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황당 사건‘세상에 이런 일이’
2008 황당 사건‘세상에 이런 일이’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1-07 15:43
  • 승인 2009.01.07 15:43
  • 호수 90
  • 4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기 장기에 칼부림 나고 5살 딸에 도둑질 시키고
2008년 발생한 웃지 못 할 황당 사건들이 뒤늦게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말 검찰이 공식 발표한 ‘황당 사건’ 리스트가 그것이다. 대량 살인과 방화 등 유난히 끔찍한 사건사고가 줄을 이은 무자년 검사들을 울리고 웃긴 베스트 사건은 따로 있었다. 코믹·범죄 영화의 시나리오로 각색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기막힌 ‘막장 범죄 6선’을 돌아봤다.


때려야 ‘서는’ 남자들

젊은 여성들의 종아리를 때리며 성적 쾌감을 느낀 변태 2인조의 사기 행각이 가장 황당한 사건 1위로 꼽혔다. 서울남부지검 형사 1부에 따르면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최모(31)씨와 정모(35)씨는 남을 신체적으로 괴롭히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변태성욕자였다.

여성의 엉덩이, 종아리 등 신체의 일부에 유난히 집착한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직접 파트너를 찾아 나섰지만 자신들의 취향에 맞춘 상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일당이 궁여지책으로 꾸며낸 계획은 유명 연예기획사의 촬영감독과 직원으로 행세해 연예인지망생들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일당은 영화, 드라마 외주제작사인 ‘□□기획사’라는 가공의 업체를 만든 뒤 최씨는 직원으로, 정씨는 촬영감독으로 분했다. 촬영 장비와 촬영 세트까지 임대해 그럴듯한 제작업체처럼 위장한 것.

이후 최씨는 젊은 여대생들이 주로 출입하는 강남 나이트를 돌며 자신들의 ‘촬영’에 응할 여성을 사냥했다. 외제차를 몰며 명문대 출신 엘리트로 자신을 포장한 최씨는 여성들에게 “아르바이트비를 주겠다”고 접근해 환심을 샀다. 그는 빌린 스튜디오에서 여성들에게 카메라 테스트를 하고 전신사진을 이메일로 받는 등 자체 오디션까지 벌였다.

이렇게 ‘간택된’ 여성들은 ‘상궁으로부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무수리 연기’로 신고식을 치렀다. 최씨 일당은 피해 여성들에게 촬영 중 생긴 상처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계약서까지 작성하게 하며 법망을 피해갔다.

피해자들이 사인한 계약서에는 ‘촬영 중 소리를 지르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등 계약을 위반할 때 계약금의 3배를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는 억지 조항도 있었다.

최씨 일당이 피해여성들에게 알바비조로 지급한 돈은 1인당 20만원. 그러나 여성들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이 돈은 고스란히 최씨 일당의 주머니로 되돌아왔다. 무수리로 분장시킨 여성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역할은 최씨가 직접 맡았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한복 치마를 걷어 올리게 한 뒤 80cm 길이의 나무 회초리로 이들의 종아리를 내리쳤다.

매를 맞는 피해자들은 “잘못했습니다, 마마님. 용서해주십시오, 마마님”이라는 대사 외에는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중간에 촬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들은 수치심에 병원 치료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최씨 일당의 엽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당의 진술에 따르면 최씨 등은 2~3명의 피해자 다리에 촛농을 떨어뜨렸고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망사스타킹을 신고 벗는 행위를 반복시켰다. 이들의 변태 행각에 농락당한 피해자는 무려 100여명에 이르렀다.


무속인들의 ‘겁나는’ 내기 장기

지난해 10월 15일 강원도 원주의 한 점집에서 살벌한 장기 한판이 벌어졌다. 이웃사촌인 무속인 안모(43)씨와 박모(49)씨가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내기 장기판을 벌인 것.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을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던 것이다.

한 수 한 수 마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정적을 깬 것은 박씨였다. 평소 다리에 통증이 있었던 박씨는 “나는 허벅지 마비증상이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안씨는 박씨의 농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럼 칼로 찔러도 아프지 않겠군.” 곧장 맥가이버 칼을 손에 든 안씨는 말릴 사이도 없이 박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3번이나 찔렀다. 목숨 내기를 하는 마당에 피가 철철 흐르는 허벅지를 눌러 쥐고 계속 장기에 집중한 박씨.

그러나 점점 수세에 몰리던 박씨는 두려움에 떨며 안씨에게 ‘한 수만 물러 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장기에 한창 맛을 들인 안씨가 그의 부탁을 들어줄리 만무했다. 승부에 눈이 먼 안씨는 그대로 박씨의 멀쩡한 왼쪽 허벅지를 난도질 쳤다. 피투성이가 된 내기 장기판은 마침 점집을 찾은 또 다른 이웃의 신고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사건을 담당한 춘천지검 관계자는 “정신 나간 무속인들이 ‘목숨’을 건 내기장기판을 벌이다 생긴 황당한 사고였다”고 회상했다.

검찰 조사 결과 안씨는 과거에도 두 번이나 다른 사람의 집과 자동차에 불을 지른 전과자였음이 드러났다.


황당 사기극 ‘로또 1등이 뭐 길래’

경제 불황여파로 로또 당첨금을 둘러싼 황당 사기극이 줄을 잇기도 했다. 당첨되지도 않은 로또 복권을 1등이라고 속여 내연녀와 이웃들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가로채는 등 수법도 가지각색이다.

