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페어플레이’조직력 다졌다
한때 서울 중랑구를 주름잡던 ‘조폭 축구단’의 실체가 4년 만에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003년 조직원이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막강했던 이들은 당시 경찰의 공무집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내공을 자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만으로도 주변 상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이들 조직원들에게 축구는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단체 활동인 동시에 행동강령이었다. 4년 만에 경찰에 붙잡힌 30대 행동단원이 밝힌 ‘조폭 축구단’의 희한한 페어플레이를 낱낱이 들여다봤다.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16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조직폭력배 김모(31)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의 이름이 경찰 수사망에 오른 지 꼬박 4년만이었다.
서울 중랑구 일대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조직폭력단의 ‘전투행동단원’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김씨. 하지만 경찰에 쫓기는 4년 동안 공사장과 여관 등을 전전한 끝에 서울 장안동 뒷골목 모텔 방에서 초라한 도피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뼛속까지 ‘조폭’의 피가 흘렀던 김씨는 2000년 초 연고지인 서울 중랑구의 한 폭력조직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경찰이 폭력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하자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김씨 역시 일용직 공사현장을 오가며 ‘숨고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재기의 기회를 노린 김씨는 같은 해 3월 서울 동북부 지역의 조직폭력배 30여명을 소집했다. 이전 조직의 실세인 박모씨를 두목으로 ‘POS파’를 결성한 김씨 등은 하부 조직원들을 끌어 모아 몇 달 만에 100여명의 부하를 아우르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당시 대항 조직들까지 싹쓸이하며 몸집을 불린 POS파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무력화 시킬 만큼 대단한 위력을 자랑했다. 이들의 ‘막가파식’ 행동강령은 웬만한 경찰 병력을 우습게 여길 정도였다. 덕분에 서울 중랑구 북동부 일대 상인들 사이에선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일종의 법칙처럼 자리 잡았다.
조직원 100명 출동경찰까지 무력화
POS파 역시 여타의 폭력조직처럼 엄격한 행동강령이 있었다. 이들은 ‘선배를 보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선배조직원이 비상을 걸면 즉각 출동해 폭력으로 해결한다’는 자체규약에 끈끈하게 묶여있었다.
경찰을 통해 알려진 POS파의 행동강령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기 모임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서로 돕고 믿음을 쌓는다’는 대목이다. 이 같은 규약을 지키기 위해 POS파는 ‘축구’라는 인기 스포츠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지역 조기축구 동호회로 위장한 이들은 일주일에 3~4회 이상 실제 축구경기를 하며 조직력을 다졌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내건 스포츠동호회 간판은 경찰의 폭력조직 단속이 한창이던 때도 수사팀의 눈을 돌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POS파가 조기 축구를 즐긴 것은 단순한 체력단련과 눈속임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김씨 등은 일주일에 수차례씩 주변 상인들을 자신들의 축구회에 불러 친선게임을 제안했다. 물론 단순히 지역 동호회로 알고 참석한 상인들은 이들에게 한바탕 봉변을 당해야 했다.
POS파 조직원들은 은연 중 알몸을 드러내 문신을 보이거나 조직원 특유의 기강훈련으로 상인들의 기를 죽였다. 자신들의 정체가 조기축구 회원이 아닌 ‘조폭’임을 은연중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POS파 조직원들은 이렇게 불러 모은 상인들을 상대로 정기 상납금을 강요해 돈을 뜯기 시작했다. 오락실과 주변 유흥업소 상권을 좌지우지해 보호비 명목의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었다는 사실도 최근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한편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갈취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반대파 조직원들에 대해 보복살인까지 계획, 실행에 옮긴 핵심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지난 2003년 10월 자신의 직속후배인 또 다른 김모씨가 전부터 일해오던 나이트클럽 전무자리를 다른 조직 간부에게 빼앗기자 직접 복수전에 나섰던 것이다.
“축구하자고 해 갔더니…”
그는 후배를 밀어낸 반대파 조직원 정모씨와 이모씨를 한꺼번에 살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당시 김씨에게 급습을 당한 정씨와 이씨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이 불거진 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조직의 전성기도 끝났다.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소탕작전에 나선 경찰이 POS파의 수뇌부와 조직원들을 수사망에 올리기 시작했고 조직 지도부는 조금씩 와해돼 나머지 조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조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던 합숙소를 정리하고 4년간의 긴 도피생활을 이어갔던 그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결국 경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이런 가운데 일부 조기 축구회에 참가하는 인물들 중 실제 ‘어깨’ 출신들이 적지 않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인천에서 10여 년 동안 조기축구회 회원으로 활동한 정모(52·자영업)씨는 가끔 친선경기를 할 때면 본의 아니게 ‘본색을 드러내는’ 동호인이 있어 간담이 서늘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축구단 전체가 ‘조직원’인 경우는 없었지만 평범한 인물들 사이에 ‘조폭’ 출신이 끼는 경우는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몸에 화려한 문신을 한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골 세리머니를 할 때면 몸조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오래 참여한 멤버들은 ‘조폭’도 하나의 직업군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회원들은 ‘조폭과 함께 공을 찼다는 사실’을 무용담삼아 자랑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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