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사정정국’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검찰의 칼끝이 산업계와 금융계를 넘나들고 있다. 이미 KB사태와 관련해 임영록 전 회장(사진)과 김재열 전 전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고,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도 검찰수사가 한창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정치권마저 경쟁적으로 법안처리를 통해 기업옥죄기에 나서면서 기업들은 이른바 ‘네 군데서 쉴새없이 펀치가 날아오는 사각의 링’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일각에선 경제인의 사면 추진설이 재차 주목받으면서 훈풍이 불 수 있다는 관측도 나돈다. 이에 [일요서울]은 검찰과 재계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조현아·임영록 검찰행…국세청·공정위 칼날 매서워
기업 검찰 수사의 끝은 총수…내년엔 숨통 좀 트일까

임 전 회장은 통신인프라고도화사업(IPT)과 인터넷 전자등기 시스템 사업 등 KB금융그룹이 발주한 전산·통신 사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관련성 여부를 조사받았다.
임 전 회장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성실히 답변하고 갑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범기)는 배임수재 혐의로 전모 KT ENS 부장(44)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소명되는 범죄 혐의가 매우 중대하고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검찰은 모뉴엘에 특혜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긴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전현직 임직원 4명을 구속했다.
하루 뒤인 24일에도 검찰청으로 기자들의 시선이 몰렸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구속영장청구가 진행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조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은행가엔 무슨 일이
금융권에 대한 수사도 확대되고 있다. 모뉴엘 사기대출에 연루된 10개 은행 중 3~4곳이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이 주 타깃이 될 것이란 추측도 나돈다. 수출입은행은 이미 비서실장이 체포되는 등 여파가 미치고 있는데다, 다른 인사의 연루 정황도 검찰이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크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신한은행 불법 고객정보 조회 사건은 숨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 등을 고발한 참여연대는 로비 정황이 담긴 USB를 확보, 일부 내용을 검찰에 제공하기도 했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정치권의 움직임도 재계를 옥죈다. 최근 국세청은 소화제 훼스탈로 유명한 한독(구 한독약품)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한독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이달 초 서울 강남구 소재 한독 본사에 방문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한독 측 관계자는 “일반적인 정기세무조사”라고 밝혔지만, 2012년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별세무조사일 가능성이 높다. 정기세무조사는 4~5년 주기로 이뤄진다.
세무조사 관련 가장 유력한 문제점으로 보이는 것은 리베이트다. 현재 제약업계가 리베이트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한독도 예외가 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4대악 중 하나인 불량식품단속이 심하다. 최근 들어선 대기업 제품에 대한 리스크까지도 손보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은 ‘기업소득환류세’ 등 규제 성격의 제도 도입이 논란이 되면서 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소득환류세란 앞으로 발생할 당기이익 중 투자와 임금, 배당으로 쓰지 않은 금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투자와 배당, 임금 등 더 많은 돈이 가계로 흐르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이나 기업에 대한 압박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2014년 올해의 검찰수사 경제사건’ 선정식에서 오현철 대전지검 홍성지청 형사1부 부장검사, 여환섭 대전지검 형사1부장이 수상한 것도 재계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날 수상한 여환섭 부장검사는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기록한 ‘동양그룹 기업어음(CP)·회사채 발행 사기 사건’을 수사했다.
CP 발행을 통해 그룹 총수의 경영 지배권 유지에 자금을 조달하고 그 비용을 CP를 매개로 시장의 수만 개인투자자들에게 전가해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재판에 넘겨진 현재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15년보다 3년이 적지만, 2000년대 이후 재벌회장 가운데 가장 높은 형량이다.
오현철 부장검사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한창 불거졌던 지난 7월 자체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해 지난 3일 30명을 사법 처리하는 성과를 올렸다.
재계는 연초부터 불어닥친 사정바람에 대해 황당해 하면서도 풀이 죽은 모습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인해 신성장 동력 마련에 힘이 부치는 상황에서 국내 권력기관의 무분별한 조사가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여기에 사면 추진설이 불고 있지만 일련의 검찰행보로 인해 악영향이 미칠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정치권의 ‘사면'에 대한 입장정리에 이목을 모으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 수사의 끝은 총수가 된다. 전문경영인 체제라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부재가 발생하면 그동안 했던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되는데 오너라 하면 그 타격은 심하다"며 “차라리 속 시원하게 검찰수사를 통해 뿌리가 뽑혀 더 이상 혼란이 가중되지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사면설이 훈풍이 되기를 바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