울산지검은 최근 연상의 내연녀에게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됐다며 신용카드 4장을 빌려 흥청망청 써버린 30대 남성 A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 2006년 6월 피해여성에게 “누나(피해자)가 준 돈으로 로또를 샀는데 1등에 당첨됐다. 당첨금이 10억원 정도 된다”며 허풍을 떨었다.

A씨는 이를 미끼로 피해자에게 돈을 뜯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국민은행 서울본점까지 당첨금을 찾으러 가야하는데 차비와 ‘품위유지비’가 필요하다”며 피해자 명의의 신용카드 3장을 빌려간 것. 물론 빌린 신용카드의 결제 대금은 당첨금을 받은 뒤 몇 배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8000만원 이상을 흥청망청 써댄 A씨. 그러나 약속한 당첨금은 끝내 내놓지 않았다. 계속된 연체로 결국 신용카드 3장의 한도가 초과된 지난 2007년 5월. 빌려간 카드 대금을 빨리 갚으라는 피해자의 독촉에 A씨는 또 다른 거짓말로 임기응변에 나섰다.

A씨는 “쓸 수 있는 카드를 더 빌려 달라. 지금 당첨금이 외환은행 인수자금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자가 엄청나게 불어있는데 돈을 받으면 이를 나눠주겠다”고 속였다. 순진한 피해자는 내연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카드 1장을 더 내줬고 A씨는 명품을 사는데 1500만원을 쏟아 부었다.

A씨는 또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하자 이를 무마하려 ‘돈을 곧 갚을 테니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대질 조사 과정에서 애초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실이 없다는 게 드러난 A씨는 결국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로또 복권을 위조해 이웃들을 속인 ‘연기의 달인’도 2008년 최악의 사기꾼에 이름을 올렸다. 남모(50)씨는 지난 2007년 10월 256회차 로또 복권을 구입한 뒤 255회차 1등 번호를 그대로 베껴 눈 깜짝할 사이에 당첨 복권으로 탈바꿈시켰다.

남씨는 곧장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세탁소 주인에게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남씨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져나간 것은 시간문제였다.

순식간에 갑부취급을 받게 된 남씨는 ‘당첨금이 나오면 곧 갚겠다’는 구실로 이웃들에게 돌아가면서 1200여만원을 빌렸다. 남씨는 당첨금을 찾으러 간다며 또 다시 신들린 연기력을 선보여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미 5건의 사기 사건에 연루돼 지명수배자 신세였던 남씨는 결국 검찰에서 모든 죄목을 시인해 씁쓸한 말년을 맞게 됐다.


5살 난 딸에게 “1억만 훔쳐오렴” 정신 나간 모정

황당 사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지난해 3월 제주도에서 일어난 모녀의 엽기 절도 행각이다. 고작 5살 난 친딸에게 1억원이 넘는 돈을 훔쳐오도록 시킨 30대 여성에 경찰과 검찰이 혀를 내두른 것.

지난해 3월 20일 12시쯤 강모(33·여)는 딸과 함께 제주도 시내의 모 은행에 손님인 척 들어갔다. 강씨는 어린 딸에게 “VIP 상담실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오라”고 속삭였다. 5살배기인 딸에게는 의심의 눈길이 덜 쏠릴 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다.

딸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VIP 상담실로 들어가 철제 금고를 연 뒤 1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100장과 5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83장, 2500원짜리 재래시장 상품권 27장 등 약 1억4000만원을 털어 나왔다.

딸에게 수표와 상품권을 건네받은 강씨는 이를 가방에 넣고 유유히 은행을 빠져 나왔지만 절도 행각이 고스란히 CCTV 카메라에 녹화됐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강씨는 그 길로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고 ‘말 잘 듣는’ 딸은 별다른 보호자가 없어 보호기관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러나 강씨는 검찰 수사 내내 “딸에게 돈을 훔쳐오라고 시킨 적이 없다. 딸이 나뭇잎 같이 생긴 뭔가를 주기에 그냥 가방에 넣고 나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사 기간 중 강씨의 태도에 의구심을 느낀 수사관들은 그의 정신감정을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검찰은 강씨가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는 ‘해리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상황이 참작돼 강씨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딸에게 돌아갔다. 제주지검 형사 2부 관계자는 “겨우 5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가 어머니 때문에 거액에 손을 댄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효리의 힘? 채팅으로 1억원 가로챈 사기녀

그 밖에 톱가수 이효리의 이름을 팔아 뭇 남성들로부터 1억원을 가로챈 사기녀가 2008년 황당 사건 순위에 올랐다. 마모(28·여)씨는 지난 2007년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남성들에게 “내 친구는 가수 이효리를 빼다 박았다. 교원 임용고시에도 합격했는데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며 접근했다. 이에 솔깃해진 남성들의 연락처를 수집한 마씨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미모의 ‘퀸카’인척 연기했다.

마씨는 “친구가 학원비 52만원을 도둑맞았는데 빌려주면 곧 갚겠다”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수법으로 1년 동안 피해자 6명으로부터 약 1억6000만원 가량을 뜯어냈다. 특히 박모(32)씨를 상대로는 124차례에 걸쳐 59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가로채기도 했다. 결국 계속 돈만 요구하는 마씨 ‘일당’에게 화가 난 박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효리 뺨치는 미녀’가 가상의 인물이란 사실도 드러났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