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19
독점연재 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19
  • 김기삼 on
  • 입력 2008-10-13 14:40
  • 승인 2008.10.13 14:40
  • 호수 754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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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야당시절 안기부 감시당한 후 안기부장 주례보고서 거의 안 봐
돌이켜보면 나는 대공정책실 보좌원으로 1년간 근무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고 보고 들었다. 국가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국가라는 조직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다.

권력의 턱 밑에서 일하다 보니 권력이 지어 보이는 음흉한 미소와 권력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를 보고 들었다. 신문에 보도된 많은 사건들의 뒷면에 신문에 보도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의 관계가 깨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듯이 지켜보았다. 전국 각지에서 사고가 터져 나오고 농안법 파동이 일어나고 성수대교가 붕괴될 때 정부 부처가 허둥지둥 대처하던 과정도 가까이서 관찰하였다.

추락한 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연예계 사정이라는 칼을 빼 들었을 때 연예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질리도록 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국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들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 곳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내가 본 우리 사회는 수술하려고 집도하였다가, 상태가 너무 심하여 다시 봉합해야 하는 그런 실정이었다. 비록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내가 본 문민정권의 뒤안길과 우리 사회의 뒷모습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YS-JP 애증관계 밀착보고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에 정보기관에 대한 불신이 심한 편이었다. 그는 과거 야당 시절에 중정과 안기부로부터 감시당하고 구박 받았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듯 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정보기관을 신뢰하고 감싸 주어야 했는데 그는 그러질 못했다.

문민정권 초기, 김덕 부장이 매주 목요일 오전에 주례보고를 갔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김 대통령은 진지하게 보고를 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가 보고서 읽는 걸 싫어한다”는 말도 들렸다. 어떤 때에는 김 부장이 보고서를 그냥 책상에 놓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챙겨보지 않는 보고서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청와대 각 수석실에서는 보고서 제목만 보고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대충 이런 과정을 거쳐 보안사고가 터졌다. 내 생각으로는 이런 측면에서 김영삼 정권의 청와대와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는 많이 닮은 듯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향이 많이 비슷한 것으로 판단한다.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챙기지 않다 보니 정보가 왜곡되어 유통되는 폐단이 생겼다. 다시 말하면 안기부의 정보 보고서가 ‘엉뚱한 곳으로 샜다’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김현철이라는 사인에게 흘러들어 갔고, 이원종 정무수석에게 집중되어 갔다.

문민정권 내내 안기부 국내 부서 분석관들 사이에서는 “안기부가 대통령 직속 기관이 아니라 청와대 정무수석의 직속 기관이다."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돌았다.

내가 오 실장의 부속실에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이원종 정무수석에게 보내는 주간 정치권 동향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 보좌관이 매주 월요일 아침 이 보고서를 들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보안규정 어긴 대공정책실

이는 물론 내부 보안규정을 위반한 일이었다. 첩보 수집부서인 대공정책실에서는 정보 보고서를 만들 권한이 없었다.

국내 문제에 대한 모든 정보 보고서는 기획판단국의 소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칙대로라면 감찰실에서 보안 조사를 했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감찰실에서는 알면서도 묵인해 주었다.

당시에는 매일 오후 2시가 첩보보고서 마감시간이었다. 요즘이야 수집관이 컴퓨터로 첩보를 작성하여 전산으로 분석데스크로 송고 하겠지만 내가 대정실에 근무하던 시절 만해도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첩보 보고서도 손으로 작성했다. 매일 각 과의 행정관들이 첩보를 수거하여 행정과에 가져 오면, 행정과 기획팀에서 커다란 가방에 담아 기획판단국으로 배달했다.

부속실에서는 “매일 첩보가 기판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속실에 들르라"고 지시했다. 나는 그 날 수집된 첩보 중에서 가장 ‘쓸 만하고 똘똘한’ 것들을 골라내었다. 주로 정치인들의 동향과 가십성 첩보만 가려내었다.

이렇게 하루에 몇 건만 추려내어도 일주일이면 수십 건의 첩보가 쌓였다. 골라낸 첩보를 토요일 오후에 요약하여 보고서 형태로 정리했다.

보통 한 페이지에 두 건씩 해서 20 내지 30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었다.

원래 이 작업은 오 실장이 이 보좌관에게 시킨 일이었는데 그는 보고서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그랬는지 그 일을 자꾸 내게 미루었다. 그래서 정보분석 경험도 전혀 없었던 내가 이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 많아 졌다. 정보기관에 갓 입사한 말단 직원이 이렇게 민감한 정보를 취급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무후무한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 실장이라는 막강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대정실을 떠난 후에는 “이 일이 정치과 기획반으로 넘어 갔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김기삼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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