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 사태’ 뒤통수 맞은 K-리그
‘황희찬 사태’ 뒤통수 맞은 K-리그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4-12-29 13:36
  • 승인 2014.12.29 13:36
  • 호수 1078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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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구단 유스 시스템으로 유망주 키웠지만 남 좋은 일만
축구유망주 일부 에이전트의 먹잇감…해외진출 성공률 낮아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포항 유스팀(포항제철중-포항제철고) 출신인 황희찬(18·포철고)이 포항 스틸러스의 우선지명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1부리그 잘츠부르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축구계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신인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된 선수가 타 구단으로 간 첫 번째 케이스여서 후폭풍이 거세계 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소년팀 내에 무분별한 해외진출이 가시화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망주들을 키운 프로팀은 딱히 막을 방법조차 없어 해외유출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 <뉴시스>
잘츠부르크는 지난 16일(한국시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운 축구를 위해 황희찬과 2019년까지 계약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들은 황희찬에 대해 “한국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이라며 “황희찬이 팀 축구 스타일과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리저브팀인 FC리퍼링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황희찬은 일찌감치 대형 공격수로 성장할 재목으로 주목받으며 포항의 진두지휘 아래 급성장해온 사례다.

더욱이 그는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 16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득점왕에 오르는 등 탁월한 골감각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에 AC밀란(이탈리아)와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 등 유럽 명문 클럽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지만 황희찬은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후 황희찬은 2015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포항에 우선 지명되면서 프로입문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포항과 계약서를 쓰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외진출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논란의 주체가 됐다.

무단 이적에 유스팀 흔들

이번 황희찬 스캔들은 우선 지명에도 불구하고 타구단으로 가면서 무단 이적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최근 해외진출에 대한 유망주들의 요구가 급증하면서 프로팀들 역시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편법 논란이 일었던 류승우는 지난 시즌 드래프트를 통해 제주와 계약한 뒤 곧바로 독일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임대이적하면서 일단락 지었다.

포항 역시 황희찬이 해외진출을 원하고 있어 류승우처럼 자신들과 계약한 후 임대이적을 추진할 것으로 판단해왔다.

하지만 황희찬은 계약 전 아마추어 상태를 이용해 잘츠부르크와 계약하면서 그간의 절차와 연맹의 규정을 무시한 꼴이 됐다.

물론 축구연맹은 개정된 규정을 통해 우선지명 선수가 다른 팀에 입단할 때는 반드시 원소속팀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하지만 신설된 규정이고 우선지명된 시점은 11월, 개정된 규정통과는 12월이 이뤄져 이마저도 구속력을 갖기에는 힘들다. 또 이 역시 국내 규정일 뿐 원칙적으로는 계약 전 아마추어 신분이기 때문에 국체축구연맹(FIFA) 규정상 이적을 막을 방도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데는 포항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 우선 황희찬과 계약을 추진하면서 금액을 놓고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특히 계약금 지급 여부에서 입장차가 갈렸다.

연맹규정에는 ‘구단은 클럽 우선지명선수에게 계약금을 지급할 수 있고 금액은 최고 1억5000만 원이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포항은 김승대 등 기존 우선 지명한 선수들에게 계약금을 주지 않은 전례를 들어 황희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황희찬 측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외진출에 대해서도 진통을 겪어왔다. 포항은 황희찬과 계약한 뒤 ‘임대 후 완적이적’이라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완전 이적시 발생하는 이적료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황희찬이 도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먼저 황희찬에게 해외진출의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은 포항 유스 시스템이다. 여기에 황의찬의 해외진출을 놓고서는 포항의 배려가 있었다.

포항 측은 “유럽행에 마음이 쏠려있는 선수를 설득시키려고 황선홍 포항 감독까지 나섰다”며 “황 감독님까지 나서서 해외 진출에 대한 부분을 막으려고 했다. 이명주 사례처럼 선수가 국내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끌어올린 뒤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구단의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외열풍 대책 마련
전전긍긍

이처럼 황희찬이 나쁜 선례를 남기면서 파장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한 구단 관계자는 “모든 것을 지원해 성장시켜 놓으면 무엇을 하나. 결국 해외 팀에 빼앗기게 되는데”라며 “이렇게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K-리그 유소년 팀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포항 관계자 역시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오면 유스 시스템에 투자하는 동기 부여가 사라진다. 거액을 들여 유스 시스템에 투자할 바에는 매년 자유선발로 5~6명 선수를 뽑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 정도로 심각성을 드러냈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제 2의 손흥민’, ‘제 2의 이승우’를 꿈꾸는 유소년들이 많아지면서 무분별한 해외진출이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면에 어른들의 돈벌이가 자리 잡고 있어 희생양이 속출하고 있다는 게 축구계의 우려다.

한 관계자는 “한 에이전트는 비행기 값을 부담하면서 다수의 유망주들을 한꺼번에 유럽으로 데려가 테스트를 보게 한다”며 “그 중 한 명만 유럽 클럽에 입단해도 비행기 값 이상을 벌게 된다. 유소년 축구판이 깨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진출한 선수들 역시 현지적응과 실력차 극복에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한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석현준(23·CD 나시오나우), 김경중(23·알 라이얀) 등은 청소년 대표시절 유럽무대에 도전했지만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축구 역시 자원 고갈에 시달리면서 제자리걸음 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현재 타깃형 스트라이커 자원은 국내에 남아있지 않다. 전부 해외로 유출돼 빈 자리만 키우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는 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논의된 준프로계약제는 계약 가능 연령을 고교 졸업보다 2년 앞선 입학 시기로 낮추자는 게 골자지만 프로팀 계약선수가 고교축구 주말리그 등에 출전할 수 없는 현 규정에 저촉되고 근로기준법 등을 따져봐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 대표팀 선발을 배제하는 안과 축구협회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선수 유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고 직업선택자유 침해 등 반대여론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해결방안은 찾지 못하고 있다.

황희찬 사태는 결국 유소년시스템의 근간을 흔들면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프로 3년차까지는 경험축적과 기술 향상을 위해 축구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 만큼 유망주들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량을 극대화해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축구계 스스로 나침반으로 거듭나야 한다.

더욱이 한 K-리그 구단 관계자가 “시장의 물을 흐리는 일부 에이전트들을 협회 차원에서 제재하거나 구단들이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만하다”고 지적한 것처럼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축구계의 단호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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