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사기 여왕’ 가짜 다이아로 재기?
왕년의 ‘사기 여왕’ 가짜 다이아로 재기?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10-29 10:48
  • 승인 2008.10.29 10:48
  • 호수 757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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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 648억 빼돌린 간 큰 여인 ‘기막힌 부활’
IMF 한파로 국내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던 1997년 은행 직원과 짜고 은행돈 648억을 빼돌려 사채놀이를 한 ‘사기계의 여왕’이 10년 만에 또 다른 사기 범죄에 연루됐다. 이번엔 친동생과 공모해 가짜 다이아몬드로 피해자들을 속여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다.

10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로 수백억대 사채를 굴려 ‘큰손’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이모(46)여인.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 여인은 최근까지도 서울 강남 R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며 돈놀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빼돌린 은행 자금을 몰수당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였던 이 여인이 과연 무슨 돈으로 하루 수백만원짜리 호텔방을 전세 낼 수 있었을까. 또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다이아몬드’라는 말에 속은 투자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왕년의 ‘사기여왕’ 이 여인의 기막힌 부활 스토리를 집중 추적했다.

이 여인과 관련된 사기행각에 대해 공식적인 사건 접수가 이뤄진 것은 지난 10월 10일. 피해자들이 서울지방검찰청에 이 여인과 그의 남동생 이모(41)씨, 이씨의 동업자 김모(30)씨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하면서부터다.

가짜 다이아몬드와 관련된 사기사건의 주범은 이 여인의 남동생이다. 이 여인은 자신의 지인을 일당에게 소개해 피해를 입히고 남동생과 일당을 도피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접수된 고소장을 통해 드러난 사건 개요는 이렇다. 보석상인 이 여인의 남동생은 동업자 김씨와 공모해 평소 친분이 있던 A씨를 비롯한 피해자 여러 명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다이아몬드에 투자해 시세 차익을 챙기라는 구실이었다.


‘가짜 다이아’ 주범은 남동생

최근 경기불황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은 가라앉은 반면, 금괴와 보석 등 현물 시장이 각광받고 있는 추세를 이용한 것이다. 이씨 등은 미리 준비한 가짜 다이아몬드와 위조한 감정서를 보여주며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이씨 일당은 A씨 등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 이상을 받는 대신 담보조로 비닐 봉투에 밀봉한 가짜 다이아몬드를 감정서와 함께 건넸다. 절대 봉투의 봉인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시가 10억원이 넘는 물건이니 찾아가기 전까지 잘 보관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를 담보로 투자를 한 지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이씨 등은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배당금을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다. 보석시세가 상한가를 친다는 뉴스가 이어졌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한 것이다.

A씨 등은 투자금을 빼겠다며 이씨를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물론 담보로 받은 다이아몬드도 투자원금과 맞바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씨 등은 “지금 돈을 빼면 오히려 손해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투자자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이씨와 동업자 김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이때 나선 것이 ‘왕년의 사기여왕’ 이 여인이다.

이 여인은 친동생이 쇠고랑을 찰 위기에 놓이자 직접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는 “동생이 돈을 해외 보석 시장에 모두 투자한 상태라 당장 끌어올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하다. 내가 ‘믿을만한 곳’에서 돈을 융통해 갚겠다”며 시간을 끈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여인이 내세운 ‘믿을만한 곳’은 바로 검찰청이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검찰청 고위층의 부인으로부터 수억원을 빌리기로 약속했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투자자들은 강남 사채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던 이 여인의 재력과 고위층을 들먹이는 그의 인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여인과 그의 남동생이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당시 이 여인은 서울 강남 역삼동에 있는 R호텔 스위트룸을 전세 내 사채놀이를 하고 있었다. 호텔측에 따르면 이 여인이 머물던 방은 또 다른 이모씨의 명의로 장기 임대된 상태였다.

이 여인은 투자자들에게 고급 호텔 객실을 자신에게 넘긴 사람이 경찰청 고위층이라고 주장했다. 검찰과 경찰을 막론하고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 중 과시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 여인이 갖가지 거짓말로 시간을 번 뒤 동생 이씨와 동업자 김씨 등을 해외로 도피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에 따르면 김씨만 지난 10월 5일 중국으로 출국했을 뿐 이씨는 국내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인 남매는 이와 관련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재 외부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검찰 고위층 부인과 친한데…”

검찰은 최근 이 여인을 비롯한 일당과 관련된 혐의를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과거 고액의 사기사건 주범으로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한 이 여인이 고급 스위트룸을 숙소로 얻은 배경과 자금 출처를 추적할 계획이다.

한편 이 여인은 지난 1997년 7월 J은행 대리 박모(44)씨와 짜고 마치 현금이 입금된 것처럼 은행 계좌 정보를 조작해 무려 648억원을 빼돌려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채업자인 이 여인은 1995년부터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여파로 돈줄이 막히자 ‘희대의 사기극’을 꾸몄다. 이 여인은 거래은행 직원이었던 박씨에게 거액의 사례비를 주고 입금표를 위조해 전산 단말기를 조작하는 대담한 수법을 구사했다.

10년 만에 새로운 사건에 연루된 이 여인. 제 버릇 남 못주고 ‘희대의 사기꾼’으로 낙인찍힐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누명을 쓴 것일까. 이 여인과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검찰 수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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