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순경 부유층 미혼자들의 모임이 있다는 제보를 받은 후 수소문 끝에 김정현(가명·33)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만난 것은 같은 해 12월 28일. 김씨는 자신이 이른바 귀족 싱글클럽의 회원이라고 했다. 클럽에 가입한지 7개월째로 접어든다는 그는 클럽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씨는 클럽에 대해 퇴폐적이고 향락을 일삼는 모임이 아니라 건전한 사교모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클럽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다소 꺼리는 기색을 내비쳤다. 특별히 문제될 이유가 없는데 왜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솔직히 클럽에 유명인사가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한다”며 “이상한 클럽도 아니고 평범한 사교모임인데 괜히 이상하게 비칠 수 있어 인터뷰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김씨에게 클럽의 이름과 제보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 뒤에야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클럽은 90년대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정확히 언제 클럽이 만들어졌는지 그는 잘 모른다고 했다.
최고학벌 회원이 주축
따로 확인한 결과 귀족 싱글클럽은 여러 개 있다. 그 중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3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유명무실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C클럽으로 강남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모임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C클럽은 결성당시 미국 IVY리그(브라운
C클럽은 수년전까지만 해도 모 포털사이트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보안유지와 일반인 가입차단을 위해 카페를 폐쇄했다고 한다. C클럽을 처음으로 만든 A씨는 정치권과 재계 등 다방면에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인사다.
그는 제각각이던 한국 귀족 사회를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A씨는 현재 C클럽의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그가 활동을 중단한 이유는 C클럽이 애초 그가 만든 취지에서 벗어나 그 성격과 구성원이 변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후 또 다른 사교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의 회원 중 몇몇은 학력위조 파문을 몰고 온 신정아씨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회원이 어떤 모임의 회원인지는 아직 공개된 적 없다.
신정아 사건 당시 일부에선 언론에 막강한 입김을 가진 인사들이 이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외에 A씨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정보는 베일에 가려져 있어 확인하지 못했다.
C클럽 회원은 이런 사람들
김씨에 따르면 C클럽은 수개월 전 강남의 Y빌라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빌라는 강남 최고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C클럽은 이 빌라의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 하루 동안 파티를 벌였다. 이 파티에 참석한 인원은 20여명 정도. 파티치곤 비교적 적은 인원이지만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이력을 자랑한다.
김씨는 “이 파티에 온 이들 중 최고가 브랜드 수입업체 임원, 유명 성형외과인 P병원 의사, 영화배우 B씨 등이 참석했다”며 “당연히 이들은 모두 싱글이다. 파티를 할 땐 남녀구성비를 맞추는데 이날은 남자가 조금 많았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회원들은 철저한 검증을 거친 사람들로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에 퍼뜨리거나 기혼자이면서 미혼이라고 속인 사람들은 클럽에서 제명당한다”라며 “직업을 속여도 제명대상이다. 예전에 한 의사는 미혼이라고 속였다가 나중에 기혼자라는 사실이 탄로나 제명된 적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C클럽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회원이 있다. 유명 기업의 CEO를 비롯해 유명 레스토랑 사장, 유명학원 이사 그리고 억대 매출을 올리는 쇼핑몰 사장도 이곳 회원이다.
김씨는 모임이 비밀스럽게 운영되는데 대해 “비공개 운영은 회원들의 요구다. 운영자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며 “운영진은 모두 7명 정도다. 메인 운영자를 제외한 운영진은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C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모두 80여명 정도. 실질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으로만 구성돼 있다. 이들 중 직업이 없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클럽 회원이 되기 위해선 직업이 필수다. 단순히 재산이 많다고 회원 자격이 주어지진 않는다는 소리다.
김씨는 “회원 신청이 들어오면 신청자에 대한 신원 검증이 철저히 이뤄진다”며 “가장 우선시 여기는 게 직업이다. 학벌, 집안 등 조건이 좋아도 보장된 직업과 수입이 없다면 회원심사에서 탈락된다”고 말했다.
C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억대 연봉은 기본이다. 자영업자라면 억대 수입을 올려야 한다. 수입에 대한 내용은 회원 가입 과정에서 증명해야 한다.
