 빼앗은 용의자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추측은 A씨를 납치한 범인이 2명 이상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A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간부터 그의 휴대전화가 꺼지기까지 30분 정도가 걸렸다. 용의자들이 현금을 인출하러 오는 4시간 동안 이들은 A씨로부터 계좌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적어도 용의자가 현금을 인출하는 순간까지 A씨는 그와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A씨가 가짜 비밀번호를 알려줄 경우를 대비해 돈을 인출하는 순간까지 A씨를 살려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범인이 단독범이라면 현금을 인출하러 간 사이 A씨가 탈출하거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같은 불상사를 미리 막기 위해 CCTV에 촬영된 용의자를 제외하고 또 다른 공범이 존재해 A씨를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란 유추를 해볼 수 있다.
가능성 2. 면식범에 의한 차량 강도사건?
A씨가 실종된 정확한 위치 역시 미스터리다.
경찰은 A씨의 실종 장소가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일 것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A씨가 예상보다 번화한 시내 한가운데서 실종됐을 가능성이 높은 CCTV 녹화 자료가 나와 수사팀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A씨의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주유소의 CCTV에 그로 추정되는 여인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A씨가 실종 당일 마지막으로 들른 군포보건소 집에서 1.2km 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보건소에서 A씨의 집 근처에 있는 주유소까지 890m 구간은 비교적 한산하다. 하지만 주유소~집까지 약 300m정도는 상점이 많은 번화가였다.
A씨가 번화한 거리에서 납치됐다면 평소 친분이 있는 면식범의 범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당 주유소 CCTV에는 사건 당일 3시 20분 경 주유소 앞을 지나는 A씨의 모습이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상인들은 “경찰이 주유소 CCTV에 A씨가 찍혔다. A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고 다녔다”고 전했다.
주유소 CCTV에 찍힌 인물이 A씨가 맞다면 번화가인 300m 거리에서 그가 납치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20대 여성을 유괴할 정도라면 범인은 평소 A씨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을 수 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몇가지 정황으로 볼 때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며 “A씨의 가족과 친구는 물론 제3의 인맥까지 폭넓게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입장은 다소 신중하다. 해당 CCTV 화면이 너무 흐려 단순히 참고용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A씨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조사 역시 계속 되고 있다.
가능성 3. 택시, 택배차량 등 특수차량 운전자의 범행?
용의자가 A씨를 납치하는 데 차량을 이용했을 것이란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사건이 벌어진 군포 인근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자일 가능성도 높다. A씨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사용한 용의자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닌 금전적인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누구보다 해당지역의 지리를 잘 아는 인물이라는 가정아래 직접 또는 공범과 함께 차를 몰아 희생자를 낚았을 가능성이 높다. 대로에서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희생자를 태울 수 있는 차량은 택시나 택배 차량 등으로 한정된다.
특히 납치나 강도 같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용의자는 범행에 쓰인 차를 버리거나 양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용의자는 자신 명의로 된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고 훔친 차량이나 회사 영업용 차량 등을 일시적으로 몰았을 수 있다.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두 번째 추측으로 미뤄 대리운전기사 역시 용의 선상에 오를 수 있다.
특히 A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 불과 30여분 만에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는 것은 용의자가 휴대전화를 빼앗아 직접 배터리를 분리했거나 완전히 부숴버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설픈 변장으로 목격자들의 시선을 끌 만큼 어수룩한 용의자가 휴대폰 배터리를 뺄 만큼 이성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더구나 빠른 시간 안에 휴대폰 신호를 끊어버리고 남에게 발견되지 않게 처리하는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물 속에 빠트리는 것이다.
용의자가 A씨를 차에 태운 뒤 위협해 휴대전화를 빼앗고 호숫가나 저수지 인근을 달리다 밖으로 던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경찰 역시 군포 인근의 저수지와 호수를 중심으로 A씨의 유류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실종기간이 길어질수록 A씨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종된 지 48시간이 지나면 생존 가능성은 10% 이하로 떨어진다는 게 수사 전문가들의 견해다. 현재까지 수사팀에 들어온 목격자 제보는 10건도 채 안 된다.
일부에서는 A씨가 ‘경기서남부 부녀자 연쇄 실종·살해 사건’의 새로운 희생자가 된 게 아니냐는 절망적인 견해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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