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짜리 수의, 80억짜리 봉안묘 주인은 누구?

거듭된 불황에도 불구하고 유독 장례 산업만큼은 불경기를 타지 않는다. 최근 2~3년 사이 ‘웰다잉’(Well-dying. ‘웰빙’의 확장개념. 품격 있는 죽음을 말함) 열풍이 분대다 팍팍한 현실에 조상 덕이라도 보려는 심리가 강해져 적지 않은 돈이 장례 산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 상조업체에서는 “부모의 죽음 앞에 돈을 아끼는 건 불효”라며 고급상품 가입을 독려하기도 한다.
업계와 정부기관에 따르면 국내 장례 산업은 3조~3조5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며 계속 성장세에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 5월 윤달을 앞두고 벌써부터 수의(壽衣)를 준비하거나 조상의 묘를 옮기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업체마다 이어지고 있다.
업체별로 특성화, 고급화 전략이 두드러져 죽음에도 ‘명품시대’가 도래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근래에는 ‘특 상류층’을 겨냥한 1억원짜리 수의와 80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납골묘까지 등장했다. 최고만을 위한, ‘대한민국 1%’의 특급 장례 문화를 집중 해부했다.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보급되면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서비스는 다름 아닌 상조(相助)서비스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고객 불입금을 기준으로 상조서비스 시장규모가 연간 7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1조원을 넘어 3조원대에 이른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상조서비스도 ‘명품’ 있다
상품 가격은 업체 지명도나 서비스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싼 것은 100만원대부터 VIP를 위한 1000만원대 상품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200~400만원대 상품이 주를 이루지만 최근 들어 값비싼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문의와 가입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 상조업체 관계자는 “병원 장례식장보다 상대적으로 투명한 가격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누리려는 중·상류층의 가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 가격 차이는 관과 수의의 재질, 의전용품을 대여하는 개수, 장의차 대여 금액 등에서 생긴다.
보람상조의 경우 국내 최초로 링컨컨티넨털 특급 신형 리무진을 고인 전용 장의차로 사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 왕실 전통 장례에서 볼 수 있다는 ‘궁중렴’을 프리미엄 서비스에 포함시켰다. 보람상조 관계자는 “궁중렴이란 과거 왕이나 왕족들의 시신을 염하는 전통 방식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일반 염습과 달리 2시간 이상을 들여 고인을 보다 품격 있게 모신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보람상조 프리미엄서비스 가운데 가장 비싼 780만원짜리 VIP코스에는 특상등급 수의를 비롯해 일반적으로 쓰는 오동나무관보다 비싼 향나무관(1치5푼)이 제공된다. 링컨컨티넨털 리무진과 장의버스 등도 추가비용 없이 무료로 대여해준다.
이밖에 효원라이프상조, 국민상조, 아산상조 등도 특급 회원들을 위한 고급 서비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고인이 운명한 지 만 하루가 지나면 시신을 깨끗이 닦고 수의를 입히는 염습(殮襲)을 한다. 이때 사용되는 수의 가격 역시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인 장례식장에서 제공되는 수의는 30~70만원의 중국산 대마가 많고 고가품으로는 300~500만원대의 국산 안동포가 유명하다. 보성포, 순창포 등이 그 뒤를 잇는 고급품이다.
물론 일부 ‘특 상류층’ 사이에서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명품 수의가 대세다. 지난 2006년 4000만원에 달하는 명품 ‘황금수의’가 등장해 관심을 모았지만 이것은 약과다. 제대로 된 장인이 재봉틀을 쓰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만 제작한 희귀 품목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 벌에 1억짜리 수의도 거래된 적이 있다”며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명문가에서 수의가격으로 5000만원 이상을 쓰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명품 황금수의를 가장 처음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안동삼베닷컴에 따르면 이 같은 고가 수의를 구입하는 고객들은 계좌에 20억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거나 적어도 수백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상류층들이다.
‘토종’ 수의, 부르는 게 값
이 가운데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지도층 가문과 정·재계 인사도 다수 포함돼있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가 최고급 제품을 구입해갔는지는 입을 다물었다.
수의는 대부분 삼베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국내에는 원사 자체가 귀해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순수 국산의 ‘수제명품수의’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산’으로 표시돼 판매되는 수의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원사를 수입해 국내 공장에서 가공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대마로 삼베를 만들어 이를 모두 수의로 만든다 해도 5000벌 분량밖에 안 된다. 원사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토종’ 수의는 1년에 1000벌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염습이 끝난 시신을 모시는 관 역시 등급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동나무 재질로 15~30만원 정도다. 고급품은 향나무 재질로 가격이 200~400만원에 달해 훨씬 비싸다. 일부 상류층에서는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금으로 장식된 철제 관을 사용한 일도 있었지만 이는 상당히 드문 경우다.
