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26>
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26>
  • 김기삼  
  • 입력 2008-11-25 14:12
  • 승인 2008.11.25 14:12
  • 호수 761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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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역사상 ‘된장영어’ 최고 고수는 이동복·현홍주
지난 95년 2월 어느 날, 나는 해외공작국의 이모 행정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아주과에서 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해외공작국 아주과는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우선 과의 분위기가 괜찮았고 업무량도 적당했다.

다른 과에 비해 해외 파견관으로 나갈 기회가 일찍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해외공작국의 핵심과는 북미과였다. 하지만 나는 진작 공작국 친구들로부터 “북미과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북미과로 갈 마음은 없었다.

후에 실지로 해외공작국에 가서 살펴보니 “북미과에 안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긴 업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과의 분위기도 살벌했다.

무슨 할 일이 그리도 많은지 북미과 직원들은 하루 종일 책상에 고개를 쳐 박고 살았다.

사무실 내에서 과원들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나는 아주과보다는 내심 정보협력과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외국 정보기관과의 정보교류 업무를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에 해외공작국의 업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당시는 기존의 해외 정보수집 방식에서 탈피해서 외국 정보기관과 정보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이 모 행정과장에게 “아주과 보다는 정보협력과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안기부 전설적인 ‘고대 3인방’

며칠 후 해외공작국의 정영철 국장에게 정식으로 전입신고를 하러 갔다. 그는 나를 보더니 대뜸 “니가 김기삼이냐?"라고 말했다. 첫 인사치고는 뉘앙스가 좀 묘했다. 아마 ‘오정소 실장의 직접 부탁으로 전입해 온 녀석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너였구나!’라는 투였다.

당시 국정원에는 고대 출신 삼인방이 이른바 실세였다. 오정소, 정영철, 그리고 남영식 실장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국내와 해외, 그리고 대북 수집 부서의 부서장들이었다.

이들이 국정원의 핵심 꽃보직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이들은 연배도 비슷한 데다, 젊은 시절부터 해외공작국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 사이라 서로 잘 어울리고 협조도 잘 했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고대정신(?)에도 충일한 사람들이었다.

오 실장은 그 후 국내 차장으로 먼저 승진했고, 남 실장은 황장엽 선생의 망명을 막후에서 직접 지휘한 공로를 인정받아 차장급인 특보로 승진했다.

정영철 국장은 차장으로 승진하지는 못했지만, 정권이 바뀌고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살아남았다.

해외공작국 정보협력과는 신모란 분이 과장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 해외공작국장을 지냈다가 현재는 아시아 어느 나라의 대사로 나가 있다.

신 과장은 나의 국정원 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나를 자상하고 세심하게 배려해 줬다. 그가 처음으로 내게 맡긴 일은 해외 정보기관과의 정보협력 자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주로 외국 정보기관에 제공할 정보협력 자료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과 외국 정보기관 인사들과의 통역업무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이런 작업을 위해 외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한 세 명의 전문 통역사들이 있었다.

나는 이를 테면 이들 전문직 직원들의 번역작업과 통역업무를 지휘하고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던 셈이다.

나는 또한 일주일마다 타국 정보기관과 정보 협력한 실적을 종합하여 실장에게 보고하는 일도 맡았다.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안기부가 외국 정보기관과 무엇을 어떻게 협력하고 어떤 자료를 주고받는 지"를 대충 조감할 수 있었다.


정보협력과서 만난 사람들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조금 외람스럽긴 하지만 정협과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소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국정원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이들이 어떤 인간관계를 맺는지 좀 설명하기 위해서다.

신 과장은 경복고,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으로 영어를 특히 잘 했다.

유학파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배운 영어를 우리끼리는 ‘된장영어’라 불렀는데 안기부 역사상 된장영어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은 이동복 특보와 현홍주 차장이었다.

나는 이동복 특보를 직접 본 적이 없어 그가 얼마나 영어를 잘 했는지 잘 모른다.

들리는 말로는 남북회담 전후에 외신 기자들에게 영어로 브리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정도로 잘 했다고 한다.

이 특보는 특히 어려운 단어와 표현들만 골라 써서 조금 현학적으로 들린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현홍주 전 미 대사가 영어로 대담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대학시절 AFKN을 통해 ABC 방송의 심야 대담프로인 ‘나이트라인’을 즐겨 보았는데 언젠가 전두환 정권 말년인지 노태우 정권 초기쯤인지, 현 대사와 민주당의 박실 의원이 그 프로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 대해 토론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집권여당이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현 대사는 유창하고 거침없는 영어로 유연하게 변명했고 박실 의원은 한참이나 유리한 형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버벅거리며 공격의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 현 대사의 완벽한 한판승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김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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