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주고 산 명품 시계, 단돈 400만원도 아쉬워”

“2000만원 주고 샀음 뭐해요. 당장 카드 값 구멍 나게 생겼는데.”
뚝 떨어진 기온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불던 지난 수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한 중고명품 매장에서 만난 30대 여성 A씨. 재작년에 2000만원을 주고 산 피아제 시계를 ‘명품 전당포’에 맡기고 100만원권 수표 4장을 손에 쥐었다. 원래 가격의 1/5밖에 안 되는 ‘푼돈’이지만 지금 A씨에게는 이나마도 감지덕지다. 그는 “수개월 밀린 카드 빚을 갚으려면 앞으로도 갖고 있는 명품 대 여섯 개는 더 팔아야 한다”며 서둘러 가게를 떠났다.
경기 불황에 돈 한 푼이 아쉬워진 중산층들이 명품 전당포로 몰리고 있다. 과거 ‘나가요 걸’ 등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성형수술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찾던 명품 전당포가 불황에 허덕이는 ‘중산층 남녀노소’를 새로운 고객으로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알뜰 쇼핑족들이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손에 넣기 위해 찾던 중고 명품매장에도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의 발걸음이 더 잦아졌다. 최근에는 아예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 대부업체로 대출상담을 하는 명품 전당포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연이율 36~49%로 사채시장을 방불케 하지만 불황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른 명품 전당포 ‘폰샵’의 모든 것을 들여다봤다.
가장 통 큰 씀씀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 서울 압구정동. 이곳도 불황의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고급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압구정동이 최근 명품 전당포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 골목 일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싼 값에 명품을 구하려는 고급 쇼핑족이 대거 몰려들던 곳이었지만 요즘엔 사정이 달라졌다.
“300만원짜리 샤넬 가방이 100만원”
명품 전당포는 말 그대로 명품을 담보로 현금을 대출해주는 대부업체의 일종이다. 일명 ‘폰샵(Pawn Shop)’ ‘폰뱅크(Pawn Bank)’등으로 불리는 명품 전당포는 대부분 중고 명품 매장과 함께 운영된다.
1~3개월 단위로 담보 대출을 해주는 이곳에 물건을 맡긴 고객들은 매달 물건 값의 4%(연이율 48%) 정도를 이자로 내야 한다. 이자율만 놓고 보면 제3의 사채시장이라 불릴만하다.
“이거 300만원이나 주고 산건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이 같은 이자율 감당하지 못해 아예 물건을 포기하거나 전당포에서 아예 물건을 팔아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거금을 들여 사들인 명품을 전당포에 들고 온 이들은 내심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애지중지하던 시계며 핸드백을 내 놓는 사람들은 20대 후반~3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대부분. 이들은 대부분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피한 채 가격 흥정에만 몰두한 모습이었다.
‘남의 일에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여러 명. 기자가 머문 약 2시간 여 동안 약 5명의 손님들이 비슷한 실랑이를 벌이고 매장을 떠났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거의 새것처럼 보이는 샤넬 가방을 내놓고 100만원을 받아갔다. 본전을 생각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맡겨만 놓고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짜디 짠 감정가는 전당포들의 생존 전략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물건 상태에 따라 대출 가능 액수도 천차만별.
한 명품 전당포 주인 J씨(48)는 “100만원대 루이비통 가방은 출시된 지 6개월이 채 안된 신상품일지라도 절반인 50~70만원 정도, 300만원대 샤넬 핸드백은 150~200만원 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계의 경우 신상품 가격이 2000만원 정도인 피아제 시계는 500만원까지 현금 대출이 가능하다. 물론 그나마도 철저한 정품 테스트를 거친 뒤의 이야기다.
쇠창살과 어두침침한 분위기로 대변되던 과거 전당포와 폰샵의 또 다른 차이점은 바로 진품과 짝퉁을 구분하기 위한 ‘전문 감정단’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십 수 년 이상의 ‘내공’을 갖춘 감정단은 폰샵 세계에서 엘리트 집단으로 통한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감정사를 모시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도 눈물겹다.
올해 초 진짜 같이 정교한 짝퉁 시계를 폰샵에 넘기려던 조직이 경찰에 덜미가 잡히면서 업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폰샵’은 짝퉁과의 전쟁터
또 다른 폰샵 직원 K씨(29)씨는 “얼마 전 한 중년 남성이 감정가 50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를 가져왔는데 부속품을 해체해보고 나서야 가짜라는 걸 알았다”며 “촉감과 무게는 물론 감정서에 케이스까지 완벽해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즘에는 아예 핸드백 속을 칼로 찢어봐야 짝퉁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정교한 ‘기술자’들이 활개를 쳐 명품 전당포 관계자들은 아예 감정가를 낮춰 잡는 것으로 손해를 만회하고 있다.
과거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던 오래된 전당포는 낡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 수백만원짜리 명품이 오고가는 명품 전당포에서 마주친 2008년판 불황의 그늘은 과거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길고 긴 불황의 터널 속을 헤매는 서민들은 정작 맡길 물건이 없어 전당포를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푼이 아쉬워 쓰던 물건을 저당 잡히는 사람들에게 조차 문턱이 높아진 전당포. 럭셔리 명품만을 취급하는 그곳은 이 시대 양극화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 진품 감별법
진짜? OR 짝퉁?
진짜와 짝퉁을 구분하는 감별사들의 눈은 짝퉁 기술자들의 실력이 늘수록 높아만 간다. 과연 이들이 공개하는 짝퉁 감별법의 노하우는 어디에 있을까. 명품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요즘 일반인도 손쉽게 명품을 감별하는 비법을 공개한다.
▶구찌 : 상품에 고유코드가 있고 태그(tag)가 있다. 소재와 부자재가 고급스럽다. 만약 장식이 조잡하거나 고유코드가 없고 부자재의 질이 떨어진다면 100% 짝퉁이다.
▶롤렉스 : 보증서와 푸른색 제조번호 메달을 달고 있다. 고유의 왕관마크는 크기가 작고 옆에서 보면 약간 볼록하다.
▶루이비통 : 모서리와 가죽 이음새를 왁스 먹인 특수실로 정확히 바늘땀을 잡아 수작업으로 박음질한 것이 특징이다. 핸드백이나 악세서리의 도금은 오래 사용해도 잘 벗겨지지 않는다. 가죽 부분 색이 탁하거나 일정하지 않으며 바느질이 조잡하고 냄새가 심한 것은 가짜다.
▶샤넬 : 샤넬 핸드백은 양가죽이나 소가죽 등 천연 가죽만을 사용한다. 핸드백 안쪽에 고유번호가 찍힌 라벨이 있다. 가짜의 경우 마크의 박음질 간격이 넓고 표면이 운다. 핸드백 바닥이 조각으로 연결돼 이음선이 있어나 샤넬 로고가 있으면 진짜가 아니다.
▶페레가모 : 진짜는 로고가 있는 안감을 사용한다. 메달장식이 조잡하고 로고가 없거나 상품번호가 없는 것은 가짜다.
▶프라다 : 가죽 부분의 마무리가 상당히 정교하고 세련됐다. 고급 종이로 만든 상품 설명서가 첨부돼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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