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싸움 부메랑으로 돌아와…일부 시민단체 수용 촉구 나서 ‘주목’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 7일 올림픽 개혁안인 ‘어젠다 2020’을 통과시키며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해 분산개최 방안을 제안했다. 조직위를 비롯해 정부에서는 분산개최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준비과정에서부터 삐그덕거리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침몰위기에 몰려있다. 지역이기주의와 책임전가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극대화 되고 있는 평창올림픽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대회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2일 “분산개최는 절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미 모든 경기장의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에 대해 분명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세 번 만에 어렵게 유치한 대회다. 현재 각 경기장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분산 개최 논의는 의미 없다”며 “관계 부처는 IOC에 분명한 설득 논리로 대응하기 바란다. 대회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현안을 빠르게 정리하고 준비 과제들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같이 분산 개최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당국과 조직위는 일제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IOC가 분산개최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고 나서므로 인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위 거부의사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주도로 통과된 ‘어젠다 2020’은 나가노, 토리노 등에서 동계올림픽 개최로 적자에 시달리면서 올림픽 유치경쟁이 시들해진 것에 대한 자구책으로 등장했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권을 받았던 노르웨이 오슬로가 주민들의 반대로 반납하면서 발단이 됐다. 이에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중국 베이징만 후보 도시로 남아 있는 상태다.
더욱이 러시아가 5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올해 개최했던 소치 동계올림픽도 어마어마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월드컵을 치른 브라질 역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올림픽 특수를 기대했던 국가들이 대거 유치전에서 발을 빼면서 IOC도 개최지 유치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이번 분산개최는 평창올림픽을 겨냥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IOC가 이번 모나코 총회에서 평창올림픽을 직접 거론한 데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창은 3수라는 노력 끝에 개최를 확정지었으나 3년 지난 이제야 첫 삽을 뜨고 있는 수준이다. 특히 재정문제를 놓고 지방정부과 중앙정부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준비과정에서부터 불화가 시작됐고 아직도 책임공방을 벌이며 손을 놓고 있다.
이에 IOC는 진척이 없는 평창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평창이 재정적으로 열악한 점을 고려해 분산개최라는 압박카드를 내놓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평창은 이에 발끈해 개최권 반납까지 거론하자 IOC는 권고사항이라며 한 발 짝 물러선 상태다. 그러나 IOC는 2015년 3월까지 답을 요구하고 있다.
IOC 고민 깊어져
물론 강원도와 올림픽조직위는 결사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IOC의 권고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더욱이 일부 시민단체들은 분산개최 수용을 촉구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분산개최 이슈의 근본적인 원인은 재정이 열악한 강원도가 유치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평창은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준비 초기부터 재정 부담을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최근 최대 현안이었던 개폐회식장 건설비 분담문제는 평창올림픽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당초 유치신청서에는 알펜시아의 기존 스키점프장을 개조해서 개폐회식장으로 사용하고 이때 개폐회식장 비용은 조직위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후 IOC는 평창 현지 실사를 통해 스키점프장의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주문했다. 이에 조직위와 강원도는 대관령면 횡계리에 4만석 규모의 개폐회식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개폐회식장이 변경되면서 1300억 원에 이르는 건립비용을 두고 불협화음이 일기 시작했다. 강원도는 줄곧 75%를 요구해왔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문순 강원도지사,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회동을 갖고 정부 50%, 강원도 25%, 조직위 25%씩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강원도의회가 합의안에 반대하면서 논란은 재점화됐다. 도의회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 수준인 상황에서 25% 부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이들은 12.5%만 부담하겠다는 안을 주장해왔다.
또 도의회는 강릉에 건설예정인 빙상경기장 사업비 가운데 도비 부담액인 352억 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등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 개폐회식장 등 개최비용을 놓고 문제가 불거지면서 IOC까지 흘러들어갔다는 게 평창조직위 등 복수의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난 18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제5차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 올림픽 대회 지원위원회’ 회의에서 개폐회식장을 4만석 규모로 평창 횡계리 일원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정부차원에서 결단을 내려 대내외적인 논란을 일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도 개폐회식장을 놓고 여전히 잡음이 일 것으로 보인다.
1300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 개폐회식장은 경기장이 아니기 때문에 개회식과 폐회식을 빼고는 활용방안이 전무하다.
또 최 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창 올림픽 이후 철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혀 대회 이후 고스란히 세금으로 철거비용 수백억 원을 다시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각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예산도 2011년에는 약 8조 원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추정했으나 올해는 47%가 늘어난 13조 원으로 급증했다.
최근 국제대회가 적자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평창올림픽 이후 강원도는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앞서 인천아시안게임이 빚잔치로 끝나면서 인천시는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17개 경기장 건설비용 등으로 총 2조5000억 원이 투입된 가운데 빚 1조2500억 원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에 인천시는 15년 동안 이를 갚아나가야 해 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한적한 시골인 평창의 경우 그 후유증이 더 크다는 점에서 대회 이후 강원도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가리왕산, 환경파괴 부각
이와 함께 환경파괴 문제도 비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벌목에 들어간 정선의 가리왕산은 세계적인 환경파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강원도는 총 13개의 경기장 중 7개는 기존 시설을 재활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규로 조성되는 경기장중 활강스키경기장은 경기 단 6일을 위해 500년된 원시림을 파괴하고 있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외 40여개 환경단체들은 조선시대부터 보호된 원시림을 파괴한다며 공사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활강스키경기를 투런(2Run), 표고차 750m 규정에 따라 경기를 치르면 기존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데도 IOC와 정부, 강원도, 조직위가 무리하게 환경파괴에 나서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IOC가 분산개최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국내 분산유치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무주는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르면서 국제 규격의 활강코스를 갖추고 있다.
