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주범 10년 만에 검거…‘장미정 사건’
‘집으로 가는 길’ 주범 10년 만에 검거…‘장미정 사건’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12-22 10:08
  • 승인 2014.12.22 10:08
  • 호수 1077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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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가 국제마약사범으로…756일 감방 생활

▲ <'장미정 사건'으로 알려진 마약운반 사건의 총책 전모씨가 10년만에 검거됐다. 사진제공=뉴시스>

남편 지인 부탁으로 운반한 트렁크… ‘운명 바꾸다’
“외교부 자국민 보호 소홀했다” 비난 여론 일기도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10년 전 어느 날 평범한 주부였던 장모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남편 친구에게 부탁받은 가방을 들고 프랑스 파리의 오클리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 가방 안에서 코카인이 발견된 것이다. 장 씨는 마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마약사범’이 돼버린 그는 프랑스의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006년 11월이 돼서야 석방됐다. 지난해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개봉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16일 이 사건의 진범이 남미에서 붙잡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0년 만에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2004년 10월 31일 주부 장미정(당시 34세)씨는 10년 넘게 알고 지낸 남편 지인 조모씨의 부탁을 받고 수리남에서 프랑스까지 가방을 운반했다. 조 씨는 장 씨에게 “가방 속 내용물은 사업에 필요한 원석”이라고 설명했으며 수고비로 400만 원을 건넸다. 그러나 장 씨는 프랑스 파리 오클리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약 소지 및 운반 혐의로 체포됐다. 조 씨가 건넨 가방 안에는 원석 대신 코카인 37kg이 들어 있었다.

“코카인입니다”
 인생 바꾼 한 마디
 
장 씨의 말에 따르면 조 씨는 “남미에서 유럽까지 원석을 운반해야 하는데 한 명이 옮기면 세금 문제가 있어 여러 명이 나눠 들고 와야 한다”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장 씨를 설득했다. 당시 형편이 넉넉하지 않던 장 씨는 남미에서 무거운 여행가방 2개를 받아들고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오클리공항의 세관 직원 요구로 열린 가방에서 코카인이 발견되자 장 씨는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찰에 남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장 씨는 이내 파리 시내의 경찰청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유치장에서는 전화는 물론이고 편지 한 통도 쓸 수가 없었다.

이틀 뒤 장 씨는 파리 근교에 있는 Fresnes 구치소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장 씨는 바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편지를 받은 남편은 바로 외교부에 신고를 했다. 프랑스 내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같은 해 12월9일 장 씨를 찾아왔다.

장 씨는 다음해 1월31일 비행기를 타고 9시간을 날아가 대서양에 있는 마르티니크 섬에 도착했다. 마약 운반이 가이아나에서 시작됐고 재판 관할지가 마르티니크였기 때문에 재판 개시와 함께 장 씨는 마르티니크의 뒤코스 구치소로 이감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식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침 커피, 점심·저녁 요구르트와 비스킷이 전부였다. 돈이 있는 수감자들은 군것질거리를 사먹을 수 있었지만 외부에서 돈을 받지 못한 장 씨는 배고픔을 견뎌야만 했다. 또 구치소의 교도관은 장 씨에게 성추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대서양 섬의 구치소에서 장 씨를 도와줄 곳은 대사관뿐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1년 동안 대사관 직원은 딱 한 차례 면회를 왔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이때 대사관 직원은 장 씨에게 “국선변호사를 만났다징역 10년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낯선 나라의 구치소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도 보지 못한 채 10년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깜깜했다. 이에 장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다짐하고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었다가 2일 뒤에 깨어났다.

그러다 2006년 2월 재판부는 장 씨의 구속적부심에서 장 씨를 단순가담자인 점을 감안해 마르티니크 거주를 조건으로 가석방 및 보호감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재판부는 장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미 구속기간으로 1년을 다 채운 장 씨는 바로 석방됐으며 꿈에 그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 뒤인 지난 16일 마약 운반의 총책인 전모씨가 남미에서 붙잡혔다.

외교부 “수차례 면회
석방 위해 최선 다해”

한편 장 씨가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는 방송 프로그램 <추적 60분>을 통해 장 씨의 사건이 알려졌다. 당시 방송에서는 외교부가 장 씨의 석방에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 씨 또한 대사관 직원이 마르티니크에서 면회를 1회 밖에 오지 않았으며, 징역 10년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 2005년 7월께 한국에서 장 씨에게 마약운반을 부탁했던 조 씨가 붙잡혔다. 재판에서 조 씨는 장 씨가 마약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장 씨가 단순 가담자라고 선고한 한국 재판부의 판결문은 2006년 3월이 지나서야 프랑스 법원에 도착했다. 판결문이 일찍 도착했다면 장 씨의 석방도 빨라졌을 터였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외교부가 자국민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그러나 외교부는 장 씨의 체포사실을 인지한 후부터 Fresnes 구치소 4차례, 마르티니크 섬 3차례 면회를 갔으며 장 씨 면담과 함께 현지 사법당국에 조속한 재판 등에 대한 협조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또 장 씨의 남편과 30여 차례 통화하면서 재판 진정사항을 통보했고, 장 씨의 애로사항 해소 및 지원을 위해 협의했다고 해명했다.

장 씨에게 송금을 해주고 교도소 방문 시 책과 옷, 생필품을 전달해 장 씨로부터 감사하다는 서신도 접수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사 결과를 2005년 7월에 발송했으며 같은 해 11월 판결문도 판사와 변호사에게 송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사법 당국이 판결문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2006년 3월 재송부 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외교부는 장 씨의 1년형에 대해 “우리 측의 다양한 영사보호활동과 적극적인 협조로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장미정 사건’에 대해서 외교부에 비판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장 씨는 지난해 귀국한 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너무 믿지 말고 외교부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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