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 소신 잠시 접고 대통령 역점정책 보조 맞춰
김문수 박정희 시대 공격하다 “초등교에 동상 세우자”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은 겉으론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지만 숙명적으로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당내 친박계의 힘을 떨어뜨리기 위해 김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문-무 합작’이란 말이 생겼다. 경기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마땅한 활동 공간이 없던 김 위원장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김 대표를 불안하게 한다. 파격적인 혁신안을 만들어 당내 분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서울 중심가에 새로 사무실을 내는 등 대권행보를 가속화 하고 있다.
동지자 관계로 숙명적 경쟁
친소 관계를 떠나 두 사람의 꼭대기엔 ‘살아 있는 권력’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의 도움 없이는 ‘차기’를 기약할 수 없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려면 ‘박심’(朴心·박 대통령 의중)을 얻는 일이 선결 과제다.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이 최근 들어 경쟁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는 건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 10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의 ‘개헌봇물론’ 발언으로 박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 ‘개헌논의는 경제 블랙 홀’이라며 논의 자제를 당부했음에도 돌출적으로 개헌론을 꺼낸 까닭이다.
청와대로부터 사실상의 경고를 받기도 한 김 대표는 이후 자세를 바짝 낮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박 대통령의 노기(怒氣)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란 측면이 있다. 상하이 개헌 발언 이후 친박계 핵심 의원들이 잇따라 모임을 갖고 자신을 압박하는 데 따른 자구책이다. 특히 4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논란이나 비선 라인의 국정농단 의혹 같은 돌출 쟁점이 등장한 현 시점에선 대통령과 각을 세워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김 대표는 상하이 개헌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귀국한 당일 “대통령께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11월 10일 이뤄진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도 “대통령께서 해외순방을 하시면서 큰 업적을 갖고 돌아오셨는데 당에서 제대로 뒷받침을 못한 것 같아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취임 초 “청와대에도 할 말은 하겠다”는 기백은 온 데 간 데 없이 ‘송구’를 입에 달고 사는 셈이다. 김 대표는 평소 사석에서 듣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독설을 날린다. 청와대를 겨냥한 비판에도 거침이 없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관련된 말을 꺼내기조차 꺼린다고 한다.
말 뿐이 아니다. 실제 행동으로도 박 대통령이 가는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신의 소신을 잠시 접고 박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에 보조를 맞춘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총대
대표적인 정책이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원래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개혁의 연내 처리에 부정적이었다. 공무원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개혁안 원내 처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굳은 걸 읽고 스스로 총대를 멨다.
자신이 앞장서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소속 의원 158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내는 열성을 보였다. 물론, 야당의 반대로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의 연내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지만 그의 의지만큼은 박 대통령에게 분명히 전달됐다.
이에 질세라 김문수 위원장도 구애경쟁에 뛰어들었다. 김 위원장은 학생운동과 재야 활동을 하면서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에 저항했던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고 다녔다. 박정희 정권 때 구속된 전력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지난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도 박 대통령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 일이 있었다. 대선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장에서 내보낸 홍보 동영상에 박근혜 후보와의 관계에 의혹이 제기됐던 고(故) 최태민 목사 사진을 등장시켰다.
나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탱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내보기도 했다. 경쟁자인 박근혜 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후보가 ‘쿠데타로 집권한 전직 대통령 딸’이란 이미지를 씌우려는 의도된 연출이었다. 이 동영상과 사진에 대해 당시 박근혜 후보는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런 김 위원장이 돌변했다. 박근혜 대통령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일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에서 자신의 과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한 시간가량 특강을 했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박 대통령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세상에 권력자 딸이 혼자밖에 없었느냐. 박 대통령이 여러분의 동문 아니냐. 박정희의 딸이라고 동문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또 “비판하는 건 좋지만 국민표로 뽑았다. 나 같으면 당연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 창피한가? 조상 욕하고 대통령 욕하는 게 지성이냐. 그런 지성은 참 지성이 아닌 가짜 지성”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모교 서강대서 특강
앞서 11월 25일 당원 대상 강연에서는 ‘투사 출신 김문수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발언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광화문과 각 초등학교에 세워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주신 분이다. 대한민국의 학교라면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고, 누가 발전시켰는지를 항상 기억하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참 교육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립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등 모든 문제의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위원장은 앞으로도 큰 틀에선 문-무 합작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결국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면 결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때를 대비해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군으로 만들기 위한 ‘박심’ 얻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꽃놀이 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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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