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정치 이끌어 냈지만 상임위는 ‘유명무실’
협상 정치 이끌어 냈지만 상임위는 ‘유명무실’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12-08 12:02
  • 승인 2014.12.08 12:02
  • 호수 1075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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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11] 국회선진화법의 위력, 국회가 달라졌다
▲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지난 2일 국회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5년도 예산안이 12년 만에 법정처리시한 내 통과된 것이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새해 예산안 처리가 정기국회 종료일인 오는 9일까지 최대 일주일가량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개정된 국회법 덕분에 ‘보이콧’ 등과 같은 구태는 사라졌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국회가 원칙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당·정부·야당 일방에게만 유리하지 않아
국회가 원칙대로 하는 모습 보여줬다는 평가도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법 85조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새해 예산안 및 국회의장이 지정한 예산부수법안을 여야가 11월 30일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본회의에 자동부의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여야가 지난달 30일까지 새해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 심사를 완료하지 못하자 국회법 85조에 따라 2015년 '정부 예산안'과 의장이 지정한 총 31개 예산부수법안은 12월 1일 0시를 기해 본회의에 부의됐다.

보이콧 더 이상 없다
여야 원내대표 역할 강화

올해는 세월호 사태로 인해 국회가 사실상 마비상태였다. 그러다보니 내년 예산안에 대한 심사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은 법이었다. 시한 연장이 있을 수 없었던 만큼 여야는 예산안 심사는 물론 통과여부도 결정지어야 했다.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 심사 전‘서민감세·부자증세'를 외쳤던 새정치연합도 막상 의장이 당론으로 반대한 담뱃세 인상안 관련 법안과 최경환표 소득증대 3대 패키지 등을 모두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하자 시한 내에 여당과의 합의 성과를 내기 위해 국회의사 일정 전면 보이콧을 이틀 만에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선진화법이 여야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처리에 한몫했다. 과거에는 세출예산안의 경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가 정부 예산안의 증감액 규모를 결정했으나 11월 30일로 상임위 심사권이 사라지자 여야 지도부에 모든 공이 넘어갔다.

무게 중심 잡아준
국회선진화법

국회선진화법 내에서 예산안 협상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사실 협상 초반만 해도 정부나 여당이 절대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야당이 유리해지는 상황을 맞게 됐다.
국회의장이 지정한 예산부수법안에서 빠진 세법예산 관련 법안에서 여야가 잠정 합의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국회법 제95조 5항 때문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새정치연합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세입예산 관련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 결국 야당의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새정치연합은 세입예산 관련 법안을 '무기'로 새누리당과 협상할 여지를 얻어냈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은 여당이나 야당 한 쪽에만 유리한 법안이 아니었다.

국회 심의권 약화
상임위원 법안 내용도 몰라

문제는 이번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의 문제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이 자동부의 조항에 묶이면서 국회 심의 없이 정부 원안 처리가 가능해진 것을 두고 국회 심의권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많다.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기일이 지나면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정부 원안 심사를 꼼꼼하게 할 수 없고 이는 부실한 심사로 직결된다. 여야가 합의할 경우 '수정안'을 만들어 정부 원안을 대체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상임위 의결을 거치지 않아도 돼 상임위를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안전행정위는 회의도 열지 못한 상태에서 관련 법안이 본회의에 올라갔다. 예산부수법안들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됨에 따라 소관 상임위원이 관련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밖에 예산부수법안 지정을 둘러싼 여야와 국회의장 간 갈등이 문제가 됐다. 예산부수법안은 예산안에 영향을 주는 법안이다. 국회의장이 이를 지정하는 제도는 올해 첫 시행되는 것이어서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는 정부의 담배값 인상을 위한 지방세법 개정안이 예산부수법안이 되는지를 놓고 여야 공방이 치열했다. 12월 2일 예산안 처리에는 여야가 일찌감치 합의했지만 예산부수법안을 놓고 막판까지 줄다리기 협상으로 진통을 겪었다.

본래 취지 흔들지 말고
부족한 점 보완해라

몇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긴 했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가 조금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야가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 국회선진화법의 도움으로 여당의 법안처리 시도를 방어해 온 야당이지만 정작 예산안과 관련해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합의가 중요하다”며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국회 선진화법 개정에 앞장서온 새누리당도 예산안 통과에 있어서는 국회 선진화법의 도움을 톡톡히 봤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선진화법 반대론자였다. 지난 5월에는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 경선에서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전면에 내걸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이번 예산 처리에서 국회선진화법의 덕을 톡톡히 봤다.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이 위력을 발휘한 끝에 내년도 예산안이 12년 만에 처음으로 법정시한 내 처리됐다. 또 국회의장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국회의장이 예산부수법안을 지정할 경우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해당 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모든 법안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또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이익을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 보완해 나간다면 좀 더 완벽한 법안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좀 더 나은 국회를 만들어 나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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