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2개 전과 30범 감쪽같은 ‘짝퉁인생’

이중호적을 이용해 47년 간 소매치기를 일삼은 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30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조모(64.여)씨는 최근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의 가방에서 엔화 등을 훔치다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조씨를 조사하던 경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신원이 불분명했기 때문. 이를 이상히 여긴 경찰은 조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유인 즉 조씨는 두 개의 호적을 가지고 있었다.
또 조씨는 경찰에 적발될 때마다 두 개의 호적을 번갈아 사용하며 형량을 낮추는 ‘연륜’을 과시해 수사관계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남대문 일대에서 오래전부터 소매치기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다.
그가 소매치기를 시작한 것은 17살 때의 일. 이유는 생활고 때문이었다.
조씨의 주 무대는 남대문 일대였다. 소매치기를 배우고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하게 되자 그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전문적으로 노렸다. 한 번의 수고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까닭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는 일대에서 상당히 실력이 좋다고 소문나 있었다. 여자인데다 나이가 많아 사람들이 소매치기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기 때문에 더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중호적 인생유전
감옥을 수시로 드나든 조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그가 감옥에서 지낸 시간은 30년에 이른다.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조씨는 감옥에서도 ‘직업의식’을 잃지 않았다. 수감자들 중에서도 소매치기 기술이 있는 이들과 어울리며 함께 출소 이후의 범행을 계획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순조롭지 못했다. 유명인사 아닌 유명인사다보니 경찰의 감시가 줄곧 그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활동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조씨는 감옥 동기 등으로 구성된 소매치기 일당들과 함께 일본으로 원정을 떠났다. 일본에서 거의 10여년 간 머물며 소매치기 행각을 일삼던 조씨는 90년 경 일본 경찰에 체포돼 추방당하기도 했다.
50년 동안 소매치기를 한 결과 절도전과 30범이 된 조씨. 그런 조씨를 조사하던 경찰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조씨와는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나이와 범죄수법이 똑같을 뿐 아니라 얼굴까지 똑같은 또 다른 인물이 있었던 것.
또 수시로 조씨를 검거해 조사해온 경찰은 조씨가 지금까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어떤 때는 조○○으로 또 다른 때는 김○○으로 이름을 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같은 인물이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따랐다. 조씨와 김씨는 생일도 다르고 주민번호도 완전히 달랐다. 이를 이상히 여긴 경찰은 조씨를 추궁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조씨는 두 개의 호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연은 이랬다. 어릴 적 고아로 자란 조씨는 조○○이란 이름으로 살았으나 어머니를 찾은 뒤부턴 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살았다. 호적도 김○○으로 고쳤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호적을 고치는 과정에서 호적 관리 담당자의 실수로 조○○의 호적을 말소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씨는 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뒀다. 이후 자신이 경찰에 검거됐을 때 이를 번갈아 사용했다. 경찰은 조씨가 형을 적게 살 목적으로 두 개의 신분에 전과를 분배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봉남이파와 연결됐을 수도
실제로 조씨는 집행유예 기간 중 새로운 절도범죄를 저질러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김○○라는 본명을 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의 전과기록을 살펴보면 조○○라는 이름으로 24범, 김△△라는 본명으로 6범이 기록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남자들 중에 호적이 잘못돼 군대 영장이 두 번 나온 적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조씨는 행정기관의 실수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처럼 이중호적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해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만 적당한 법적 처벌기준이 없어 난감해 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지난 7월 검거된 봉남이파 일당 가운데 조씨와 연결된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그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된 조씨가 최근 범행 사실과 공범 관계 등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봐서는 공범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봉남이파의 잔당들과 같이 활동했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다”라고 말했다.
#짜릿한 손맛 못 잊은 ‘할머니 소매치기단’
지난 7월 24일 작년 6월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 백화점과 재래시장을 무대로 쇼핑객들의 지갑을 훔쳐온 ‘봉남이파’의 장모(71·여)씨 등 5개 조직 소속 전문 절도범 10여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봉남이파는’ 조직원의 평균전과만 16범에 달하는 베테랑 조직이다. 특히 이 조직의 우두머리 장씨는 수십억원대 재산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막강한 재력을 앞세워 귀부인 행세를 해온 장씨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황금 손’으로도 유명하다.
‘봉남이파’ 조직원은 리더 장씨를 포함해 모두 4명. 그 중 전과 24범의 장씨와 20범 임모(68·여)씨는 1970년대부터 면도칼을 휘둘러온 몇 안 되는 고수로 알려졌다. 이들의 솜씨만큼은 수도권 내에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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