2006년 전국 화장률이 56.5%를 기록, 처음으로 매장률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2000년대 접어들어 화장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납골묘(봉안묘)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접어든 탓에 고급화·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업체들도 상당수다. 그 중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납골묘 ‘사모보궁(似母寶宮)’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1%’를 위한 초일류 봉안묘를 표방하고 있다.
이곳에 납골묘(1기 당 60명 안치가능)를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은 최하 1억원. 일반 업체의 VIP실 분양금이 1000~2000만원 사이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라는 뜻의 사모보궁은 여러 명의 풍수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명당 위에 일체의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한 봉안묘다.
우아한 조경과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살려 마치 유럽의 가족 정원을 연상하게 할 만큼 유려하다.
풍수 전문가 박기남 삼청 풍수지리 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에 명당으로 손꼽히는 5대 ‘보궁’이 있는데 이곳에는 부처님의 사리만 모실 수 있을 뿐 일반인은 묻힐 수 없다”며 “사모보궁은 조계종에서 인정한 여섯 번째 보궁으로 국내에 보기 드문 명당”이라고 말했다.
사모보궁은 2000여 평 부지에 모두 14기의 봉안묘를 수용할 수 있지만 워낙 고가인 탓에 아직까진 1/5정도만 분양이 끝난 상태다. 7평짜리 기본묘 가격이 1억원인 이곳에서 가장 고가로 손꼽히는 곳은 320평에 달하는 ‘VVIP 전용’ 묘역이다. 분양가격은 무려 80억원. 엄청난 고가인 탓에 아직까지 그 주인은 결정되지 않았다.
7평에 1억, 최고급 납골묘
분양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게 아니냐는 기자에 질문에 고영재 대표위원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안장된 고인의 흉상과 최고급 석조장식물 등 가족묘 조성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풀옵션으로 제공할 뿐 아니라 최소 60명 이상의 대단위 가족묘를 구성할 수 있어 흔한 납골묘가 아니다”고 말했다. 사모보궁을 단순한 납골묘가 아닌 기존의 ‘선산’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고 위원은 “며칠 전에도 이곳에 조상묘를 이장하겠다며 재벌그룹 관계자들이 다녀갔다”면서 “사모보궁 안에서도 최고의 명당이라 이곳을 차지하려는 집안들의 기 싸움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곳에 묻히기는 쉽지 않다. 고 위원은 “이곳 고객은 재계순위 300위 이내의 재벌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으로 한정돼 있다”며 “벼락부자와 같은 졸부들은 손님으로 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을 수 없는 욕심 ‘호화판 가족묘’
남의 유골 갈아엎고 봉분까지 무너트려
내 어머니의 산소가 하루아침에 봉분은커녕 유골마저 간데없다?
지난 식목일, 서울에 사는 A씨(여·72)는 친정어머니 산소에 벌초를 보낸 아들의 전화를 받고 쓰러지고 말았다. 아들이 “할머니 무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봉분, 비석 아무것도 없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울먹인 것.
한걸음에 달려간 A씨는 산소가 있던 자리에 울창하게 핀 철쭉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A씨 어머니의 산소가 있던 곳에서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자리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호화판 묘지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다. 더구나 어머니의 비석은 산기슭에서 부서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최근 사건의 진범인 B씨(61)를 붙잡았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일 자신의 가족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의 무덤을 갈아엎고 유해와 비석 등을 훼손한 혐의로 B씨를 구속했다. B씨는 경기도가 시책 사업으로 추진 중인 ‘1억 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이용, 후배인 가평군 모 계장을 시켜 묘지주변에 철쭉 400그루를 심게 했다.
자신의 가족묘 이외에 다른 무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를 쓴것이다.
B씨는 뒤늦게 A씨 어머니의 산소를 복구해 줬지만 이마저도 엉망이었다. 고인의 유해조차 수습하지 않은 ‘껍데기’였을 뿐 아니라 비석에 새긴 사망일자도 틀리게 적은 것.
피해자 A씨는 “어딘가에 우리 어머니 넋이 헤매고 있다는 생각에 밤잠조차 이룰 수 없다”며 서러운 눈물을 쏟았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