이런 점을 놓고 본다면 싱글클럽은 일종의 맞선 모임이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파티 등 모임에 나오는 이들의 차림새는 연예인 관련 행사를 방불케 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 없냐는 물음에 김씨는 단호히 “그런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파티장에는 카메라를 들고 올 수 없다. 안에서 휴대폰 등으로 사진을 찍으면 보안유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간주, 제명 대상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매우 중한 ‘위법행위’다.
경제불황 그들에겐 남 얘기
파티는 주로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전부지만 다양한 이벤트도 동반된다.
당구, 다트 등 간단한 게임대회나 행운 추첨 등을 통해 상품을 주기도 한다. 간단한 이벤트 같지만 걸려있는 상품 때문에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상품은 주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이거나 상품권이다. 규모가 큰 파티일 경우엔 BMW, 벤츠 등 최고급 승용차가 상품으로 나오기도 한다.
고가의 상품이 주어지기 때문에 회원들은 사소한 게임이라도 매우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임한다고 김씨는 전했다.
이런 상품들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엔 회원들의 적지 않은 회비가 있다. 김씨는 “년 회비는 1인당 800만원 정도다. 많다면 많을 수도 있지만 회원들 중에 회비가 많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며 “회비는 주로 상품구입, 파티비용 등으로 쓰인다. 클럽 운영자금이 부족할 경우엔 회원들로부터 따로 협조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C클럽은 회원 등급제를 실시한 적 있다. 회원이 늘어난 C클럽은 수 년 전 회원을 4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따로 모임을 가졌으나 하위 등급 회원들의 탈퇴가 잇따르고 가입자가 거의 없는 등 문제가 야기돼 등급을 아예 없애고 통합했다.
통합과정에서 최상위 등급 회원들만 남아 사실상 이때부터 C클럽 제 2기가 구성됐다. 학벌위주의 모임이 부유층 위주의 모임으로 바뀐 것은 2기 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클럽에 스포츠 스타들이 다수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정리된 상태다”라며 “그 이유는 스포츠 스타들의 행동거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회원들과의 만남이 자꾸 공개되고 술 취해 주정을 부리는 등 매너가 없어 회원으로 부적격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제 운동선수는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D사의 회장 딸 L씨가 2005년 C클럽에서 만난 남성회원에게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L씨는 남성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사건이 ‘D사 회장 딸 성폭행 사건’이란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될 것을 우려해 상대 남성과 합의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두 사람이 만난 C클럽이 외부에 알려질 뻔 했으나 L씨가 보안을 지켜 클럽의 존재는 경찰도 몰랐다는 후문이다.
#“내가 누군지 말하지 마세요”
2007년 여름 강남의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 C클럽이 이 호텔에서 파티를 한 후의 일이다. 손님이 나간 호텔 룸 뒷정리를 하던 한 직원은 테이블위에 놓인 지갑하나를 발견했다. 지갑은 여성회원 중 한명이 깜박하고 놓고 간 것이었다.
직원이 정리를 마무리했을 즈음 한 여성이 다른 호텔 직원과 함께 룸에 다급히 나타났다. 이 여성이 바로 지갑 주인이었다.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지갑을 돌려줬다. 황당한 사건은 잠시 후 발생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지갑을 받고 사라진 여성은 20여분 뒤 다시 호텔에 나타나 조금 전 지갑을 찾아준 호텔 직원을 따로 불러냈다.
여성은 직원에게 “지갑에서 내 신분증을 봤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주인을 찾아주려면 신분증을 봐야하기 때문에 봤다”고 답했다. 여성은 잠시 고민하더니 지갑에서 수표 2장을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당황한 직원은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 쳤지만, 여성은 손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더 꺼내 들더니 모두 3장의 수표를 직원의 주머니에 반 강제적으로 구겨 넣다시피 했다. 그리고 여성은 나직한 목소리로 “부탁한다”고만 짧게 말했다. C클럽 회원인 이 여성은 전문직 여성으로 TV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는 C클럽에서 만난 남성과 호텔방에서 질펀하게 즐긴 뒤 지갑을 빠뜨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다행히(?)도 호텔직원이 끝까지 함구해 이 여성의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300만원의 약발이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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