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유니클로는 일본 유니클로 모기업과 롯데그룹이 합작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모기업보다 롯데에 불리한 조건이 훨씬 많음에도 롯데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실정을 들여다봤다.
국내 1위 SPA…배경은 주요상권 유통채널 선점
배당금·로열티·매입액 따져보면 오히려 롯데 손해?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란 한 의류 상품의 기획부터 판매까지의 전 과정을 제조사가 일괄 처리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상품을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양산된 제품들을 스스로 유통시켜 판매하는 식이다. 한 마디로 제조 및 유통에서 발생하는 모든 단계를 책임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의류 공정형태는 빠른 시간 내 생산규모를 늘리고 각각의 유통단계는 줄여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또 소재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트렌드에 발맞춰 디자인을 과감하게 바꾸는 등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높여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기도 한다.
전 세계 1·2위 SPA인 자라(ZARA)나 에이치앤엠(H&M)도 유독 국내에서는 유니클로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할 정도다. 그것도 스페인과 스웨덴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 브랜드보다 일본 기반인 유니클로가 국내의 반일본정서를 딛고 거둔 성공임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니클로 사업을 담당하는 FRL코리아의 2013 회계연도 매출액은 6940억 원이다. 같은 회계연도에 자라는 2273억 원, 에이치앤엠은 1226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FRL코리아가 8월 결산법인인 탓에 매출기간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3~5배가 벌어지는 수치다.
2014 회계연도를 보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다가온다. FRL코리아는 2013년 9월부터 2014년 8월까지 매출액 8954억 원, 영업이익 1077억 원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각각 29%, 40% 늘어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813억 원으로 전년의 494억 원에 비해 64%가 올라갔다.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국내외 SPA 중 유니클로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브랜드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굳어졌다. 또 이 같은 결과는 유니클로가 롯데그룹과 손잡고 국내를 공략하면서 롯데의 유통망을 활용해 주요 상권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유니클로 모기업인 일본 패스트리테일링(FR)그룹은 2004년 롯데쇼핑과 함께 합작사인 FRL코리아를 설립했다. 지분은 FR그룹이 51%, 롯데쇼핑이 49%로 비슷하지만 주도권은 FR그룹이 갖는 형태다.
그간 롯데쇼핑이 출자한 금액은 초기 투자와 두 번의 유상증자 등을 모두 합하면 117억 원에 달한다. 이에 비해 2011년 첫 배당을 실시한 FRL코리아가 롯데쇼핑에 지급한 배당금을 전부 더하면 352억 원에 달한다. 단순 비교했을 때 롯데쇼핑은 4년간 배당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남은 셈이다.
투자액 대비 수익금
면밀히 들여다보면
하지만 FRL코리아가 일본 FR그룹과 자회사 일본 유니클로에 지급하는 로열티를 보면 롯데로서는 억울함이 피어오를 만하다. FRL코리아는 FR그룹과 일본 유니클로에 매출액에 비례한 로열티를 더블로 지급하고 있다. 2014 회계연도 단 한 해에 지급한 로열티만도 430억 원에 이를 정도다.
이는 롯데쇼핑이 그간 받은 배당금 총액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심지어 올해 일본 유니클로에 지급한 로열티는 전년 대비 4배가량 증가하기도 했다. 게다가 FR그룹은 지분 관계상 당연히 롯데쇼핑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받고 있다.
배당과 로열티를 제외한 부분에서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FRL코리아는 올해 일본 유니클로에서 들여오는 상품매입으로만 8368억 원을 썼다. 이는 매장에 있는 장식 하나라도 모두 일본 유니클로에서 가져다 쓰도록 돼 있는 계약 조건 때문이다.
FRL코리아 측은 이 같은 상품매입액 현황은 일부 거래가 더블 카운팅돼 올라간 수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년도 상품매입액이 3773억 원임을 감안하면 정정공시되더라도 매입액은 6000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롯데쇼핑이 올해 FRL코리아로부터 지급받은 입점수수료는 305억 원에 그쳤다. 이는 주요 롯데백화점·마트·쇼핑몰 등 롯데의 유통채널에 입점한 유니클로가 업계 평균에 비해 매우 낮은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유니클로 42개 매장 중 15개 매장은 롯데가 운영하는 유통채널에 입점해 있다. 이로 인해 유니클로가 롯데에 지급하는 평균 입점 수수료율은 10% 초반대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류 브랜드가 백화점에 지급하는 입점수수료율은 30~40%대에 달한다. 일부 수입 고가브랜드의 경우 20%대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흔치 않은 경우다. 그것도 유니클로는 타 브랜드에 비해 좋은 위치를 점하면서도 수수료를 제일 적게 내는 상황이다.
더불어 매장 임대만 해주기로 돼 있던 롯데쇼핑은 올해 FRL코리아로부터 385억 원어치에 이르는 상품까지 매입했다. 사실상 롯데쇼핑이 직접 상품을 매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FRL코리아의 재고를 떠안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법하다.
그럼에도 롯데는 유니클로가 합작을 접고 독자적인 국내 공략에 나설까 오히려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유통업계에서는 롯데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유니클로를 놓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유니클로가 롯데를 버릴 가능성에 베팅하는 중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SPA들의 초점이 백화점·마트가 아닌 몰·스트리트로 옮겨갔기 때문에 유니클로의 경우에도 롯데와의 관계가 그리 절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 유니클로의 입장에서는 롯데를 이미 활용할 대로 활용한 만큼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