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 “정명훈 감독이 배후… 나는 정치적 희생양”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이사가 막말과 성희롱 파문에 휩싸였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언론에 박 대표의 언행을 폭로한 것이다. 사무국 직원들이 발표한 호소문에는 박 대표가 직원들에게 말한 심한 욕설과 불공정한 인사 사례 등이 담겨 있다. 이들은 박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배후에 정명훈 예술 감독이 있고 나는 정치적 희생양”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무국 직원들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자격이 없는 사람을 서울시향 대표 자리에 앉힌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반대로 박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표를 모함한 정 감독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과연 이번 사태는 박 시장의 잘못된 선택일까. 아니면 정 감독의 작품일까.
지난 2일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은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이사 퇴진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에는 박 대표가 직원들에게 한 심한 욕설과 막말, 성추행 사례가 나열돼 있었다. 또 서울시향 자체를 비난하거나 불공정한 인사를 위해 내부 규정을 바꿨다고 적혀 있다.
“노예근성” “OO새끼”
시향 이미지 실추까지…
호소문에 따르면 박 대표가 취임한 2013년 2월 1일 이후 사무국 퇴사자 현황은 사무국 인원(27명)의 48%인 13명이다. 이 가운데 2명이 정년퇴임인 것을 고려해도 높은 숫자다. 2년 동안 서울시향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13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일까. 호소문의 내용을 정리해봤다.
먼저 박 대표는 직원들에게 폭언과 모욕적 발언을 일삼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7월 김주호 前 대표이사 사망 직후 업무상 실수를 한 직원에게 “너희 같은 OO가 일을 이따위로 하니 김주호가 죽었지”라고 말했다. 해당 직원은 같은 달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사이동 직후 새로운 업무를 맡은 직원들에게는 “사손이 발생하면 월급에서 까겠다. 니들 월급으로는 못 갚으니 장기(臟器)라도 팔아라. 니들 몸 보호하려면 일 제대로 해”라고 수차례 막말을 했으며 마음에 안 드는 팀장에 대해 그 아래 직원 앞에서 “OOO(팀장 이름) XX새끼”라고 욕설을 퍼붓기만 수차례였다. 또 “너희들은 내가 소리를 질러야만 일하지. 그게 노예근성이야” “너 노예근성 있는 거 맞아” 등의 인격모독도 일삼았다. 이에 매일 아침마다 성수(聖水)를 뿌리는 직원도 있을 정도였다.
또 박 대표는 지난해 9월 외부협력기관과의 공식적인 식사 자리에서 술에 취한 채 남자 직원의 넥타이를 잡아 본인 쪽으로 당긴 뒤 손으로 주요부위 접촉을 시도했다. 여직원에게는 “너는 미니스커트 입고 니 다리로라도 나가서 음반 팔면 좋겠다”, “OOO는 보면 (술집)마담하면 잘 할 것 같아. 그리고 OOO이랑 OOO은 옆에서 아가씨 하고”, “니가 애교가 많아서 늙수구레한 노인네들한테 한번 보내 보려고” 등의 성희롱도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4월 시의회 업무보고를 준비하면서 “내가 재수때기가 없어 이런 O같은 회사에 들어왔지”라며 서울시향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후원회원들에게는 회비가 적다며 “지 여편네 OOOO 핸드백 값도 안 되는 돈 내고 대접 받으려고 한다”는 비난도 일삼았다. 또 박 대표는 부적절한 인사를 진행했으며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내규·규정을 무분별하게 개정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박 대표를 임명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원래 박 대표는 삼성금융연구소, 삼성화재, 삼성생명, 여성리더십연구원 등에 근무한 대기업 임원 출신이다. 그래서 박 대표 임명 당시 음악계 출신 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박 시장의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경영과 마케팅을 중점에 둔 인사”라며 박 대표를 두둔했다. 결국 박 대표가 당초 우려했던 것처럼 서울시향을 제대로 이끌지 못함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박 시장을 향한 것이다. 서울시민 김모(35)씨는 “박 시장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결과”라며 “이를 계기로 인사에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나는 정치적 희생양일 뿐 이번 일의 배후에는 정명훈 예술감독이 있다”고 반박했다.
박 대표는 지난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향은 정 감독이 사조직으로 운영하는 회사로 공조직처럼 운영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처음 왔을 때 방만하고 비효율적이고 나태해 놀랐다”고 입을 열었다. 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시향 직원들의 무능함에 대해 폭로했다.
“방만하고 나태한 시향
정 감독 사조직처럼 운영”
박 대표는 “공사구분을 못 하는 문화에 익숙했던 분들을 체계화, 시스템화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다”면서 “6~7년차 직원이 엑셀을 못했다. 행정업무 처리 미숙으로 오디션 지원자들의 단원 계약 여부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막말 논란에 대해서는 “거칠게 했을 수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9년 동안 서울시향에서 (나태하게)일하는 모습에 익숙한 직원들의 행태를 바꾸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또 욕설이 담긴 녹취록에 대해서는 “그날은 평소의 정신이 아니었다. 여기(서울시향)에 왜 왔는가 후회하고 고민할 때였다. 직원을 상대로 욕한 것은 아니다. 그날은 너무 화가 났다. 평소에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구체적인 정황을 내놓아야 한다. 감사원 감사를 기다려 달라. 삼자대면도 기꺼이 하겠다”고 밝혔다. 인사전횡 의혹에 대해서도 “정말 그런 일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이번 사태 발생 원인으로 박 시장과 정 감독을 언급했다. 박 대표는 “정 감독이 사조직으로 운영하는 회사에서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정 감독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 감독에 대해 ‘서울시향의 소속감이 부족하다’ ‘공적인 행사 자리에서조차 사적인 네트워크를 지닌 사람들과 즐겼다’ 등의 비판을 이어나갔다. 그는 이어 호소문의 배후에 정 감독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으며, 자신을 정치권 권력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박 대표는 또 “회기를 마치고 (서울시향에서)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박 시장이 12월1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정 감독이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있으면 계약서 내용을 알 수 있어 제한된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박 시장이 정 감독을 두둔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서울시향을 사조직처럼 운영하던 정 감독이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직원, 박 시장과 함께 이번 파문을 일으켰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박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 감독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박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정 감독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기업인 출신인 박 대표는 불도저 같은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서울시향 권력의 중심에 서있던 정 감독과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이 일어났다. 그러다 결국 정 감독이 지난 10월 인격모욕을 당했다는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서울시에 전달하면서 박 대표가 있는 한 재계약은 없다고 못 박았다는 것이다. 박 대표의 폭언은 사실이지만 이와 별개로 정 감독과의 사이가 원만했다면 이번 파문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도 들려온다.
한편 이번 파문에 대해 서울시는 지난 4일 “이미 지난 10월 중순께 박 대표에 대한 탄원서가 정 감독을 통해 접수된 바 있다. 이후 사실관계 조사 및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당시 박 대표는 11월 중순께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지난 1일 입장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이는 박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과 정반대의 입장이다.
호소문 발표로 시작된 파문은 박 대표와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그리고 서울시의 진실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