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18
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18
  • 사회부 기자
  • 입력 2008-09-30 15:21
  • 승인 2008.09.30 15:21
  • 호수 753
  • 2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과 깡패사회 정통한 정성홍 검찰의 청와대보고서 사전 입수
정성홍씨는 언제 봐도 사고뭉치에다 시한폭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검찰과 깡패 사회에 가장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오정소 실장의 특명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검찰이 청와대로 보고하는 보고서를 입수해 오기도 했다. 검찰이 청와대에 보고하는 보고서는 검찰이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문건이었다. 가히 ‘검찰의 영혼’이라고 불릴 만한 보고서였다. 검찰의 청와대 보고서를 입수한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이러한 일을 처리했다.

정권이 바뀐 후 그는 한동안 전라도 출신 인사들에게 찍혀 한직으로 돌았다.

그러다 어느새 권력 핵심으로 진입하여 엄익준 차장과 김은성 차장의 특명사업을 수행했다. 진승현 게이트는 그가 이 두 차장 아래서 특명사업을 수행하다 사고가 난 사건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정치권에 줄을 댔던 모양이다. 지난 2001년 구속되면서 그는 조선일보와 전격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그 때 폭탄선언 하듯 자신과 김홍일과의 관계를 밝혔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그는 김홍일의 무릎을 잡고 “형님, 깡패 XX들과 어울리지 마세요"라고 충고했었다고 한다. (정성홍씨와 김홍일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2001.11.21자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참조)


정성홍 “김홍일 형님, 깡패들과 어울리지 마세요”

그 후 정성홍씨는 DJ의 사생아 문제와 정몽헌씨 피살 의혹 등을 언론에 제보했다. 동교동 측의 배신에 배신으로 답했던 것이다.

공운영미림팀장도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다. 지난번 도청 사건으로 그가 무슨 크게 ‘나쁜 짓’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 나는 그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에게 그런 일을 시킨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그는 어쩌면 계명구도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에 관한 한 그는 민완하고 배짱 있는 사람이었다. 책임감도 강하고 의리도 있었고, 열정과 자부심도 대단했다.

미림팀의 도청업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극도의 민감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전문성과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느 날인가 노태우 정권에서 미림팀 요원으로 일했던 선배가 미림팀의 일화를 들려 준 적이 있었다. 이 얘기를 해 준 김모씨는 현재 국정원의 경제수집과장이라고 한다.

TK 인사들에 대한 작업을 마치고 한참 지난 후 장비를 회수하러 작업실(?)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뒤에서 ‘확’ 덮치더라는 것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채였구나"하고 판단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들어서 겨우 상황을 모면했다고 한다.

공팀장도 비슷하게 ‘낭패’ 당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예약한 자리에 도청기를 꽂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김영삼 대통령이 방으로 들어서더라는 것이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출현에 혼비백산하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이 처럼 미림 일은 극비 사업이었다. 심지어 김 덕 부장은 미림팀의 존재를 모르고 퇴임했을 정도였다. 안기부 직원들 중에서도 같은 부서 내 사람들만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 대부분의 직원들은 존재 여부조차도 모르던 사업이었다.

미림이 수집한 정보는 손꼽을 정도의 인원만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야사(夜史)였다. 공팀장은 그런 일을 태연스럽게 해냈다.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

미림팀은 공팀장을 비롯해 3명으로 이루어진 초미니 조직이었다. 공 팀장과 그를 보조하는 젊은 직원이 두 명 있었다. 장모 직원과 박모 직원이었다. 이들은 둘 다 착하고 책임감 있는 요원들이었다. 미림팀 일이 위험한 일이다 보니, 아무도 이 일을 선뜻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 팀장은 요원을 충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 공 팀장은 나에게 박모 직원을 팀원으로 영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에 대해 들려 준 적이 있다. 지난번 미림팀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박모 직원은 가택수색까지 당하고 악의적인 언론 기사에 시달렸다. 나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내가 미림팀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에 그가 욕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순수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이 지면을 빌어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공팀장은 매일 오전 부속실에 들러 밤새 작업한 사업을 보고했다. 그가 작성한 미림보고서는 오 실장이 직접 관리했기 때문에 내가 볼 수는 없었다. 부속실의 모든 보고서는 내가 책임지고 관리했는데 미림보고서 만은 예외였다.


대한민국 최고 야사(夜事) ‘미림보고서’엔 무슨 내용이…

나는 어쩌다 오 실장의 책상을 정리하러 들어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미림보고서를 가끔 볼 수 있었다. 그가 수집해 온 정보는 언제나 나라를 뒤집을 만한 폭발력이 있는 소재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내노라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적나라에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난번 언론에 소개된 대로 박관용 비서실장 같은 사람도 미림보고서 한 장에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미림보고서였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이회창 국무총리나 박상범 경호실장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경질되었다.

나는 미림보고서가 어떻게 쓰이는 지를 지켜보면서 정보기관의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 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사회부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