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회 ‘해외출국’ 이재만-안봉근 ‘퇴출’ 예고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청와대가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로 인해 쑥대밭이 됐다. 이 문건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동생 박지만 EG회장,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비선 실세로 지목되는 정윤회 씨,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십상시 그리고 대통령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까지 톡톡히 망신살을 당하고 있다. 청와대내 권력 다툼이나 궁중 암투는 분명한데 누군가 문건 유출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인사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가신 그룹에 측근, 친인척에 외부 막후 실세들까지 온통 피투성가 됐다. 굳이 따지자면 ‘모두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야당만 신나 있다. 문건 파문으로 구중궁궐로 알려진 청와대가 발가벗겨진 형국이다. 그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심장을 들여다보자
세계일보가 지난 11월28일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것이라며 ‘정윤회 동향 문건’을 보도했다. 이 문건에 등장 인물을 보면 평소 한 명만 등장해도 주목받을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평소 대통령 지근거리에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김기춘 실장을 비롯해 ‘미스터리’ 투성이 최태민 목사 전 사위 정윤회 씨, 구중궁궐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에 평소 투명인간처럼 살고 있는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까지 권부의 핵심들이 다 있다. 여기에 양념처럼 보이는 그룹이 ‘7인회’, ‘십상시’(十常侍:중국 후한말 국정을 농단한 열 명의 내시로 대통령 측근 그룹)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권력 실세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오고 있다.
‘승자’없는 희한한 권력 암투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피비린내나는 권력 암투를 벌였다는 정황까지 문건에 담겨 있어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핵심 내용은 비선 실세 정 씨가 문고리 권력 3인방과 함께 모임을 가지면서 국정에 개입했고 심지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그만두게 하려고 시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김 실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오른 것은 7인회 멤버인 최병렬 전 대표가 추천했다는 내용에다 최근에는 또 다른 멤버인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과 김 실장이 사이가 벌어졌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당장 이 문건은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청와대를 벌집으로 만들어놨다. 또한 권력 실세지만 어둠 속에서 숨죽여 지내던 인사들이 하나둘씩 세상 밖으로 내던져졌다. 그동안 청와대 주변에서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측근, 가신, 친인척 그룹 간 권력 암투가 실제로 존재했었고 그로 인해 박 대통령 임기 초를 힘들게 했던 인사 참사가 벌어진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특히 문고리 3인방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한 정 씨의 실체가 문건으로 드러났고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와 인사를 두고 권력 다툼을 벌였다는 정황도 관련자들의 인터뷰 속에 속속 드러났다. ‘박지만 사람’으로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문건에 대해 ‘신빙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 씨와 문고리 3인방을 압박하고 있다. 박 경정은 언론을 통해 “정 씨는 이재만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을 통해 그림자 권력을 행세했고 정호성 비서관은 컨트롤이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조 전 비서관 역시 “내용의 6할은 모두 사실”이라며 “박 경정이 작문을 했겠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정 씨는 박지만 ‘미행설’부터 문고리 3인방을 통한 국정 개입 의혹 관련 모두 ‘음해’라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침묵하던 박 회장 역시 측근들을 통해 “정 씨가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면 그땐 내가 나설 것”이라고 정씨를 압박했다.
대통령, 피보다 물이 진하다?
당장 박 대통령이 직접 진압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에는 국정과 관련된 여러 사항들뿐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과 각종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그러나 그것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만약 그런 사항들이 기초적인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그대로 외부에 유출시킨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사회에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며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말을 종합해보면 문건 내용보다는 유출자 색출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즉 정씨나 문고리 3인방의 국정 농단 의혹보다는 문건 유출이 더 문제라며 박지만-조응천-박관천 3인방을 겨냥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청와대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도 “조 전 비서관이나 박 경정이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칠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정씨나 문고리 3인방의 인사전횡 관련해서 청와대는 해명이나 반론 내용은 일절 전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혈연관계인 동생 지만씨보다 측근 그룹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이 누나가 청와대에 있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며 남매지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청와대 분위기 쇄신차원에서라도 정 씨와 문고리 권력에 대한 인사조치는 취할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여권 내에서는 이번 문건의 핵심인사인 정 씨는 이미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청와대 입성’을 꿈꿨지만 박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후문까지 나돌면서 귀양 형식으로 해외로 출국시킬 것이라는 말이 그럴 듯하게 나돌고 있다.
또한 정 씨와 수시로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만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 역시 청와대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 관측이다. 특히 경찰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안 비서관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취임하고 인사로 인한 갈등설까지 불거지면서 옷을 벗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16년 넘게 박 대통령과 함께한 문고리 권력 중 2명이나 내치기에는 박 대통령의 신뢰가 높다는 얘기다. 또한 조 전 비서관이나 박 경정과는 달리 청와대 밖에서 할 일 없는 이들이 쉽게 나갈 리도 만무하다는 시각이다.
한편 ‘침묵’하고 있는 김 실장의 거취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김 실장은 작년에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홍경식 전 민정비서관과 막역한 사이다. 그리고 정 씨 관련 문건을 작성하고 보고한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과 ‘마약사건’때부터 친분이 깊은 사이다.
‘뒤로 빠진’ 기춘대원군,
내년 초 ‘거취표명’?
결국 정씨 문건 보고라인에서 ‘보고하지 않은’ 김 실장만 살아 남았고 박 회장은 ‘무늬만 대통령 동생’으로 민정수석실 내 김 실장 측근들은 다 쫓겨난 셈이다. 그러나 여권의 한 인사는 김 실장 거취 관련해 “김 실장의 거취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중에 달렸다”며 “외형상 지금은 정씨와 박회장 대결구도로 김 실장이 빠져 있지만 그 정점에 서 있는 만큼 정씨 라인과 박 회장 인사들이 다 정리되고 나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공산이 높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청와대 내 책임질 인사들이 다 물러난 이후 거취가 결정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기는 내년 초가 될 전망으로 청와대에서 가급적 신속하게 검찰 수사를 진행해달라고 주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2015년에는 청와대에 새로운 인사들이 비서실과 참모실에 들어와 국정을 이끌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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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