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연말특수’가 실종된 모습이다.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고 송년회도 간소하게 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연말 경기를 더욱 가라앉히고 있다.
[일요서울]이 찾아간 종로와 강남 번화가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상인들은 단가가 낮아졌는데 손님 수는 줄었고 머무는 시간도 짧아졌다는 푸념을 했다 “IMF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경제 흐름이 3~4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상인들의 한숨도 깊다.
강추위에 요식업체도 썰렁…상인들 울상
‘세일’에도 매출 감소…술집 주차장 ‘텅텅’
기업과 금융회사가 밀집한 지역의 음식점들은 단체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상인들은 연말 특수는커녕 평소보다도 장사가 안 된다고 토로한다.
지난 22일 동대문 상가 인근 고깃집에는 오후 8시가 넘어서까지 테이블 10여개 중 세 개가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오랜 기간 가게를 운영했다는 A대표는 “장사가 이렇게 안 되기는 처음”이라며 “예전엔 연말 단체손님이라고 하면 30명이 기본이었는데 올해는 20명 손님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과거를 회상해보면 밤새도록 자리를 이어가던 직장인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며 “상사가 자리를 떠나면 같이 온 직장인들도 한 병 정도만 더 먹고 헤어진다"고 말했다.
직장인 B씨는 “최근 회식 횟수와 규모가 줄었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 등 어려운 회사 사정 때문"이라며 “예년에는 1차와 2차, 노래방까지 이어졌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가볍게 저녁을 먹은 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정도에서 회식을 마친다"고 전했다.
인근 상가에서 대리운전을 한다는 C씨도 “9시 이후 대리운전 손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른 출근시간 탓인지 일찍 집에 가기를 원한다"며 ‘샛길로 새는 손님을 기대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토로한다.
줄어든 호출 건수에 대리운전 업체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꽁꽁 언 지역 경기
한 대리운전업체 관계자는 “12월 특수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난감하다”며 “연말에는 보통 하루 평균 1만5000건 정도의 요청이 들어오는데 2500~3000건 정도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월드컵 특수부터 연말특수까지 기대하는 것조차 잘못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반값 세일조차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한 상인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지만 연말 특수는 기대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며 “예전과 비교해 손님이 줄면서 예약 건수도 많이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스포츠 특수가 있을때의 매출 지표는 ‘닭'이었다. ‘닭'의 판매량을 보면 주변상권의 특수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는 “꽝·꽝·꽝'이라는 게 상인들 사이의 성적표라 했다. 연말특수의 성적표 역시 ‘꽝·꽝·꽝'이 될 게 뻔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연말이 되면 예약이 어려운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식당들도 그야말로 썰렁하다. 예전만큼 연말 모임을 많이 하지 않는 데다 술을 적게 마시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매출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D씨는 “최근에는 기업이나 기관에서도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인 데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손님들이 더 줄어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성금모금도 ‘뚝’
전통시장 경기도 살아날 줄을 모른다.
21일 오후 7시 남대문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상인들은 “장사도 안 되고 날씨도 추운데 일찍 들어가자”며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노점에서 벨트, 양말 등을 판매하는 송석규 씨는 “주변 상인 중 개시도 못하고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며 “외국인 관광객들도 물건을 많이 사지 않고 값을 깎으려고만 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내수경기 침체는 성금 모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 19일까지 집계된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29억6000만 원)의 80% 수준(23억7900만 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전체 기부 건수가 지난해보다 줄었다”며 “현금기부의 경우 전년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 반면 현물기부는 3배 정도 증가해 경제적 부담이 적은 현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추운 날씨로 전통시장에 손님이 줄어들면서 대형마트와 백화점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리시에 위치한 롯데복합쇼핑몰은 아울렛의 연말 이벤트와 함께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온 손님들로 가득했다. 다른 대형마트 역시 손님으로 북적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모(52·여)씨는 “날씨가 추울 때는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며 “전통시장이 저렴하게 좋은 식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용의 편리함 때문에 대형마트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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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