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치이야기-19] 청와대에 나타난 최태민의 재림?
[알쏭달쏭 정치이야기-19] 청와대에 나타난 최태민의 재림?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4-12-10 10:41
  • 승인 2014.12.10 10:41
  • 호수 1075
  • 4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 대통령 퍼스트레이디 시절 국정농단
- ‘정윤회 게이트’ 명명백백 밝혀내야

최태민(崔太敏), 1912년 5월 5일생. 선녀가 지었다는 최도원(崔道源)이라는 아명을 비롯하여 그가 사용한 이름만 5-6가지로 알려져 있고, 황해도에서 태어나 일제 시대 순사를 한 인물이다. 해방 후에는 월남하여 일제 시대 순사의 경력을 살려 강원도, 대전, 인천 등지에서 경찰로 승승장구하였으며, 한국전쟁 즈음해서는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활약하였다. 그 후 다양한 사업을 벌였는데, 가끔은 성공도 하였으나 사기로 쫓겨 다닌 기간이 더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간에 결혼한 여자만도 6명에 이르고, 특히 그의 종교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는데, 때로는 스님행세도 하였고, 때로는 사이비 기독교의 교주로도 행세하였으며, 천주교 성당에서는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를 최태민 목사라고 부른다.

1963년 5.16 쿠데타 후에는 공화당의 중앙위원이 되기도 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종교인 행세를 하면서 사기를 밥 먹듯이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그가 최종적으로 마수를 뻗친 것은 당시 대통령의 영애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박근혜 현 대통령이다. 1974년 8월 15일 재일 교포인 문세광의 저격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접근을 시도한 최태민은 1975년 3월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고 하였다”는 요지의 서신을 몇 번이나 발송한 끝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접촉에 성공하여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고, 그 단체의 총재의 자리에 앉게 된다. 대한구국선교단은 후에 이름을 대한구국봉사단으로 바꾸고 1977년까지 총재의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바로 최태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최태민 총재라고 부른다.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에 그녀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국정을 농단하며 재계로부터 수많은 헌금을 강요하고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증언 등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그러한 이야기가 지금은 마치 삼류소설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당시가 유신시대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수긍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저격으로 암살당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었을 당시, 그녀를 지근거리에서 많이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다는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는 수많은 억측이 있는 관계로 여기에서는 이정도로 이야기를 접도록 하겠다.

그런데 정윤회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최태민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현역대통령으로 정윤회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국민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청와대를 무대로 진행된 3류 활극을 보면서 우리 국민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공연한 배우들이 진정성 있게 연기한 것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의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세균 비대위원은 이 상황을 구중궁궐에 악취가 진동한다고 표현했는데, 그만큼 정윤회를 둘러싼 청와대 내의 암투는 민주화 시대의 시대상황과는 맞지 않는 참극이었다. 유신시대의 재래이고, 최태민의 재림이 지난 일주일 사이에 청와대를 무대로 나타난 것이다.

정윤회, 굳이 이 사람의 신원을 여기에서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최태민의 사위이고, 지금은 이혼을 했다고 하니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다만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는 최태민의 다섯 번째 딸 최순실과 막 결혼한 상태로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워질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는 최태민의 사위라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정윤회도 최태민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럼 점에서 최태민과 공통점이 많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아무튼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비서실장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며, 그 기간은 약 10년 정도에 이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던 중 2007년 대선 경선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와 경쟁과정 중에 최태민 이야기가 붉어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곁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런데 지난 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하여 언론에 공개된 문서에는 그가 여전히 국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청와대 내의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경천동지할 내용이 들어 있었다. 청와대는 한 마디로 증권가 찌라시를 모아 놓은 수준이라며 무시하려고 했지만, 야권과 언론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을 국기문란사건으로 규정하며 철저한 조사를 검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중대범죄로 규정하여 특수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일사천리로 정윤회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들이 만났다는 음식점을 압수수색하는 등 사건의 진상규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와대,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이 유출된 것이기 때문에 검찰로서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 사건이며, 수사 결과에 따라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도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이 많은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검찰이 진실을 은폐하거나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시도할 경우, 그에 대한 역풍은 박근혜 정권 자체의 안위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세간에서는 이번 정윤회 게이트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도 한다. 누구나가 이런 사태가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공인으로서의 신변에 대한 관리를 게을리 하였으며,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정윤회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고, 어떤 면에서 업보이다.

정윤회 게이트로 나타난 몇 가지 문제점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첫째, 문서내용의 진위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정윤회라는 사인이 국정에 개입했는가의 진위여부는 우리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둘째, 문서의 유출경위를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정부의 능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 과거 정권의 예를 보더라도 정권의 핵심에서부터 레임덕은 시작되었다. 이번 사건이 집권 2년도 안 된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의 단초를 제공할 것인지는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의지에 달려 있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의 바지춤을 붙잡고 박근혜 대통령을 망신주고,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지 우리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김영필 시민의 힘 대표]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