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 꿈꾸던 고교생 투신자살’충격
‘연주자 꿈꾸던 고교생 투신자살’충격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9-30 15:30
  • 승인 2008.09.30 15:30
  • 호수 753
  • 3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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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레슨비 2개월 치 밀린 것 뿐 인데, 왜”
열일곱 꽃다운 청춘이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제 손으로 어머니의 온몸을 흉기로 난자한 직후였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뺨치는 절망적인 사건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어머니와 말다툼 끝에 칼을 휘두른 뒤 투신한 사실과 그 배경을 놓고 수많은 의문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들에게 칼부림을 당한 어머니는 병원에 누워 말을 잃었고 경찰은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대체 무엇이 단란했던 모자를 돌이킬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일까. 2008년 9월 23일,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7시 50분 경, 충청북도 청주시 모충동의 한 6층짜리 빌라 앞. ‘쿵’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윤모(고1·17)군의 몸이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이 빌라에 사는 윤군이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한 것.

이를 목격한 동네 주민들에 의해 119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은 윤군만이 아니었다. 구급대원들은 윤군의 집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는 40대 여인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윤군의 어머니 박모(40)씨였다.

피투성이가 된 박씨는 “아들이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는 말을 남긴 뒤 정신을 잃었고 모자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박씨는 목숨을 건졌지만 윤군은 병원 도착 4시간여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박씨는 충격에 그대로 말문이 막혀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가정불화가 참극 불렀나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어머니 박씨가 중상을 입은 만큼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상체와 팔 등을 십여 차례 찔린 박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어머니 윤씨가 계모이거나 심각한 가정불화로 이미 모자관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감정이 폭발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경찰도 이 같은 부분에 대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박씨는 아들과 피아노 학원 레슨비를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였다. 2개월 치 밀린 학원비를 달라는 윤군과 박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분을 참지 못한 윤군이 부엌칼로 어머니를 수차례 찌른 뒤 빌라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윤군의 아버지(42)와 동생(7) 등 유가족들 진술에 따르면 윤군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이들 가족의 생활도 궁핍함과는 거리에 멀었다. 단순히 밀린 학원비를 둘러싼 다툼이 비극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하기에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팀 관계자는 윤군 가족이 재혼가정이 아닐뿐더러 아직까지 눈에 띄는 불화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보강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과정이라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박씨는 윤군의 생모가 맞으며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정황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목적으로 돈 필요했나

윤군 사건과 관련해 불거진 또 다른 의혹은 돈을 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두를 만큼 절박했다면 학원비 이외의 다른 용처가 있지 않았겠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 피해자로 협박을 당하는 등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에 몰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학원 레슨비가 2개월이나 밀려 있었고 이 사실을 박씨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추측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꾸던 윤군이 레슨을 받을 길이 끊기자 순간적으로 모친에게 분풀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윤군이 평소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이 간혹 있었다는 가족들의 증언은 이 같은 가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가 십여 차례나 흉기를 휘둘렀음에도 어머니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데다 곧장 투신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이번 사건이 지극히 우발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머니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들과 학원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갑자기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나온 뒤 나를 찔렀다. 급히 방으로 도망쳤지만 아들이 쫓아왔고 여러 번 더 찌른 뒤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윤군의 아버지와 동생은 현장에 없어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가정을 송두리째 박살 낸 사건의 실체는 드러날 것인가. ‘학원비’와 얽힌 모자의 다툼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희대의 ‘패륜사건’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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