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은 집안 내부사정 꿰뚫은 사람?

지난달 17일 오전 3시40분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한 저택에 경찰이 출동했다. 이곳에 도둑이 들어 금품을 털어갔다는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저택은 현역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강성천 의원의 집인 것으로 드러났다. 강 의원의 집에 도둑이 든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강 의원의 수상쩍은 행동이다. 경찰은 강 의원이 다이아 반지 등 1억여원의 금품을 도난당했다고 밝혔으나 강 의원이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도둑이 든 것은 맞지만 다이아 반지를 도난당한 적도 없고 도단당한 금품은 대부분 처제의 것이라는 게 강 의원의 주장이다. 또 강 의원에 따르면 경찰 측이 이 사건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의 이런 입장표명에 사건을 조사한 마포경찰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강 의원의 말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경찰은 강 의원이 갑자기 말을 바꾸고 있다면서도 더 이상의 공개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경찰은 강 의원의 가족이 잠든 사이 도둑이 다용도실 창문을 통해 침입, 현금 155만원과 500만원권 수표 1매, 100만원권 수표 3매, 10만원권 수표 80매, 여성용 명품 손목시계 1개, 1캐럿짜리 다이아반지 1개 등 1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공개되자 강 의원의 재산내역에 따가운 눈총이 모아졌다. 강 의원이 노동조합 간부 출신이기에 더욱 그랬다. 노동운동에 매진하며 노동계의 실력자로 알려진 그의 집에서 1000만원짜리 여성 손목시계와 1캐럿 다이아반지가 있었다는데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비쳤다.
문제가 된 도난 물품리스트
강 의원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강 의원 측은 경찰이 작성한 도난 리스트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강 의원 측은 “공직자 재산등록에 포함되지 않은 명품시계와 다이아반지 등 1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도난당했다는 경찰의 발표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 부분은 경찰에 진술한 피해자 진술 조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10만원권 수표 80장(800여만원)과 1캐럿 상당의 다이아반지를 도난 물품에서 제외했다. 또 강 의원에 따르면 도난당한 금품 대부분은 암 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처제의 소유라는 것이다.
강 의원은 “도둑맞은 것은 강 의원 지갑에 있던 10만원권 수표 5장과 현금 10만원, 강 의원 부인의 지갑에 있던 현금 43만원, 처제의 지갑에 있던 500만원권 수표 1장과 100만원권 수표 3장, 현금 30만원, 1000만원 상당의 손목시계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경찰이 작성한 도난 물품리스트에는 분명 다이아 반지와 명품시계 등이 포함돼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할 지구대 경찰이 작성한 피해 품목은 ▲수표 1600만원 ▲현금 145만원 ▲반지 1캐럿 ▲여성 시계 1점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 현금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 의원 처제의 소유인 것으로 돼 있다. 강 의원은 직접 이 조서에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강 의원 측은 “공직자 재산등록에 포함되지 않는 처제 소유의 명품시계와 다이아반지 등이 도난당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처제가 끼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렇게 되면 명품시계와 다이아 반지의 행방은 주인과 도둑만 아는 셈이다.
도난사건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절도범에 대한 추측도 쏟아지고 있다. 일부에선 도둑이 강 의원의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수군거림도 들리고 있다. 강 의원의 주장과 달리 처제의 다이아 반지와 명품시계 등이 없어진 게 맞다면 그것의 존재여부를 잘 아는 이가 훔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또 강 의원 집의 보안망을 뚫은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강 의원의 집은 육중한 철문과 높은 담장이 말해 주듯 보안시설이 잘 갖춰진 편에 속한다. 때문에 도둑이 이 집을 털기 위해선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저택의 내부 구조와 보안망을 잘 아는 이가 아니면 침입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래서 주변인들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는 범인이 누군지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또 강 의원은 경찰에 도난 사건 신고를 철회하고 수사요청도 취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선 ‘피해액수가 드러나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강 의원 측은 절도사건을 부인한 것에 대해 “마포경찰서 관계자가 언론에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해 사실을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절도사실을 부인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 측은 “기자들이 도난 사실을 알고 취재를 하면 ‘도둑이 들어오다가 개 짓는 소리에 놀라서 도망갔다고 이야기 하라'고 (경찰에)부탁받은 대로 기자에게 말했다”며 “따라서 신고를 취소하거나 수사요구를 철회했다는 경찰 측 주장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강 의원의 이런 주장에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경찰 측은 강 의원 측이 신고를 철회하면서 대신 순찰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의 이런 요청 때문에 경찰은 강 의원 집에 순찰함을 만들어 지금까지 순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황당할 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 의원은 마치 우리(경찰)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초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했다면 왜 피해액을 사실 그대로 공개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건을 축소하려는 쪽은 강 의원 측이다. 우리는 도난 사실과 피해액을 모두 공개했는데, 강 의원은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을 뿐 아니라 도난 사실 자체도 숨기려 했다. 그래놓고 경찰 핑계를 대고 있다. 고위공직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본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슬롯머신업계의 대부로 알려졌던 정덕진씨의 매형인 강 의원은 1996년부터 버스노조인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위원장에 5번 당선된 노동운동계의 대부다. 그는 지난 7월 재산등록에서 총재산 10억8000여 만원을 신고했다. 강 의원은 집을 약 9억4000만원에 신고했다.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강 의원의 집은 검은색 대문 뒤로 정원이 펼쳐있는 지하 1층ㆍ지상 2층 규모의 빨간 벽돌집이다. 대지 120평, 건평 100평 규모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