이에 전북도의회는 ‘가리왕산 활강 경기장 조성사업 전면 철회 및 무주리조트 활강코스 보완 활용 건의안’을 통해 “무주리조트의 일부 시설만 보완하면 올림픽 경기를 치를 수 있다”며 “분산 개최하면 가리왕산의 산림 파괴를 막고 개최에 드는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북도와 무주군은 무주리조트의 경우 표고차가 809m지만 기존 시설을 보완하면 국제스키연맹이 요구하는 표고차 855m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예산에서도 현재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에 1100여억 원, 개최 후 원상 복원에 1000여억 원이 들어가는 등 모두 2100여 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무주리조트를 활용할 경우 120억 원이면 충분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강원지역 26개 시민단체들도 분산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0일 성명서를 통해 “평창올림픽은 아무런 재정대책도 없이 벼량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분산개최는 강원도 재정 악화를 최소화하고 환경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흑자 올림픽은 소치올림픽의 적자와 수천억 원에 이르는 강원도의 지방채 발행에서 보듯 허망한 목표가 되고 있다. 강원도 가용예산은 몇 백억이 되지 않는데 경기장 사후 관리비로 모든 재원을 다 써도 모자란 상황에 처하게 됐다. 분산 개최를 과감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 도지사는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며 “비용이 절감되지 않는다. 분산개최는 명분도, 실리도 뚜렷하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직위 측도 IOC가 분산개최 제안에서 제시한 슬라이딩센터(썰매 종목 경기장)는 지난 3월에 착공, 현재 공정률은 12%로 분산개최를 받아들일 경우 산림복구비 150억 원, 위약금 190억 원등 총 사업비 1228억 원의 절반에 이르는 610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분산개최를 반대하고 있다.
반격카드 없는 조직위
그러나 IOC가 조직위에 대해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는 만큼 당근과 채찍으로 분산개최 수용을 다시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조직위가 주장하는 공사 중단 손해에 대해서 IOC가 부담하겠다는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것.
IOC는 올림픽 개최국에 보조금을 지원해 왔다. 통상 방송중계권료와 ‘TOP(The Olympic Partner)스폰서’에서 얻은 수익 중 일부를 개최국에 배분한다.
지난 7월초 바흐 위원장은 평창에 8억5000만 달러(약 9365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당초 IOC가 계획했던 6억4000만 달러보다 늘어난 금액이다. 이를 감안할 때 IOC는 분산개최를 수용하면 이보다 더 줄 수 있다는 제의를 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IOC의 채찍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평창올림픽은 준비에 차질을 빚으면서 이미 빌미를 제공했다. 특히 조직위는 미흡한 경기장 공사 지연과 스폰서 계약 부진으로 덜미를 잡힌 상태다.
현재 6개 신축 경기장의 전체 공정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환경문제가 논란이 된 스키활강경기장의 경우 착공이 늦어져 2016년 2월 월드컵 활강대회까지 코스가 완공될지 미지수다. 또 스폰서와의 계약도 당초 목표였던 8700억 원의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IOC가 책임을 추궁할 경우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여기에 유치 당시 약속한 부분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IOC의 압박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유치 당시 조직위의 약속 가운데 사후 경기장 활용방안도 들어있다. 당시 문서에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워터파크로, 아이스하키1 경기장은 원주로 이전하기로 돼 있지만 현재 계획은 사실상 모두 철거로 변경됐다.
분산개최 논란의 핵심인 썰매경기장도 계획서에는 국가대표 훈련장, 외국선수 전지훈련장, 국내외 대회 개최장소, 4계절 프로그램으로 테마형 시설로 활용한다고 명기되어 있지만 연간 100억 원이나 되는 운영비를 부담할 주체도 정해지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금 문제도 IOC와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올림픽 개최국은 국제대회 행사를 치를 경우 국제관례에 따라 IOC, 선수, 심판에 대해 법인세, 부가세 등 조세를 감면해왔다.
이에 정부도 2011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IOC 프레젠테이션에서 올림픽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재정 및 법적 지원과 세관, 출입국 절차에 대한 정부 보증을 약속한 바 있다.
특히 세법 개정을 통해 IOC 지불금과 올림픽 관련 장비에 대해 면세 혜택을 주고 총기와 의료 장비 등에 대해 사전 반입허가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가 조세 감면을 위한 법령 개정에 난색을 표하면서 자칫 최대 1600억 원에 달하는 세금폭탄이 떨어질 수도 있게 됐다. IOC가 약속 위반을 물고 늘어질 경우 조직위로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평창올림픽이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OC는 평창이 외국의 기존 슬라이딩 센터를 이용하면 평창 건설비의 상당부분과 연간 300만~500만 달러의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평창올림픽이 마구잡이식 개발이 아닌 비용 절감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실리적인 올림픽이 돼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특히 최근 선진국들이 실리를 이유로 자진해서 올림픽 유치에 철수하는 점은 경제 불황 극복을 외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 총리도 “평창올림픽은 사후활용까지 고려한 경제올림픽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규모와 환경을 고려한 실용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근 인천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주경기장을 환하게 밝혔던 성화대가 철거를 결정했다. 성화대는 제작비용만 무려 9억 원이 들었지만 유지보수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면서 2달 만에 사라지게 됐다.
더욱이 철거를 전제로 2억 원 정도에 만든 부산아시안게임 성화대보다 4배나 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재활용이 아닌 철거가 결정되면서 결국 세금만 낭비한 셈이 됐다.
평창올림픽 역시 국민들의 세금으로 치러지는 점에서 혈세 낭비가 아닌 국익 향상을 위해 더욱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분산개최가 한 방편이면 무조건 거부가 아닌 합리적인 포용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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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