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당시 박 대통령이 정윤회 씨를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날 정 씨는 역술인 이세민 씨를 만났다고 알려졌다. 정 씨가 박 대통령이 아닌 이 씨를 만났다고 하자 또 언론은 이 씨를 주목하고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정 씨와 이 씨가 각종 국정운영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대통령과 역술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왜 대통령의 지근에는 역술인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 [일요서울]이 취재해 봤다.
전국 누비며 ‘기도’ ‘천기누설’ 등 작업
당선 뒤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 구속되기도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대통령 예언가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 예언가들은 대부분 역술인으로 그들은 대선에서 당선될 후보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하고 대통령에 뽑힐 수 있는지 등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정윤회 씨가 만난 이세민 씨는 예언을 하는 역술인은 아니었다.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이 씨에 대해 한학에 조예가 깊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잘 안다고 평가했다. 이 씨가 예언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경자 원장
1999년 처음 노무현 만나
대통령 당선 예언을 한 역술인으로는 법진 오경자 원장이 있다. 오 씨는 2002년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했다.
오 씨는 “대통령직은 외로운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만큼 운칠기삼(運七氣三)이 잘 들어맞는 것도 없을 겁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려야 합니다. 천운을 타고 났어도 대통령이 못 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천운에 역술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며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몇 년간의 작업이 필요로 합니다. 때로는 보좌관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배우자처럼 후보자에게 컨설팅을 해줍니다”라고 말했다.
오 씨가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것은 1999년 12월 중순경이었다. 어느날 허술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역술원을 방문했다. 오 씨는 첫눈에 남자의 비범함을 알아챘다. 그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고 난 뒤 그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은 오 씨에게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오 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당시 대통령과의 합의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일러 주었다.
오 씨는 당시 노 전 태통령을 회상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머리가 비상하고 자신의 운을 100%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관상은 천운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천운을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운을 가진 자를 위해 역술인으로서 할 것이 참으로 많다”고 밝혔다.
오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이후 대통령 당선을 위해 “현 대통령과 거래를 해라”라는 식의 정치적 조언과 함께 후보를 위해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며 “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천기를 누설했다”고도 말했다.
오 씨는 “한 명의 대통령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운과 노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 탄생에는 역술인의 직간접적인 도움이 존재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과 역술인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와 같다”고 말했다. 성공을 위해 공생하지만 언젠가는 또 적이 될 수도 있고 서로의 존재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 씨도 지난 2008년 12월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친노게이트’ 사건 연루자 12명 중 한 명으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당시 검찰은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을 이전에 직장 상사로 모셨던 J업체 사장 박모 씨가 홍 사장의 부탁을 받고 평소 알고 지내던 오 씨와 함께 로비에 동참했다. 오 씨는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 씨의 동생 정광용 씨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이들은 노건평 씨를 홍 사장에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으며, 홍 사장이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장을 만날 수 있도록 농협 사무실까지 안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 씨는 2005년 3월 홍 사장에게서 로비착수금 5억 원을 받아 오 씨와 1억 원씩을 나눠 가진 뒤 정광용 씨에게 3억 원을 건넸다.
오 씨의 말처럼 역술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기까지 소위 ‘작업’을 해 준다. 그 작업이 바로 ‘기도’와 ‘천기누설’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당시 캠프 인사들이 역술인들과 ‘작업’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바리데기 공주될까
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 관여했던 인사 중 한명인 A 씨는 사석에서 이같은 사실을 경험담으로 전했다. A 씨는 이 프로젝트명을 ‘바리데기’라고 밝혔다. 바리데기는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작자미상의 무속신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한 왕이 있었는데 7공주를 본다는 해에 왕비를 맞아들인 후 계속해서 6공주를 낳았다. 이에 실망한 왕과 왕비는 일곱번 째는 꼭 왕자를 보기 위하여 온갖 치성을 다 드리지만 일곱째 아이도 역시 공주였다. 이에 노한 왕은 일곱번 째 공주를 옥함에 담아 강물에 띄워 버렸다.
하지만 아기는 석가 세존의 지시로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게 구출되어 자라났다. 이 아기가 바리공주다. 바리공주가 15세가 되던 해에 왕이 병이 들었다. 그런데 청의동자가 왕의 꿈속에 나타나 하늘이 정한 아기를 버린 죄로 죽게 되었다며 살기 위해서는 버린 아기가 구해다 준 무장신선의 불사약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줬다.
이에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려지고 한 대신의 충성으로 바리공주를 찾았다. 바리공주는 아버지의 불사약을 구하러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로 갔다. 그곳에서 무장신선을 만나 불사약을 받는 값으로 나무하기 3년,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등 9년 동안 일을 해주고 무장신선과 혼인해 아들 일곱을 낳아주었다. 그리고 돌아와보니 이미 왕은 죽어 있었다.
하지만 바리공주는 가지고 온 불사약을 왕에게 먹였고 그러자 왕은 되살아났다. 다시 살아난 왕은 공주의 소원을 들어 만신의 왕이 되게 하고 무장신선은 죽은 사람의 길에서 노제를 받아 먹게 하고, 일곱 아들은 저승의 십대왕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내용을 간추리면 한 효녀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행을 견디고 자신의 일신을 바치면서 불사약을 구해내고야 만다는 이야기다.
A 씨는 이 이야기를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사와 연결시켜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를 되살리고 새마을정신 등을 이어받아 우리나라를 강국으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스토리를 만들어 전파했다고 했다.
이처럼 역술인들은 일반인들 모르게 대선 후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이 지원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인연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인연의 끝이 해피엔딩일지는 아무도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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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