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사망 열쇠 쥔 A씨 “현대에 접촉시도 했다”

2006년 1월 월간조선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다. 월간조선은 이 달 18일 발매된 2월호를 통해 정 전 회장이 사망 전날 검찰관계자를 만났으며 그와 유서관련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당시 정 전 회장이 만난 검찰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 “정 전 회장이 투신자살한 게 아니라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정 전 회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파장이 커지자 검찰과 경찰은 즉각 이를 반박했다. 수사결과 정 전 회장은 자살한 게 분명하며 타살이라고 볼 수 있는 정황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이런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했다. 정 전 회장이 자살한 이유가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의 자살 이유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또 숱한 의문과 추측을 남긴 사라진 유서 1장도 아직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 전 회장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증언이 나와 귀를 솔깃하게 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은 타살이 분명하다. 내가 알기로 두 명 정도가 작업한 것으로 안다. 중요한 건 정 회장이 왜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정 회장의 죽음엔 대북사업의 이권을 노린 K씨가 깊게 연관돼 있다.”
B씨는 자신의 신원 일체를 밝히지 말라고 주문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가 전한 내용을 들어보면 월간조선이 정 전 회장의 타살의혹을 보도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정 전 회장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서 자의로 쓴 것 아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인 B씨는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검찰관계자와 각별한 사이다. 때문에 B씨의 증언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월간조선은 정 전 회장이 사망 전날인 2003년 8월 3일 오후 2시쯤 하얏트 호텔 커피숍에서 검찰 관계자를 만나 유서를 미리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이 검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사망 직후 공개된 유서는 4장이지만 그날 내가 본 유서는 확실히 5장이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정 회장이 유서를 보여줘 직접 읽어봤다”며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한 장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실세를 원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한 장의 유서가 바로 사라진 그 유서다. 당시 공개된 4장의 유서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3장과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에게 보내는 한 장 등 이었다.
또 이 검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이 보여준 유서는 워드로 작성된 문서와 함께 있었다”며 “누군가가 미리 작성해 준 워드문서 내용을 보고 정 회장이 그대로 유서를 썼다는 느낌이었다”고 월간조선에 말했다.
이에 대해 B씨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B씨는 “정 전 회장은 자의로 유서를 쓴 것이 아니다. 측근의 권유에 의해 누군가가 만들어 준 초안을 베껴 쓴 것일 뿐이다”라며 “정 전 회장은 이렇게 쓴 유서 내용을 검찰 관계자에게 보여주면서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B씨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전했다. 그 자리에서 언급된 인물에 대해서다.
B씨는 “정 전 회장이 그날 검찰 관계자와 만난 일에 대해 시중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게 있다”며 “그 자리에서 현대의 가신 K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파악하기론 정 전 회장의 유서 초안은 바로 K씨가 만들어 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K씨는 유서를 쓰고 자살소동을 벌이면 검찰수사에서 동정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정 전 회장은 이런 내용을 검찰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하며 구속을 면하는데 효과가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또 B씨는 “K씨는 정 전 회장에게 집요하게 유서를 쓰라고 종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파악한 사실이지만 정 전 회장 사망 직후 K씨가 정 전 회장의 유서를 직접 챙겼다. 사라진 유서의 행방을 K씨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이 타살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왜 그를 죽인 것일까. B씨는 유서를 쓰도록 종용한 K씨가 정 전 회장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사람들은 정 전 회장의 타살 가능성에 대해선 언급하면서 정작 누가 죽였는지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부분을 가장 과감하게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정 전 회장의 죽음으로 이익 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 아직도 두려움에 떨어
이어 “유서에는 K씨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서를 쓰도록 종요한 당사자다. 그런데 정 전 회장이 죽기 1년 전부터 그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 회장은 K씨를 잘라야 할 사람이라고 말해왔다”며 “그런 사람을 정 전 회장이 유서에 언급한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한 일이다”라고 B씨는 말했다.
또 B씨는 “이것은 내 추측이지만 K씨는 유서를 쓰라고 종용하면서 이미 정 전 회장의 죽음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정 전 회장이 죽고 나면 유서를 등에 업고 어떤 일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B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 전 회장은 실로 무시무시한 음모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점이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의 죽음이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B씨의 말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B씨는 “내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현정은 회장도 남편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지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라며 “현정은 회장은 정 전 회장이 사망한 직후 자살일 리가 없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B씨는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정은 회장은 당시 권력의 실세를 상당히 두려워했다. 아마도 어딘가로 부터 협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용의 정보가 입수된 적도 있지만 본인에게 직접 확인해 보진 않았다”고 전했다.
B씨의 이 말이 허무맹랑하다고만 볼 순 없다. 실제로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침묵한 이유에 대해 “나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당시엔 (내가 본 것을)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만큼 무서운 권력의 힘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전 회장 죽음 열쇠 쥔 A씨
이와 함께 B씨는 더욱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놨다. 정 전 회장의 죽음에 관여한 직접적인 당사자, 그러니까 정 전 회장을 살해한 이들 중 한명이 현정은 회장 측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믿기 힘든 이 이야기에 대해 B씨는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B씨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은 2명 정도다. 이들은 권력에 고용된 제 3의 용병으로 말하자면 살인전문가들이다. 일부에선 5명이 작업 했다는 소리도 떠돈다. 하지만 B씨는 이에 대해 “그렇게 허술하게 했을 리 만무하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극비를 요하는 큰 일일 수록 비밀을 아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는 게 작업의 기본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5명이나 고용해 일을 시키면 그만큼 비밀이 새 나갈 우려가 큰 것은 당연하다.
B씨는 “정 전 회장의 자살공작을 담당한 사람 중 한명인 A씨가 미국에서 현대에 접촉을 시도해 왔다”며 “이 소식을 접한 현정은 회장은 평소 신뢰하던 J씨를 미국으로 보내 A씨와 접촉케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A씨와 접촉하는 데 실패했다. 이 사실을 알아챈 방해꾼이 중간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방해꾼은 다름 아닌 K씨라는 게 B씨의 증언이다.
B씨는 “당시 국내 사정은 K씨가 현대를 떠나 새로운 일을 도모하려 할 때였다”며 “내가 파악하기로 J씨가 미국에서 A씨를 만나려 할 당시 K씨는 중국에 있었는데, A씨가 현대가와 접촉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곧바로 중국서 미국으로 날아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K씨는 이때 미국 LA로 날아가 A씨의 입을 막고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B씨는 설명했다.
B씨는 “이후 A씨는 종적을 감췄다. 현재 미국 모 지역에서 머물고 있다는 정보가 있지만 그가 쉽사리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며 “K씨는 미국에서 일을 처리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 곧바로 권력의 실세를 만났다. 그리고 모종의 거래를 했다. 그것은 대북사업에 관련된 것으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K씨가 정 전 회장의 타살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이를 통해 대북사업이라는 선물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다만 K씨가 애초 이를 노린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흘러간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한편 A씨와의 접촉하려 했던 게 사실인지, 또 사실이라면 만남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J씨에게 전화연결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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